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룡곡제1호동굴유적에서 알려진 석기

 2022.5.27.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인류력사의 려명기인 구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대동강류역을 비롯한 조선반도의 넓은 지역에서 련면히 살아오면서 자기들의 창조적지혜와 근면한 로동으로 자연과 사회를 끊임없이 개조변혁해왔다.

선조들의 이러한 생활과정을 보여주는 구석기시대유적들가운데는 1980년에 알려진 룡곡제1호동굴유적도 있다.

구석기시대후기에 해당되는 이 유적은 평양으로부터 동남쪽으로 35㎞ 떨어진 상원군 룡곡리에 있다. (북위 38°47′, 동경 126°03′)

리소재지의 서북쪽에 우뚝 솟은 호장산기슭의 벼랑중턱에 있는 이 동굴은 석회암동굴로서 현재 강바닥으로부터 20m높이에 위치하고있으며 동굴앞에는 문포천이 흐른다. 문포천은 길이가 20km정도밖에 안되는 비교적 작은 강으로서 상원군의 남쪽에 위치하고있는 전산리와 귀일리로부터 시작하여 북쪽의 상원강으로 흘러든다.

룡곡제1호동굴유적은 김일성종합대학 학술연구집단이 주체69(1980)년 4월 문포천일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발견되였다.

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69(1980)년 5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의 기간에 진행되였다.

동굴의 길이는 40여m이고 너비는 입구에서 6m, 동굴안의 가장 넓은 곳에서 12m이며 높이는 입구에서 10m, 동굴안의 가장 넓은 곳에서 23.5m이다. 동굴입구의 방향은 남쪽으로 30°정도 치우친 동향이다.

동굴안에는 두께가 21.05m(13개층)에 달하는 두터운 퇴적층이 쌓여있었다. 동굴바닥으로부터 우로 올라가면서 아래쪽의 7개층과 맨 웃쪽의 13층에서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 사이에 있는 5개층에서만 유물들이 알려졌다. 여기서도 12층은 질그릇과 마제석기 등이 나온 신석기시대문화층이고 나머지 4개층(8, 9, 10, 11층)만이 구석기시대문화층이다.

구석기시대문화층에서는 12개의 불자리와 9개 체분에 해당되는 많은 인류화석, 58점의 석기와 6점의 골기, 뼈로 만든 장식품 1점과 8 200여점의 짐승뼈화석들이 발견되였다.

이 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에 대한 년대를 정확히 확증하기 위하여 절대년대측정방법과 상대년대결정방법들을 적용하였다. 우라니움계렬년대측정법으로 결정한 절대년대는 7.1만년전(8층)부터 4.4만년전(10층)이다. 상대년대는 발견된 인류화석의 형태학적특징과 포유동물상의 사멸종비률에 따라 확증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류화석은 형태학적으로 신인에해당되며 포유동물상은 지질학적으로 제4기 상갱신세(대략 11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에 해당된다는것이 밝혀졌다.

룡곡제1호동굴유적
그림 1. 룡곡제1호동굴유적의 석기(1)
(1.2.3-주먹도끼, 4,5,6-찍개, 7,8,9-망치)

여러가지 년대확증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이 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은 구석기시대후기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인들이 남긴 유적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룡곡제1호동굴유적
그림 2. 룡곡제1호동굴유적의 석기(2)
(1, 2, 3 – 긁개, 4, 5, 6 – 밀개, 7, 8, 9, 10-찌르개, 11, 12, 13,-새기개, 14, 15, 16-자르개)

룡곡제1호동굴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8층-11층)에서는 58점의 석기와 수십점의 석재들이 발견되였다.

석기들은 석영과 규암, 사암, 화강암 등 4가지 종류의 재료들로 만들었다. 그가운데서 석영으로 만든 석기가 37점(63.9%)으로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며 규암으로 만든 석기는 18점(31.0%)으로서 그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사암과 화강암으로 만든 석기는 각각 2점(3.4%), 1점(1.7%)으로서 상대적으로 적다.

석기의 종류를 보면 주먹도끼(8점), 찍개(7점), 망치(6점), 긁개(8점), 밀개(4점), 찌르개(15점), 자르개(9점), 새기개(1점) 등 8가지로 구분된다. 석기들의 평균길이를 보면 주먹도끼 9.2cm, 찍개 9.8 cm, 긁개 7.1 cm, 밀개 6.6 cm, 찌르개 8.8 cm, 자르개 5.1 cm, 새기개 4.4 cm이고 망치는 모두 10cm이상이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것은 주먹도끼이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주먹도끼들은 크기가 대체로 10cm이상인데 이 유적의 주먹도끼가운데서 10cm이상인것은 3점뿐이고 나머지 5점은 9cm이하로서 비교적 작은 특징을 가진다.

주먹도끼나 찍개 등은 큰 격지를 떼여내는 방법으로 가공한데로부터 거칠고 투박하며 일부 자연면들이 남아있다. 긁개와 밀개, 찌르개 등에도 일부 자연면이 남아있으나 주먹도끼나 찍개처럼 그렇게 크거나 많지 않으며 새기개와 자르개에서는 거의나 자연면을 찾아볼수 없다. 긁개와 밀개, 찌르개, 새기개, 자르개 등에는 세부가공을 많이 한 흔적들이 보인다. 세부가공흔적들은 이 석기들이 눌러뜯기나 대고 때려떼기와 같은 발전된 제작수법들로 가공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주먹도끼나 긁개와 같이 대부분의 석기들이 짐승사냥과 가공에 리용된 도구들이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식물채집과 함께 짐승사냥을 많이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룡곡제1호동굴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만달리동굴유적, 청파대동굴유적 등에서 알려진 석기들과 함께 구석기시대후기에 대동강류역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생동한 실물자료로 잘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