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구려인민들의 상무기풍을 보여주는 군사무용

 2019.9.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시기 인민들과 무사들속에서는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련마하기 위한 춤이 널리 추어졌으며 칼춤과 창춤을 비롯하여 무기를 가지고 춤을 추는 군사무용이 널리 보급되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4권 21페지)

고구려사람들은 슬기롭고 용맹하였을뿐아니라 조국방위를 가장 영예로운 일로 여기고 무술을 배우는것을 남자들의 의무로 여기였다. 그러므로 고구려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달리기와 말타기, 활쏘기와 칼쓰기를 배웠으며 민간오락과 경기들도 모두 무술을 기본으로 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이 지녔던 이러한 상무기풍은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련마하기 위한 춤동작들에 그대로 반영되여 무기를 소도구로 하여 추는 군사무용이 창조되고 널리 보급되게 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군사무용으로서는 칼춤, 창춤, 활춤 등을 들수 있다.

칼춤은 사람들이 칼을 만들고 검술을 익히는 과정에 발생발전하였으며 그의 내용과 형식은 해당 나라와 민족의 생활풍습과 감정정서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고구려의 칼춤은 칼쓰기를 련마하기 위한 무술훈련과정에 칼쓰기의 동작들을 률동화하고 그것을 소도구로 하여 춤을 추면서 생겨난 긴칼춤이였다.

긴칼을 소도구로 하여 추는 칼춤은 고구려의 고국원왕릉, 팔청리무덤벽화 등에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고구려무덤벽화에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져있다는것은 당시 무기를 소도구로 한 군사무용이 고구려사람들속에서 널리 장려되고 추어져왔으며 고구려인민들이 지녔던 상무기풍을 엿볼수 있게 한다.

고국원왕릉의 벽화에는 두 사람이 달리는 말을 사이에 두고 앞뒤에서 칼춤동작을 보여주고있는데 각각 오른손에는 고리자루긴칼을 들고 왼손에는 활을 들고있다. 그 가운데서 말앞에 있는 사람은 한 팔을 메고 한팔은 펴고있는데 메고있는 팔에는 활을 들고 편팔에는 칼을 들고있다. 그리고 왼쪽다리는 번쩍 들고 오른쪽다리는 힘있게 앞으로 내디디고있다.

말뒤에 있는 사람은 앞사람과 반대로 메고있는 팔에 칼을 들고 편팔에는 활을 들고있는 춤동작을 보여주고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칼과 활을 손에 쥔 상태에서 들어올린 팔은 다리와 조화를 이루고있으며 칼춤형상을 잘 나타내고있다.

그리고 말뒤에 있는 춤군은 앞사람과 대조되게 높이 뛰여오르면서 칼을 쥔 오른손을 높이 추켜들고 활을 쥔 왼손은 수평으로 들고있다.

팔청리무덤벽화에는 두사람이 서로 칼쓰기를 겨루면서 률동적인 칼춤동작을 보여주고있다.

그것을 보면 가운데있는 한사람은 오른손에 칼을 잡고 대방을 찌를듯이 칼을 든 팔을 바싹 굽혀 든 상태이며 왼팔을 굽혀 왼손을 귀가에 대고 다리는 좌우로 벌린 자세이다. 그리고 다른 한사람은 팔을 비껴든 몸가짐을 하고있다.

이것은 칼쓰기동작 그대로인 칼춤의 한 동작을 련상시키고있다.

이렇게 고구려무덤벽화에서 보이는 칼춤동작들은 모두가 률동적으로 다듬어지고 세련된 모습을 나타내고있으며 이를 통하여 고구려사람들이 련마하여온 무술훈련의 높은 경지를 그대로 엿볼수 있게 한다.

창춤은 인민들의 수렵활동과 조국방위를 위한 투쟁과정에 발생발전한 춤으로서 고구려인민들의 슬기와 용맹, 락천적기백을 잘 반영하고있다.

창춤은 고국원왕릉, 통구 제12호무덤, 쌍기둥무덤, 세칸무덤 등의 벽화들에서 찾아볼수 있는데 그 대부분이 적을 치는 률동적인 자세들로 되여있다.

고국원왕릉벽화에 보이는 창춤의 동작을 보면 적을 찌를듯 오른다리를 구부리고 긴창을 머리우에 올려 상대방을 겨냥하고있다.

이것은 창춤이 창을 들고 적을 무찌르는 고구려무사의 용감한 모습을 형상한 춤이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활춤은 지난 시기의 사냥과 전투행동을 률동적으로 재현한것으로서 활을 소도구로 하여 춤을 추는 군사무용의 하나였다.

고구려시기 활을 가지고 무술을 련마하는 과정을 형상한 춤은 고국원왕릉의 행렬그림에 그려져있다.

고대, 중세시기 활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에서 칼, 창과 함께 많이 써온 무기의 하나이다.

창과 칼이 가까운 적과의 싸움에서 리용되였다면 활은 먼거리에 있는 적을 소멸하는데서 큰 위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은 먼 옛날부터 활쏘는 련습을 끊임없이 진행하였으며 고구려시기에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활쏘기경기를 자주 조직하여 군사들과 인민들을 준비시키였다.

고구려에서 해마다 음력 3월 3일이면 사냥경기를 조직하여 메돼지, 사슴을 잡아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고 사냥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을 등용한 사실은 군사를 중시한 고구려의 상무기풍을 잘 보여주며 활쏘기가 일상적인 무술훈련종목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혼인전의 자제들이 경당에 모여 낮과 밤을 이어 책을 읽고 활쏘기를 익힌다고 한 사실(《구당서》 권199 상 렬전 고려(고구려)), 덕흥리벽화무덤에 그려진 활쏘기장면과 《此爲西園中馬射戱人》(이것은 서쪽정원(뜰안)에서 말을 타고 활쏘기놀이(마사희)를 하는것이다)라는 내용의 설명문은 당시의 활쏘기가 무술경기종목으로 선정되고 장려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고구려사람들속에서 진행된 이러한 활쏘기경기는 일상적인 활쏘기련마를 전제로 하며 그 과정에 활쏘기동작들은 하나하나 률동화되여 활춤으로 창조되게 되였다.

고구려의 활춤은 칼춤과 결합된 특색있는 군사무용으로서 그 이후 활춤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까지 전해지는 활춤은 활쏘기경기의 중간중간에 선수들이 직접 추는것과 경기가 끝난 다음 선수들과 군중들이 한데 어울려 추는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을 보면 타령장단에 맞추어 추면서 두팔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한채 한발을 들고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하늘을 날듯 두팔을 크게 벌리고 어깨춤을 추면서 작은 윈을 그리며 돌기도 한다. 이러한 동작들은 다 활춤의 독특한 동작들로서 지난 시기 우리 인민들과 군사들이 백발백중의 명궁수로 된 기쁨을 안고 추던 흥겹고 기백있는 춤이였다.

이처럼 칼춤, 창춤, 활춤 등 무기를 소도구로 한 군사무용들은 모두 반침략조국방위를 위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과정에 보다 완성된것으로서 여기에는 어려서부터 체력을 단련하고 무술을 련마하여 온 고구려사람들의 애국심과 생활기풍을 잘 반영하였다고 할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을 보여주는 군사무용은 그후에도 우리 인민들에게 계승되여 외적의 침습을 막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며 무기를 소도구로 하는 군사무용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칼춤과 같은 군사무용을 우리 시대의 미감에 맞게 훌륭하게 재형상함으로써 반침략조국방위를 위한 당시 우리 인민들의 애국주의감정과 생활기풍을 잘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