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줄 모르는 탐구의 자욱자욱으로 한생을 이어오신
그이께서 지니고계신 혁명과 건설, 인간생활과 사회생활의 다방면적인 분야에 대한 식견은 폭과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것이였으며 과학성과 론리성에 있어서나 현실적의의에 있어서 보통의 상식을 훨씬 뛰여넘는 초인간적인것이였다.
《우리 일군들은
서해갑문은 날바다 한가운데를 막아 세운 세계적인 창조물이다.
사람들은 서해갑문이라고 하면 큰물피해방지, 수송문제해결 등 인민경제적의의가 대단히 큰 기념비라는데 대해서 누구나 잘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과학적기초우에서 세워졌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서해갑문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사업이 벌어지고있던 때에 일군들과 전문가들은 하나의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되였다.
새로 세우게 될 갑문의 위치를 어디에 정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엇갈린 주장들만이 오고갈뿐 정확히 확정을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일반적으로 갑문의 위치문제는 갑문건설에서 기본초점으로 되고있는 관건적인 문제이다. 더구나 밀물과 썰물이 심하게 오르내리는 서해바다와 대동강사이에 갑문을 건설해야 하는 조건에서 그 위치를 어디에 정하는가 하는것은 갑문건설은 물론 앞으로의 운영과도 크게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였다. 어떤 사람들은 남포웃쪽 검산리에 세우자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은률군의 압도와 메추리꼬리사이가 좋다는 안을 제기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70(1981)년 5월 22일
이윽고 그이께서는 바로 여기가 갑문을 세울 가장 리상적인 위치라고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영문도 모르고
그곳은 마치 자막대기를 대고 그어놓은것과도 같이 대동강과 서해바다의 경계가 명확하게 안겨오는 곳이였다. 바다쪽은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강물쪽은 흘러내리는 퇴적물로 하여 흐려있는것이 누구에게나 확연하게 안겨들었다. 그 경계선을 따라 세운다면 갑문은 틀림없이 끝살뿌리-피도-광량만사이를 련결하는 날바다우의 가장 리상적인 구조물로 될것이였다.
한생을 수리공학분야에 복무하면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있던 전문가들도 이 일대의 지형과 물세에 익을대로 익은 일군들도 날바다 한가운데에 지금까지 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이런 경계가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하였던것이다.
그 자리는
일군들과 학자들은 망망한 바다까지도 손금보듯 환히 들여다보시며 천지조화를 꿰뚫어보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