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5만원이 10만원으로

 2021.12.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그 바쁘신 나날에도 우리의 첫 기록영화를 만드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장엄한 투쟁을 영화화폭에 수록하여 력사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몸소 기록영화창작사업을 발기하시고 그 사업을 이끄시였다.

일찌기 인민들을 건국사업에 적극 불러일으키는데서 기록영화가 노는 역할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2월 영화반을 내오도록 하시고 우리 인민의 투쟁모습을 영화화면에 옮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화반이 조직된 며칠후인 2월 17일 몸소 책임일군들을 부르시여 영화제작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것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지만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어떻게 하나 우리 힘, 우리의 손으로 해방된 새 조선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것이 당선전부안에 영화반을 둔 의도가 있다고 하시면서 영화를 성과적으로 제작할수 있는 방향과 방도에 대하여서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3.1인민봉기 27주년기념 군중시위를 처음으로 기록영화화면으로 옮기게 되였으며 그후 5.1절기념행사와 보통강개수공사착공식을 수록하고 그것을 기록영화로 제작하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졌다.

그런데 처음 영화를 제작하는 사업인것만큼 여기에는 자금이 적지 않게 요구되였다.

그리하여 영화제작이 한창이던 주체35(1946)년 6월 6일 한 일군은 영화제작에 들어갈 예산서초안을 작성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예산서초안을 들고 위대한 수령님의 집무실로 찾아가는 일군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나라의 형편이 아직도 어려웠으며 또 예산서에 반영된 자금 역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것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무실에 들어선 일군에게 어서 오라고 하시면서 지금 영화반에서는 무슨 영화를 만드는가고, 영화반동무들은 다 잘 있는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모두 건강하며 지금 5.1절경축행사를 비롯한 여러 행사들을 수록한 3편의 기록영화를 만들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조건에서 영화를 3편씩이나 만들자니 애로되는것이 많을것이라고, 애로되는것을 어서 이야기하라고 하시였다.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의 인자하신 말씀에 어려움도 잊고 현상설비구입과 촬영용자금이 부족한데 대하여 말씀올리면서 자기가 가져온 자금예산서를 드리였다.

자금예산서를 받아드시고 한동안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일군은 자기들이 너무 엄청난 예산안을 작성한데 대하여 후회하면서 머리를 숙이였다.

예산서를 다 읽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밖에도 예산이 겨우 5만원인가고, 이것을 가지고 뭘 하겠는가고 우렁우렁하게 말씀하시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어리둥절해있는 일군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전에 쏘련에서 영화만드는것을 좀 보았는데 영화제작공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적은 자금을 가지고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낼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5만원은 너무 적은것 같다고, 한 10만원을 가지고 해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손수 5만원이라는 수자를 지우시고 그 자리에 활달하신 필체로 10만원이라는 수자를 적어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격정에 휩싸여있는 일군을 바라보시면서 영화는 중요한 선전선동수단인것만큼 아무리 어려워도 자금을 아끼지 말고 영화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속에 나라의 형편이 어려운 속에서도 인민들을 건국에로 불러일으키는 첫 기록영화《우리의 건설》이 나오게 되였으며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모습이 력사의 기록으로 길이 전해지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