과학연구

불법무도한 미국《조선원정함대》의 강화도침공행위

 2018.4.20.

흉악한 미국은 침략선 《셔먼》호의 격침과 남연군묘도굴사건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을 준비하였다.

놈들은 1871년 1월 조선봉건정부에 또다시 침략선《셔먼》호사건을 구실로 불평등적인 《항해 및 통상조약》에 조인할것을 강요하는 협박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만일 《조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이른바 《친선관계》가 파괴되면 그 책임을 조선측에서 져야 한다는 실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조선봉건정부에서는 놈들의 이 파렴치한 요구에 명백한 대답을 주는 편지에서 《…평양의 강물에서 그 배(침략선 <셔먼>호를 가리키는 말)가 결딴난것이 자기들이 저지른짓이라는것은 변론을 기다릴것없이 그 리유를 똑똑히 알수 있는것이다. 미국<상선>이 우리 사람들을 멸시하고 학대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관리들과 백성들이 어찌하여 남에게 먼저 손을 대려고 하였겠는가? 혹시 호의를 품지 않고 와서 함부로 멸시하고 학대한다면 방어하고 소멸해버릴것이니 미국관리와 통역들은 단지 저희 백성들이나 통제하며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말도록 할것이지 교섭여부에 대해서는 다시 더 론할것이 있겠는가.》라고 강경히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날강도들은 1871년 4월(양력 6월) 기함 《콜로라도》호를 비롯한 5척의 군함에 수십문의 포와 1 230여명의 침략군무리들을 싣고 조선에 기여들었다.

조선봉건정부는 관리를 보내여 물치도앞바다에 나타난 침략자들을 강하게 추궁하였다.

그러자 날강도들은 조선봉건정부에 보내는 통고문에서 제놈들이 조선령해에 온 목적은 조선과 협상하자는데 있다고 하면서 《조약》이 체결되면 돌아가겠다고 수작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수도 한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손돌목의 포대앞에 기여들어 각종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손돌목을 지키고있던 광성진포대, 덕포진포대 등의 조선군사들이 놈들에게 집중포사격을 가하였다. 아군의 포탄은 침략선에 명중되였고 결과 적의 주력함 《모노카시》호에 물이 새여들기 시작하였다. 손돌목전투는 도발자들의 참패로 끝났다.

조선봉건정부는 적들에게 편지를 보내여 우리 나라에 침입한 그자체의 부당성과 통상을 하지 않겠다는것을 다시한번 명백히 밝히고 무조건 침략책동을 중지하고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침략자들은 오히려 수일내에 저들의 협상제의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무력행사를 하겠으니 그때에 가서 후회하지 말라는 식의 최후통첩적인 위협을 해왔다. 드디여 침략의 무리들은 본격적인 군사행동에로 넘어갔다.

4월 23일 강화도남쪽 초지진에 침략의 더러운 발을 들여놓은 미국날강도들은 함포의 엄호하에 강화해협안에 있는 우리측 방어지점들을 차례로 점령하려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상륙 첫날부터 놈들은 조선군사들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쳤다.특히 아군의 야간기습전으로 침략군은 초지진전투에서 100여놈이나 살상당하였다.

놈들은 광성진에서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조선군사들은 미친듯이 쏘아대는 적의 함포사격속에서도 집중포화를 들이대여 적의 포함 2척에 심대한 손상을 입혔으며 달려드는 적의 륙전대를 육박전으로 요정내였다.

광성진방위자들이 발휘한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은 침략군으로 하여금 큰 공포속에 떨게 하였다. 이 전투에 참가하였던 중국주재 미국공사 로우라는 자는 자기 나라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조선사람들의 … 용감성은 일찌기 볼수 없었던것으로 세계 어느 민족도 조선사람의 용감성을 따를수 없을것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강화도전투에서 된타격을 받은 침략자들은 전원이 광성진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원정대가 거처하고있던 물치도로 도망쳤다.

놈들은 그 꼴을 해가지고서도 기만과 위협적인 방법으로 조선봉건정부를 굴복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했으나 끝끝내 저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조선봉건정부는 4월 25일 다음과 같은 령을 내려 전국에 공포하였다.

《이 오랑캐들이 화친하려고 하는것이 무슨 일인지는 알수 없으나 수천년동안 례의를 숭상해오는 나라로서 어찌 개, 돼지같은 놈들과 화친할수 있겠는가? 몇해동안 서로 버티더라도 기어코 거절하고야말것이니 만일 화친하자고 말하는자가 있으면 나라를 팔아먹는 죄목으로 처형할것이다.》

조선봉건정부의 립장은 단호하였으며 조선인민들의 반침략기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이것을 실지 목격하고 체험한 미국침략자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써도 조선을 어쩔수 없다는것을 깨닫자 《모노카시》호를 비롯하여 거덜이 난 군함들을 끌고 조선령해에서 도망치고말았다.

이리하여 미국이 오랜 기간에 걸쳐 빈틈없이 준비를 해가지고 감행한 조선에 대한 대규모적인 무력침공은 놈들의 수치스러운 참패로 막을 내렸다.

우리 나라 력사에서 《신미양요》라고 불리우고있는 1871년 미국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인민은 또다시 력사적승리를 이룩하였다.

이렇듯 미국은 조선인민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련전련패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