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부교수 김양호
2022.8.1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대해같은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닌 성인이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품에 안아 믿음을 주시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영원한 동행자로 내세워주시였다.》
우리 나라에 해외동포상공인들로부터 참으로 행복한 《사회주의백만장자》라고 불리우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평양광학유리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이였던 송대관이다.
원래 그는 해방전에 백만장자가 되여볼 꿈을 안고 동분서주하던 사람이였다. 우리 나라 서부의 곡창지대에 널려있는 크고작은 정미공장들에서 나오는 사료를 몽땅 거머쥐고 되넘겨파는 판이 큰 장사거래도 해보았고 메리야스공장이나 정미공장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잡화상을 벌려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의 기업활동이 구속을 받고있던 그때 매판자본에 흡수되고말거나 파산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때 그는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개선연설소식을 듣고 평양에 돌아와 자그마한 연필공장을 차려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적인 개인기업가로 새 출발을 한 송대관을 대견하게 여기시여 그의 일터도 찾아주시고 화물자동차도 보내주시면서 기업을 잘 운영해나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는 전쟁시기 수백만원에 달하는 리득금을 고스란히 전선원호금으로 희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자본주의적상공업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개인상공업자들이 자원성의 원칙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의 협동조합을 조직운영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전쟁으로 령락된 개인상공업자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며 또한 크나작으나 자본주의적 경영자였던 그들을 사회주의적근로자로 개조되게 하는 고마운 조치였다.
송대관은 생산협동조합관리위원장이 된 후에도 국가에 많은 리득을 주었다. 그리하여 주체48(1959)년 10월 그는 전국지방산업부문 및 생산협동조합열성자대회에서 토론까지 하였다.
주체58(1969)년 3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인민들속에서 돋보기를 비롯한 안경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좋은 안경을 대대적으로 생산할데 대한 과업을 그의 협동조합에 맡겨주시였다. 그의 협동조합에서는 이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고 한해에 수백만개의 안경을 훌륭히 생산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치하를 받게 되였다.
송대관과 그의 협동조합에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이어지게 되였다.
어느해 봄, 만년대계의 기념비적건축물의 내부장식에 필요한 구슬생산문제가 긴급히 제기되였다. 그런데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듯 정교한 구슬을 생산해본적이 없었다. 일군들은 하는수없이 구슬전량을 수입하기로 하였다.
그들의 제의가 곧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제기를 부결하시고 송대관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는 해방직후부터 오늘까지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은 못해낸 일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이 과업을 맡기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에 그는 고심어린 탐구와 실적으로 보답하였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 장군님께서 주시는 긴절한 과업을 받아안고 벽화미술에 쓰일 색유리와 쪽무이 특히 외국의 제노라하는 유리생산업체가 거액의 자금을 요구하면서도 재세를 부리는 주체사상탑봉화의 특수유리도 자력으로, 우리의 기술로 훌륭히 생산해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시안의 8월3일인민소비품직매점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다가 나이가 많아 조합고문으로 돌아앉은 송대관이 관리위원장사업을 아직 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다시 종전의 직무에서 일하도록 해주시였다.
1980년대에 해방전부터 그와 안면이 있던 유럽에서 사는 한 동포상공인이 사회주의조국을 방문하여 생산협동조합과 그의 가정을 찾아보고 행복했던 그의 인생을 부러워하면서 그를 《사회주의백만장자》라고 하였다.
《사회주의백만장자》.
돈이 모든것을 결정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이 생명이고 돈을 많이 버는것이 인생의 목적으로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돈을 많이 벌어 백만장자, 억만장자로 된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된다.
인민대중이 주인으로 되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로동과 국가의 혜택으로 평등하게 살아간다. 따라서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처럼 빈부차이가 생길수 있는 사회경제적근원이 없으며 더우기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생겨날수 없는것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인생은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자기의 성실한 노력을 바치고 그로 하여 집단의 믿음과 사랑속에 살아가는것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이야말로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성실하게 자기의 땀과 노력을 바친 사람들이고 인생에서 진짜 성공한 사람들인것이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만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자본주의나라들의 사람들 특히 백만장자들은 리해할수 없는 현실이다.
해외동포상공인이 송대관에게 《사회주의백만장자》라고 한 의미심장한 말은 사회주의사회에서 누가 진짜 부자이고 어떻게 사는것이 보람있는 인생인가가 비껴있다고 볼수 있다.
주체83(1994)년 1월 송대관선생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애석해하시며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화환을 보내주도록 하시고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하시였다.
오늘도 송대관선생은 절세위인들의 사랑의 품속에서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