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전화의 나날에도

 2019.8.23.

인민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우리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전쟁도 인민을 위하여 하고 인민의 미래를 위하여 한다는 숭고한 애민사상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전시에도 인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일군들이 전시조건이라고 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인민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고 또 전쟁이 끝난 다음 우리 조국을 부강한 나라로 건설할수 있습니다. 일군들은 전시조건이라 하더라도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13권 64~6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이 사업을 전당적, 전국가적사업으로 힘있게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시기 적들의 야만적인 략탈로 하여 심히 령락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것을 잠시도 미룰수 없는 절박한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주체40(1951)년 1월 21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결론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몇가지 과업》에서 전시조건이라고 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무관심하는 경향을 철저히 극복하고 생활필수품생산과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상품류통사업을 개선하고 의료봉사사업을 강화하도록 하시였으며 특히 전재민구제사업을 잘하고 애국렬사유가족,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들에 대한 국가적 및 사회적원호사업을 널리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이어 주체40(1951)년 1월 25일에는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내각결정 제197호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한 사업에 선차적주의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우선 인민들의 먹는 문제에 선차적관심을 돌리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내각결정과 지시로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가족들에 대한 식량공급량을 늘이도록 해주시고 주체41(1952)년 10월 1일부터는 국가적으로 그들에게 정상적인 식량공급외에 눅은 값으로 보충미를 더 공급하도록 하시였다.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어려운 나날 자신께서는 잡곡밥을 잡수시면서도 현지인민들의 식량사정을 료해하시고 그들에게 전략물자로 보관해두었던 흰쌀까지도 아낌없이 나누어주도록 하신분이 다름아닌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형편이 어려운 때에 최고사령관이라고 하여 결코 다르게 생활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일군들이 4월의 명절을 맞으며 소박한 축하연을 마련하는것마저 엄하게 막으시며 그들에게 절약운동의 앞장에 설것을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량이 떨어진 령세농민들에게 국가량곡을 공급하도록 하시고 빈농민들이 나라에 바치지 못한 현물세와 관개시설사용료, 반환하지 못한 대여곡마저 전량을 면제하여주도록 하시였으며 농민들에게 모자라는 식량과 종곡을 국가에서 대여하여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한 인민들의 살림집문제를 푸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수많은 인민들이 집을 잃고 고생하는데 최고사령관이라고 어떻게 특별한 집에서 살겠는가고 하시며 보통살림집에 지휘처를 정하시고 기껏해야 6~7명밖에 들어앉지 못하는 작은 방에 계시면서도 인민들의 살림집문제를 풀기 위하여 막대한 국가자금과 자재를 들여 집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도록 배려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적들의 야수적폭격과 만행으로 집을 잃었거나 파괴당한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살림집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하여주며 기관, 기업소에서는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의 살림집을 해결해주고 농민들에게는 살림집건설에 소요되는 목재를 무상으로 보장해주는 조치가 취해졌다. 주체41(1952)년 한해에만도 국가로부터 6억원의 주택신축보수자금이 지출되였으며 비록 전시조건에 맞는 수수한것이지만 많은 살림집들이 새로 일떠서거나 보수되여 사람들이 집걱정을 모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인민생활안정을 위하여 인민들의 입는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해당 부문에서 주민들에 대한 생활필수품공급사업을 개선해나가도록 하시였다.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는 화페로 생활비가 지불되는외에 옷과 신발을 비롯한 일용필수품이 현물로 공급되였고 로동보호물자와 작업필수품이 무상으로 차례졌으며 부업경리가 개선되여 그로부터의 보충적수입이 또한 늘어났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생활안정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심으로써 전시에도 우리 인민들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쓰고사는 집문제 등에서 큰 불편을 몰랐으며 오직 수령님께 자기의 모든 운명을 의탁하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 사업의 하나로서 전재민구호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작전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재난을 당한 인민들을 구제하며 그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방도를 구상하시고 주체39(1950)년 11월 20일 전재민구호대책에 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하시였으며 주체40(1951)년 1월 25일 또다시 내각결정 제197호에서 전재민구제사업을 강력히 밀고나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전재민들의 생활을 돌보는 상설기관으로서 전재민구호위원회가 중앙으로부터 리에 이르기까지 조직되여 전재민구제사업을 통일적으로 조직진행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북부고원지대개발사업이 진행된것은 전재민들에게 안착된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조사자료에 기초하여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와 전연지대의 전재민들을 북부고원지대에 이주시켜 대규모적인 국영농장을 창설하여주시였다. 그러시고는 1만 5 000여명이나 되는 이곳 전재민들의 겨울나이를 념려하시여 매 사람들에게 솜옷 3벌과 겨울신발 3컬레, 솜과 천, 솜버선과 장갑, 털모자를 보내주시였으며 7 000여세대가 당장 살림을 할수 있게 밥가마를 비롯한 부엌세간들을 일식으로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애국렬사유가족, 인민군후방가족, 영예군인들의 생활에 대하여 언제나 마음쓰시며 자그마한 불편이 있을세라 극진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유가족, 인민군대후방가족, 영예군인들에 대한 국가적 및 사회적원호사업을 광범히 조직하여 그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시였으며 그들에 대한 원호사업을 경제생활안정에 국한시키지 않고 그들을 당의 핵심군중으로 장악하고 사회적으로 내세우는 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국가에서 맡아 키울데 대한 혁명적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주체40(1951)년 1월 1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에서 희생된 애국렬사들의 유자녀학원을 설치할데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하시고 1월 21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또다시 애국렬사유자녀들을 양육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육친적인 사랑과 보살피심속에 평양시를 비롯한 각 도에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위한 애육원, 초등학원, 유자녀학원 등이 일떠서 주체40(1951)년 4월 1일부터 문을 열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아들을 맡아키우는 국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하여 간부들이 고아를 맡아키우는 모범을 보일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자신께서 몸소 고아들을 데려다가 육친의 사랑을 부어주시며 최고사령부 작전대곁에서 키우시였다.

위대한 어버이사랑속에서 우리의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은 세상에 부럼없이 자라면서 미래의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되여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시 인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기 위하여 인민들의 건강증진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의료봉사사업을 끊임없이 개선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위원회 명령으로 주체39(1950)년 7월부터 적의 공습이나 함포사격 또는 적들의 만행으로 부상당한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구급치료를 해주도록 하시였으며 주체40(1951)년 1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으로 전재민들에게 무상치료를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앙으로부터 리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위생방역체계를 세워주시였으며 주체41(1952)년 2월 20일 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적세균무기와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기 위하여 전선과 후방에서 전반적예방주사를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1월 20일 보건성 책임일군들에게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를 잘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1년도 못되는 사이에 전반적무상치료제실시를 위한 준비사업이 완전히 끝났으며 이에 기초하여 주체42(1953)년 1월 1일부터 우리 인민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국가부담에 의한 전반적무상치료제가 전지역에서 일제히 실시되게 되였다.

참으로 평시도 아닌 준엄한 전시에 전반적무상치료제가 실시된것은 인민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하여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며 온갖 육친적배려를 다 돌려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인덕정치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이렇듯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한없이 위대한 어버이사랑이였다.

이 사랑은 인민대중을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단결시키고 후방을 반석같이 강화하며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사업에서 인민들이 헌신성, 용감성,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할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