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절세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세계적인 시인 조기천

 2024.6.17.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이름있는 작가나 작곡가, 화가도 있고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기여한 명작도 있다는것을 세상사람들이 알게 하여야 한다.》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뛰여난 예술적천품을 지니시고 주체적문학예술의 발전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혁명생애의 갈피갈피에는 조선민족이 배출한 작가들을 시대와 인류앞에 더 높이 내세우시려고 마음쓰신 그이의 숭고한 뜻과 고매한 풍모가 뜨겁게 어리여있다.

주체90(2001)년 8월 력사적인 로씨야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모스크바로 가시던 도중 뿌슈낀명칭 옴스크국립과학도서관을 참관하시였다.

《조선-맑은 아침의 나라》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준비하고있던 이곳 도서관일군들은 전시회개막을 앞두고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드릴 일념을 안고 1930년대에 고리끼명칭옴스크사범대학에서 공부한 시인 조기천의 성적증을 찾아내여 전시회장에 내놓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 성적증앞에 이르시자 해설원은 조기천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면서 그를 《조선의 마야꼽스끼》라고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시에 해설원의 평가를 바로잡아주시면서 조기천은 《조선의 뿌슈낀》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마야꼽스끼와 뿌슈낀은 다같이 로씨야의 이름있는 시인들이다.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츠 마야꼽스끼(1893. 7. 19-1930. 4. 14.)는 이전 쏘련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시문학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다.

마야꼽스끼의 창작에서 전환이 일어난것은 사회주의10월혁명이후시기였다. 그는 혁명직후에 시 《우리의 행진곡》(1917), 《혁명송가》(1918), 《좌익행진곡》(1919), 서사시 《1억 5천만》(1919-1920)과 같은 혁명적작품들을 쓴데 이어 1924년에 서사시 《울라지미르 일리이츠 레닌》을 창작하여 쏘베트문학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를 확립하였다. 서사시는 력사와 시대의 기수, 당과 인민의 수령으로서의 레닌(1870-1924)의 형상을 빛나게 창조하였다. 그밖에 사회주의10월혁명승리 10돐을 맞이하여 쓴 서사시 《좋다!》(1927), 쏘련의 첫 5개년계획을 노래한 서사시 《목청껏 웨치노라》(1930), 애국주의적인 시 《쏘베트려권》(1929) 등 많은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있다.

하기에 로씨야의 문학계에서는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비롯한 수많은 시들을 창작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조선의 혁명적인 시문학 특히 서사시문학발전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한 조기천을 《조선의 마야꼽스끼》로 평가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기천을 《조선의 마야꼽스끼》로만 보지 않으시였다.

마야꼽스끼보다 근 한세기전 로씨야사실주의적민족문학의 길을 개척한것으로 하여 로씨야문학의 할아버지로 찬양되고있으며 세계적인 대문호로 불리우고있는 뿌슈낀과 같은 지위에 있는 력사적인 인물로 조기천을 추억하고계신분이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알렉싼드르 쎄르게예비츠 뿌슈낀(1799. 6. 6-1837. 2. 10.)은 로씨야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며 로씨야사실주의문학의 창시자이다.

뿌슈낀은 락후하고 가혹한 농노제도와 전제제도를 없앨것을 지향하면서 인도주의와 인간의 도덕적완성을 사회의 개조와 진보를 이룩하기 위한 방도로 내세웠다. 그는 일관하게 압제를 반대하고 귀족들의 잔인하고 가혹한 처사와 부패한 현실을 비난하였으며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고 그들의 해방과 자유를 바라는 진보적립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또한 창작에서 높은 예술적기량을 발휘하고 로씨야문학에서 사실주의발전의 길을 개척하였으며 인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입말의 우수한 요소를 도입하여 아름답고 평이한 문학어를 다듬어냈다.

이처럼 뿌슈낀은 로씨야의 첫 민족시인, 사실주의문학의 개척자로서 로씨야사실주의민족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인 조기천을 《조선의 뿌슈낀》으로 평가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빛내이는데 특출한 공헌을 한 조기천을 시대와 인류앞에 더 높이 내세우시려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으며 주체적인 혁명문학뿐 아니라 인류의 선진적인 문학작품들과 그것들을 창작한 재능있는 작가들을 존중하시는 그이의 고매한 풍모가 어리여있다.

조기천(1913. 11. 6-1951. 7. 31.)은 조선로동당의 품속에서 영생하고있는 혁명시인이다.

해방전 그는 고리끼명칭옴스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아시아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해방후 조국에 돌아온 그는 해방된 조국땅의 자유로운 현실과 밝은 미래를 두만강의 흐름을 통하여 노래한 첫 서정시 《두만강》(1946. 3)을 창작하였으며 계속하여 해방의 감격을 구가한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1946. 4), 력사적인 토지개혁을 반영한 《땅의 노래》(1946. 6) 등 여러편의 서정시와 장편서사시를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열렬한 흠모의 정을 안고 어버이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깊이 연구학습하는 과정에 그것을 예술적화폭으로 재현할것을 열렬히 소망하여온 그는 여러 차례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았으며 주체36(1947)년 2월에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창작하였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를 시적화폭으로 재현한 이 서사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로 충만되고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기념비적작품,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훌륭히 반영하여 나온 첫 서사시인것으로 하여 문학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서사시의 창작을 계기로 그의 창작은 새로운 앙양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그는 새 조국건설로 들끓는 인민들의 보람찬 생활감정을 노래한 서정시들과 해방후 로동생활주제의 서사시를 비롯한 많은 시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락동강계선에까지 나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강렬한 체험에 기초하여 서정시 《불타는 거리에서》(1950. 8), 《조선의 어머니》(1950. 9), 《죽음을 원쑤에게》(1951. 1), 《조선은 싸운다》(1951. 2), 《나의 고지》(1951. 7) 등 수많은 전투적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서사시 《비행기사냥군》을 창작하다가 미제침략자들의 폭격으로 희생되는 순간까지 손에서 시창작의 필봉을 놓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 민감하였을뿐 아니라 전투적기백과 높은 혁명적열정, 풍부하고 세련된 독특한 언어형상으로 인민들의 생활과 투쟁을 반영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근로자들을 새 조국건설과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

조선의 혁명적인 시문학 특히 서사시문학발전에서 선구자적역할을 한 조기천을 마야꼽스끼가 아니라 뿌슈낀과 같은 지위에 놓는것은 민족사적견지에서 보나 문학사적견지에서 볼 때 응당한것이다.

절세위인의 비범한 예지와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에 반세기전에 세상을 떠난 재능있고 열정적인 시인이였던 조기천은 두번다시 세계적인 시인으로 태여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