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조영재
2021.3.5.
들끓는 사회주의협동벌을 바라볼수록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저도모르게 가슴후더워지는 우리 인민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주체53(1964)년 5월 어느날 농업과학자들은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저택정원에 들어서던 그들은 그만 굳어지고말았다.
여러가지 관상용나무나 아름다운 화초들로 장식되여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있어서 눈앞에 펼쳐진 정원의 모습은 너무도 상상밖이였던것이다.
정원은 마치도 하나의 시험농장을 방불케 하였다.
표말들이 질서정연하게 세워져있는 시험포전들, 푸르싱싱하게 자라는 수십종의 알곡작물과 남새, 먹이작물들…
그것을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가슴은 후더워올랐다.
정결하게 꾸려지고 알뜰히 가꾸어진 시험포전들이야말로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자나깨나 마음쓰시는 우리 수령님의 끝없는 헌신과 로고를 그대로 보여주고있기때문이였다.
밀보리시험포전으로 걸음을 옮기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경지가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 조건에서 알곡문제를 해결하려면 밀보리작물을 심어 두벌농사를 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우선 품종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여러가지 밀보리품종의 재배방법과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이렇듯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는 우리 수령님을 우러를수록 농업과학자들의 눈굽은 절로 뜨거워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알수 없었다.
사실 정원에는 자그마한 못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도 시험포전이 생겨나게 되였다.
어느해 봄날 새로운 품종인 한 농작물의 모를 손수 구해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원으로 나오시여 그것을 심을 자리를 돌아보시였다. 그런데 심을만한 곳은 이미 다 농작물을 심어서 자리가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정원에 있는 작은 못을 가리키시며 그것을 메우고 그 작물을 심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그 못만은 그냥 놔두었으면 하는 의향을 간절히 말씀올렸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속에 들어가는것이 자신에게는 휴식인데 무엇때문에 나혼자 여기서 소풍하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그 못을 메우도록 하시고 새 작물을 심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작물의 생육과정을 몸소 관찰하시였다.
저택의 정원을 시험포전으로 만드시고 작물들을 직접 가꾸어보시며 새로운 농사방법의 본보기를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님.
하기에 온 나라 인민들모두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간절해지는 우리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황금가을을 안아올 일념으로 애국의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