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주체요술발전에 깃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

 2024.1.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그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였으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치시여 조국청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혁명령도사에는 요술분야에 남아있는 도식과 틀을 깨고 요술의 형식을 끊임없이 새롭게 탐구하고 개척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신 불멸의 업적도 찬연히 아로새겨져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요술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 세나라시기의 그림에 요술과 관련한 모습이 반영되였으며 고려의 18대왕인 의종이 례성강에서 수희(물속에서 진행되는 교예종목)를 비롯한 여러 놀음을 구경할 때 한 광대가 왕앞에서 불을 토하는 《귀신놀이》를 하던중 실수하여 배 한척을 태워버린 기록도 있다. 그리고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기능요술수법들이 다양해져 노끈매듭풀기, 글자알아맞추기, 돈재주와 같은것들이 있었다.

한갖 부자놈들의 흥취를 돋구어주거나 돈벌이수단으로 리용되던 우리 나라 요술은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자기의 전통이 마련되고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깊은 관심속에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부터 자기의 참다운 력사를 쓰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0(1971)년 10월 25일 몸소 요술공연을 보아주시고 우리 나라 요술이 나아갈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그날의 가르치심이 있었기에 우리 나라는 다음해 4월 아시아나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현대요술축전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후 1970년 대중반기부터 매해 새로운 작품을 들고나가 축전에서 1등을 쟁취하였으며 1981년 7월에 열린 제16차 국제현대요술축전에서는 《세계요술왕》, 《요술녀왕》의 칭호까지 받아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축전에 참가하였던 우리 나라 대표단성원들을 곁에 불러주시여 축하도 해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으며 여러 계기에 요술작품의 형식과 내용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요술형상을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주체93(2004)년 6월 19일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요술공연을 보아주시면서 앞으로 요술작품을 대형화하여 무대에 내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요술을 발전시키는데서 필요한 세계요술참고자료들을 보내주겠다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95(2006)년 2월 17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창작한 요술작품을 또다시 보아주시면서 우리 나라가 국제요술련맹에 가입하는 문제와 국제요술축전에 참가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요술작품창작에 대한 요구성을 높여 요술작품창작에서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킬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은것에서 점점 큰것에로 이행하는 요술의 발전력사와 요술에 과학과 기술이 적극 도입되는 요술부문의 세계적인 추세를 통찰하시고 요술작품을 지도해주실 때마다 요술을 큼직큼직하게 하고 요술작품을 대형화하여 요술의 과학기술적수준을 높이고 주체요술의 발전면모를 과시하도록 가르쳐주시였다.

창작가들이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우리 식의 대형요술을 창작하기 위해 분발하고있던 주체99(2010)년 12월 중순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아직 대형요술을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창작집단은 모두의 지혜와 열정을 합쳐가며 세계굴지의 경기장인 5월1일경기장에서 밤낮이 따로없이 창작사업을 벌려나갔다.

대형요술작품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서고있던 주체100(2011)년 3월 13일 위대한 장군님께서경애하는 김정은동지와 함께 평양교예학원 학생들의 기능요술소품공연을 보아주시고 과분한 치하를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대형요술공연준비에 대하여 또다시 료해해주시면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하는 대형요술공연인데 품을 들여 꼭 성공시킬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주체100(2011)년 4월 18일에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형요술공연이 5월1일경기장에서 첫막을 성대히 올리였다.

그해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와서 대형요술공연을 본 외국인들은 이처럼 훌륭한 공연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 할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우리의 주체요술은 앞으로도 영원히 자기의 력사와 전통을 빛내여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