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자랑할만 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에는 일찍부터 우리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수많은 우수한 문헌유산들이 전해오고있으며 여기에는 우리 인민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다.
우리 나라의 옛날책가운데는 18세기말~19세기초의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의 문집인 《여유당전서》도 있다.
이 책은 총 503권으로서 사회적문제를 포함하여 정치, 경제, 문화, 국방, 대외관계, 자연 등 각 분야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서술되여있으며 그중 시문집은 우리 나라 문학유산가운데서 고귀한 재보의 하나로 된다.
이 글에서는 《여유당전서》에 반영된 정약용의 한자서정시들의 진보적특성에 대하여 서술하려고 한다.
경기도 양주군의 량반집안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앞선시기 실학자들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실학연구에 뜻을 두고 거기에 모든것을 지향시킨 정약용은 당시 조선봉건왕조의 모순을 인식하고 봉건제도의 불합리한 측면들을 비판하면서 일련의 사회개혁사상들을 제기하였을뿐아니라 뛰여난 문학가로서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하고 관료배들의 가혹한 수탈행위를 폭로하는 등의 수많은 한자서정시들을 창작하였는데 그 수는 2 000여편에 달한다.
정약용이 창작한 한자서정시들의 진보적특성은 첫째로 붕괴의 마지막운명을 겪는 봉건사회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그대로 비판적으로 반영한것이다.
정약용은 한자서정시들에서 19세기를 전후한 조선봉건왕조의 악착한 착취자인 봉건지주와 그와 대립되여있는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예리하게 묘사하면서 인민대중의 항의와 분노의 감정을 훌륭하게 형상하였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적성촌의 오막살이》,《굶주리는 백성의 노래》, 《솔 뽑는 노래》, 《승냥이와 이리》, 《슬프다, 양기를 끊었구나》 등 여러 작품들을 들수 있다.
시 《적성촌의 오막살이》와 《굶주리는 백성의 노래》는 그가 경기도 암행어사로서 인민들의 생활을 더 깊이 알게 된 심각한 시적체험에 기초하여 창작된 작품들이다.
시 《적성촌의 오막살이》는 봉건통치배들의 파렴치한 학정에 시달리는 당시 인민들의 눈물겨운 생활을 생동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시는 먼저 농촌의 오막살이에 대한 외적묘사로부터 시작하여 억압받는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에 초점을 돌리였다.
시내가에 찌그러진 집 게딱지 같은데
새바람에 이영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묵은 재에 눈이 덮여 부엌은 차고
허물어진 벽틈으로는 별빛이 비쳐드네
…
臨溪破屋如甆鉢
北風捲茅榱
舊灰和雪竈口冷
壞壁透星篩眼豁
…
서까래만 앙상하게 남은 게딱지같은 이 오막살이집의 재산이란 조 서너이삭,고추 한꿰미,깨여진 항아리,찌그러진 시렁대,검푸른 무명이불 단 한채,어깨가 다 나온 해진 옷가지뿐이여서 이것들을 다 팔아도 《칠팔전도 안찰》 정도였다.
…
큰아이 다섯살에 기병으로 등록되고
셋에 난 작은 애도 군적에 적혔다네
두 아이 군포세로 돈 닷냥 물고나니
죽기라도 원할판에 옷이 다 무엇이랴
…
…
大兒五歲騎馬簽
小兒三歲軍官括
兩兒歲貢錢五百
願渠速死況衣褐
…
이렇게 시는 농민들의 불행과 고통의 근원이 봉건관료제도의 가혹한 조세, 고리대와 군포제에 있다고 적발폭로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이 한집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강조하고있다.
정약용은 시 《굶주리는 백성의 노래》에서 《적성촌의 오막살이》의 주제와 사상을 한층 더 심화발전시켰다.
시는 고체시형식의 장시로서 세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는데 매개 부분은 각기 독자적인 시편이라고 할수 있을만큼 기승전결의 시적구조를 가지고 사상예술적으로 완결되여있다.
앞부분에서는 굶주리는 백성들의 비참한 정상을 위정자들의 위선적인 행위와의 대비속에 보여주면서 량반통치배들의 반인민적정체를 적발폭로하였다.
여기에서는 굶고 헐벗어도 호소할데가 없는 농민들이 고을사또가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헛소문을 듣고 관가로 모여들어 개,돼지도 마다할 죽을 받아가는 비참한 정상을 보여주면서 량반통치배들이야말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살진 도적이라고 분노에 차서 힘찬 목소리로 단죄하고있다.
…
어진 정사를 하려고나 하였으랴
쌀을 주려고는 하지도 않았더라
관가 창고엔 악한이 엿보이거니
어찌 우리들이 굶주리지 않을소냐
관가 마구간엔 마소들도 살졌거니
이건 바로 우리들의 피땀이여라
…
…
亦不願行仁
亦不願損貲
官篋惡人窺
豈非我所羸
官廐愛馬肥
實爲我膚肥
…
앞부분에서는 이처럼 서사적묘사와 서정적묘사를 잘 배합하여 관가의 략탈적본성,사회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면서 진실을 깨달은 주인공이 그런 악한에게 《어진 정사》를 바란 자신을 뉘우치면서 창황히 발길을 돌리는것으로 끝맺고있다.
중간부분에서는 같은 주제를 정론시의 형식으로 더 심화시켜 훨씬 강한 격조로써 통치자들을 고발하고있다.
…
만백성이 세상에 함께 태여났으나
여위여 뼈만 남고 병들어 허덕이네
말라빠진 산송장인양 기진맥진 쓰러지고
길이란 길에는 류랑민뿐이고나
…
엄숙하고 점잖다는 조정의 《현신》들아
나라의 운명은 경제에 달렸나니
억만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거늘
이들을 구원할자 바로 그대들이 아닌가
…
林林生蒸民
憔悴含瘡痍
槁莩弱不振
道塗逢流離
…
肅肅廊廟賢
經濟仗安危
生靈在塗炭
拯拔非公誰
여기에서는 주검과 굶주림이 지지누르는 봉건사회의 숨막히는 현실,인민들의 기막힌 운명을 산 화폭으로 재현하면서 벼슬아치들에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할데 대하여 촉구하고있다.
시의 마지막부분은 주제를 더한층 심화발전시키고있는데 그 시적구조는 앞부분의것과 류사하다.
굶주리는 류랑민들의 처량한 신세와 통치배들의 부화방탕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그려보이면서 봉건관료배들의 얄미운 심보와 그릇된 처사를 신랄한 풍자로써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
사또님네 문간안엔 주육이 랑자하고
풍악소리 울리면서 명기명창 찾아간다
태평세월 만난듯이 희희락락 지껄이며
대감님네 풍도라고 거드름 빼고있네
…
…
朱門多酒肉
絲管邀名姬
熙熙太平象
儼儼廊廟姿
…
시인은 뒤부분에서 량반통치배들을 풍자적형상으로 묘사하고 백성들의 고통과 불행의 장본인이 다름아닌 이자들이라는것을 명백히 확인하였다.
정약용은 시 《솔 뽑는 노래》,《승냥이와 이리》, 《슬프다, 양기를 끊었구나》에서도 봉건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전형적으로 묘사하였다.
《솔 뽑는 노래》
백련사 서쪽 석름봉에서
중한사람 싸다니며 솔을 뽑네
어린 솔싹 자라나서 겨우 두어치
약한 줄기 연한 잎이 귀엽기도 하였네
…
애솔도 자라면 큰 소나무 되리니
화근을 뽑는데 그 어이 게으르랴
이제부터 솔뽑기 솔 심듯 하려니
잡목이나 남겨두어 겨울차비 하리라
《僧拔松行》
白蓮寺西石廪峰
有僧彳亍行拔松
穉松出地纔數寸
嫰幹柔葉何丰茸
…
此松雖穉留則大
拔出禍根那得慵
自今課拔如課種
猶殘雜木聊禦冬
《승냥이와 이리》
…
이리여 승냥이여
우리 삽삽개 잡아갔으니
우리 닭을랑은 그만두어
사랑하는 자식마저 팔았는데
나의 안해는 사갈자도 없구나
네놈들은 나의 가죽 벗겨가고
네놈들은 나의 뼈마저 부시누나
우리의 논밭을 쳐다보아라
그 얼마나 가엾은 형편이냐
…
《豺狼》
…
狼兮豺兮
旣取我尨
毋縛我鷄
子旣粥矣
誰買吾妻
爾剝我膚
而槌我骸
視我田疇
亦孔之哀
…
《슬프다, 양기를 끊었구나》
고을문 내닫다가 땅치고 통곡하네
병정나간 남편의 세금 무는것 있다지만
남자가 제 양기를 제손을 끊었단 말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노라
…
《哀絶陽》
哭向縣門號穹蒼
夫征不復尙可有
自古未聞男絶陽
舅亡己縞兒未澡
…
《솔 뽑는 노래》에서 통치배들의 착취에 항거하여 심어놓은 소나무마저 뽑자고 하는 백련사 중의 형상, 《승냥이와 이리》에서 참을수 없는 분노에 몸부림치며 고을문에 내달아 《이리와 승냥이》라고 절규하는 분격의 웨침, 《슬프다, 양기를 끊었구나》에서 차마 들을수 없는 비참한 사정을 호소하는 녀주인공의 모습과 같은것은 비록 무장을 갖추고 이 시기 농민투쟁의 대렬에 나선 조직적인 군중으로 묘사하지는 못하였지만 인민대중의 항의와 분노의 감정을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정약용의 한자서정시들에서 도달한 봉건관료들에 대한 비판적심도는 우리 나라 중세 시인들중에서 대비할 사람이 없을만큼 높고 강하다.
정약용이 창작한 한자서정시들의 진보적특성은 둘째로 봉건통치배들의 부패상,추악한 행위를 풍자적으로 반영한것이다.
정약용은 치밀한 비유와 강렬한 풍자적수법을 적용하여 온 산의 솔잎을 다 갉아먹는 흉물스러운 송충이, 어둠을 따라 찾아들면서 인간의 피를 빠는 모기, 잡으라는 쥐는 안잡고 도리여 쥐와 등살이 맞아 나라살림을 헐어내는 간악한 고양이, 주둥이에 시뻘건 피칠을 하고 백주에 거리를 싸다니는 승냥이, 이리, 호랑이 등 야수의 군상들을 가면벗은 통치배들의 진상으로 적라라하게 풍자하여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호랑이사냥》,《송충이》,《고양이의 론고장》, 《모기》등 여러 작품들을 들수 있다.
시 《호랑이사냥》은 범으로 인한 환난을 막는다는 구실밑에 범보다도 더 심하게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지방관료들의 포악성을 폭로한 작품이다.
…
원님 사냥 나온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웬걸 마을사람들은 도리여 질겁하네
장정들은 도망하여 제 자취를 감추고
늙은이들 할수없이 포로처럼 붙들린다
기세 높은 군노놈들 집집마다 싸다니며
나팔 불고 피리 불며 야단법석하는구나
씨암 닭 잡아내고 돼지 삶아 튀하기에
온 마을 들끓으며 방아 찧어 흰쌀밥 짓고
초석깔아 대접하기 동네사람 넋을 잃네
…
…
前驅鑱出一村驚
丁男走藏翁被膚
小校臨門氣如虹
嘍囉亂梧紛似雨
烹鷄殺猪喧四隣
舂糧設席走百堵
…
여기서는 산 깊고 숲 짙은 산골에 호랑이가 설레여 백성들은 한낮에도 문단속을 잘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인데 고을원이 호랑이사냥을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온 마을이 질겁하는 내용과 호랑이의 환난을 없앤다는 구실로 깊은 산골에까지 찾아들어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봉건관료들의 전횡을 예리하게 풍자비판하고있다.
심심산골에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고 흉칙한자들 관료배들에 대한 비판정신은 시의 결속부분에서 서정적주인공의 주정을 통하여 더욱 두드러진다.
…
흉악한 관리놈들 밤중에 문 두드리면
아 소름끼치고 치가 떨려라
차라리 남은 호랑이 문간에 세워두고
오는 관리 막았으면
…
生憎悍吏夜打門
願留餘虎以禦侮
이처럼 《호랑이사냥》에서는 대비법과 비유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호랑이보다 더 사납고 흉악한 관료배들의 죄행을 통쾌하게 풍자하고있다.
시 《송충이》도 천그루,만그루 울울창창하던 푸른 솔숲을 하루밤사이에 모조리 먹어치워 시들게 한 송충이에 비유하여 통치배들의 가혹한 수탈과 착취행위의 악랄성을 폭로하고있다.
그대 아니 보았더냐
천관산에 가득 찼던 솔숲을
천그루 만그루
온 산을 삼대처럼 뒤덮었더니라
아름드리 고목들은 울울창창 들어섰고
돋아나는 어린 솔도 고이고이 자랐어라
하루밤에 송충이들 산에 퍼져 나와서
수많은 주둥이로 모조리 먹어치우누나
…
君不見天冠山中滿山松
千樹萬樹被衆峰
豈惟老大鬱蒼勁
每憐穉小羅丰茸
一夜沴蟲寒天地
衆喙食松如餈饔
…
이밖에도 정약용은 《모기》, 《고양이의 론거장》등의 한자서정시작품들에서도 어둠을 따라 찾아들면서 인간의 피를 빠는 모기, 잡으라는 쥐는 안잡고 도리여 쥐와 공모하여 알뜰한 나라살림을 헐어내는 간악한 고양이에 비유하여 통치배들의 부패상을 폭로하고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정약용의 한자서정시들은 풍자적수법과 비유법을 잘 배합하여 반동적량반통치배들의 죄행을 힘있게 폭로단죄하고있으며 시인자신의 주정토로를 잘 살려 시의 호소성을 강화하고있다.
정약용의 한자서정시들은 이처럼 진보적인 특성을 가지고있지만 작가자신의 세계관상 제한성으로 하여 일련의 부족점들도 가지고있다.
그것은 작가자신이 량반관료인것으로 하여 당대사회의 모순이 봉건제도자체에서 산생된다는것을 보지 못한 나머지 결국 봉건왕권이나 량반통치제도, 통치계급자체를 부정하지 못하였으며 수탈과 전횡을 일삼는 개별적인 악질관료들을 비판하는데만 그치고 피착취인민대중의 근본리익을 대변하지 못하였다.
뿐만아니라 당대의 사회현실을 놓고 비판은 하고있으나 한갖 걱정이나 동정을 하고있을 뿐 그것을 바로잡을 옳바른 방도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은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그의 진보적인 사회정치사상과 미학적견해를 반영하여 창작한 한자서정시들은 우리 나라 중세문학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고전문헌들에 반영되여있는 문학작품들을 력사주의적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에서 옳바로 평가하여 우수한 민족문학예술유산으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하여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