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 박사 김홍일
2024.4.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슬하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나가있는 자식을 더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대외건설자들에게 한없이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어리여있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가운데는 아프리카에서 건설사업을 진행하고있던 한 대외건설자가 받아안은 뜨거운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체66(1977)년 10월 어느날 조선의 한 대외건설자는 뜻하지 않은 일로 심한 부상을 당하고 의식을 잃은채 주재국병원에 실려가게 되였다.
그는 침상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귀에 대고 《조국에서 의사를 보내주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이요》라고 안타까이 소리치는것을 듣고 가까스로 눈을 뜨게 되였는데 분명 조국에서 온 의사가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있었다. 순간 그는 조국의 품에 안겼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였는데 어떻게 되여 머나먼 아프리카땅으로 조국의 의사가 오게 되였는가를 알게 되자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길없어 베개잇을 적시도록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부상을 당한 사실은 그날로 조국에 알려지고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일군들에게 그가 자동차사고로 부상을 당하였다는데 형편을 알아보고 조국에 데려와야 하겠다고, 환자의 상태를 빨리 알아봐야겠다고 해당 나라에 있는 대표부에 과업을 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사랑의 전파가 대륙을 넘어 날아왔고 대표부의 일군들이 주재국의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현지로 달려왔다.
그때 환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에 있었다. 주재국의 의사들은 그가 소생할 가망이 없는것으로, 기적적으로 생명은 구원된다고 하여도 불구는 면할수 없다고 하였다. 심한 뇌진탕에 많은 출혈이 있은데다가 두 다리의 뼈가 22군데나 부서졌으니 현대의학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어쩔수 없다는것이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담보할수 있는 유능한 의사를 보내자고 하시며 정형외과에 권위있는 중앙병원의 외과과장을 비행기로 보내며 의료기구와 의약품도 충분히 가지고 갈데 대한 긴급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대양과 대륙을 넘어 조국에서 의사가 그를 찾아가게 되였다.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여 마침내 그를 사경에서 벗어나게 하였고 여러 차례의 수술을 하여 다리의 부상도 점차 회복되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또 한장의 전보문이 날아왔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환자를 조국에 데려다 치료를 받도록 해주셨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환자는 꿈결에도 그립던 조국, 살아서 다시는 밟을수 없을건만같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으며 수도의 중앙병원과 지방의 료양소들에서 여러달동안 충분한 치료를 받고 모든 육체적기능이 완전히 회복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두번다시 태여난 그가 우리 나라 경제대표단성원으로 그 나라에 갔을 때 치료를 맡았던 그 나라의 의사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외국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라와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각하의 정치하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주체의 조국에서 사는 당신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머나먼 아프리카땅에서 사경에 처했던 한 대외건설자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베풀어주신 그 뜨거운 사랑이 어찌 이 한사람에게만 돌려주신 사랑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