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호지명주석이 가장 존경한 위인

 2020.8.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국제적으로도 높은 권위를 지니고계시였으며 세계인민들과 수많은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고계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18페지)

윁남사람들은 호지명주석을 가리켜 호할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불렀다.

이 부름에는 윁남혁명의 선구자, 령도자로서 그가 이룩한 업적에 대한 윁남인민들의 존경이 담겨져있다.

하지만 호지명주석은 자기를 높이 존대하는 사람들에게 윁남인민들이 진정으로 높이 존경해야 할분은 내가 아니라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이시며 나는 비록 그분보다 나이도 많고 혁명도 먼저 했다고 하지만 김일성동지의 제자일따름이라고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말하군 하였다.

그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을 스승으로 받들어모시였으며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 풀어나가군 하였다.

호지명주석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운것은 1957년 7월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북부윁남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선포되고 사회주의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막상 사회주의혁명을 선포하고보니 호지명주석에게는 안타까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의 후과로 여지없이 황페화된 나라의 공업은 어떻게 추켜세우고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는 어떤 방법으로 실현해야 할것인가, 농민문제와 지식인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등 하나에서 열, 백가지가 다 처음 당해보는 생소한 일이였다.

그는 머리를 싸매고 부피두툼한 이전 쏘련의 사회주의건설경험도 파헤쳐보기도 하고 중국혁명의 경험도 탐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쏘련의 경험에서도 그리고 중국의 경험에서도 이렇다할 비방을 얻을수 없었다.

그것은 윁남의 실정이 쏘련이나 중국의 실정과 너무도 달랐기때문이였다.

한동안 깊은 심연속을 헤매던 호지명주석은 윁남혁명앞에 나서는 하많은 문제들을 성과적으로 풀자면 쏘련이나 중국이 아니라 혁명과 건설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야 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호지명주석은 모든것을 뒤로 미루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행장에까지 몸소 나가시여 호지명주석을 따뜻이 맞아주시였을뿐아니라 천리마를 탄 기세로 힘차게 전진하고있는 공장과 농촌, 학교를 비롯한 여러곳을 그와 함께 다니시며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룩하신 귀중한 성과와 경험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지명주석과 헤여지기에 앞서 그와 회담을 하시였다.

호지명주석은 회담이 시작되자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가 조선을 방문한 기간은 3일밖에 안되지만 3년동안 배워도 다 못배울 참으로 많은것을 배웠다고, 김일성동지께서 새 사회건설에서 매우 풍부한 경험을 쌓으시였다는것을 더욱 깊이 알게 되였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면서 얻은 경험과 조선로동당의 기본투쟁과업, 공업, 농업, 상업, 교육, 문화 등 여러 부문의 정책, 지식인문제와 통일전선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것을 말씀올렸다.

사실 호지명주석의 청은 한두시간으로 한정된 회담을 념두에 둘 때 너무도 지나친 욕심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기된 문제들을 설명하자면 많은 시간이 걸릴수 있다고, 그러니 통역이 없이 서로 의사가 통하는 중국말로 직접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면서 전후 우리 나라가 처했던 형편과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라의 경제를 복구발전시키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구체적인 수자와 실례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호지명주석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흘릴세라 목책에 꼬박꼬박 적어넣었으며 그러다가도 어떤 문제에 대하여서는 다시 설명해주실것을 부탁올리군 하였다.

그러다나니 회담은 어느덧 두시간을 가까이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별연회시간도 거의 되였으니 이제부터는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호지명주석은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시간이 좀 걸려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다고 절절하게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가지라도 더 배우고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 청을 다 들어주시였다.

이날 회담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호지명주석에게 있어서 새 사회건설의 뚜렷한 방도를 체득하게 한 강령적지침이였다.

하기에 호지명주석은 회담을 마치며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을 담아 김일성동지께서 오늘 귀중한 경험을 알려주시여 많은것을 배웠다고, 이에 대하여 김일성동지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그는 1년이건, 2년이건 조선에 있으면서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듣고싶은것이 자기의 솔직한 마음이라고 하면서 김일성동지께서 윁남을 방문해주실것을 열렬히 희망한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지명주석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이시여 주체47(1958)년 11월 윁남민주공화국을 방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윁남방문을 환영하여 수도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군중대회가 진행되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주석단으로 나온 호지명주석은 마이크를 쥐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윁남인민의 가장 친근한 벗이시며 영웅적조선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십니다.》라고 소리높이 웨쳤다.

그리고 호지명주석위대한 수령님께서 윁남을 방문하시는 기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수령님으로부터 귀중한 경험을 많이 듣기 위하여 상봉과 회담을 일정계획보다 늘이고 지방참관까지 직접 맡아 안내하면서 노력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지명주석의 이러한 심정을 리해하시고 그가 알고싶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과 결부하여 설명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귀중한 경험을 받아안은 호지명주석은 이렇게 말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 조선의 사회주의건설경험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매우 훌륭한 경험입니다. 조선의 사회주의건설경험은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는 과정에 얻어진것들입니다.》

이처럼 우리 수령님은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자주와 정의, 진보를 위하여 투쟁하는 나라 인민들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고 이끌어주신 참다운 국제주의자, 진보적인류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