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하많은 사연을 전하는 력사유적-선죽교

 2020.4.2.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있는 금수강산인 우리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 한 우수한 력사유적들이 많다.

특히 개성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옛 도읍지로서 오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개성은 우리 나라의 옛 도읍지로서 고적과 유물들이 많은 곳입니다. 고적과 유물들은 우리 인민의 귀중한 문화적재부입니다.》 (김일성전집》 제17권 372페지)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서 당시 정치와 경제, 문화발전의 중심지였으며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도시였다.

이런데로부터 개성에는 고려시기에 창조된 력사유적과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여있으며 그가운데서 오늘까지 전해오고있는것들도 적지 않다. 그중에는 고려시기의 돌다리인 선죽교도 있다.

선죽교는 개성시 선죽동에 위치하고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 다리는 1216년이전에 건설되였으며 당시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후 고려왕조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가 1392년 리성계일파에게 피살된 날 밤 다리옆에서 참대가 솟아났다고 하여 그때부터 다리이름을 선죽교라고 고쳐부르게 되였다.

선죽교는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다. 다리에 두른 란간의 너비는 2.54m이며 길이는 6.67m이다. 다리의 구조는 기둥돌과 판돌, 란간돌로 이루어졌다. 사람이 밟고다니는 다리면의 판돌 웃면은 평평하게 하고 밑면은 가운데를 두껍게, 량옆은 그보다 좀 얇게 하였다. 이것은 긴 판돌을 두 기둥에 걸쳐놓고 그우에 짐을 실었을 때 두 가녁보다 가운데가 힘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정을 고려한것이다.

정몽주의 후손 개성류수 정호인은 1780년에 이 다리를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건너다니지 못하게 다리 앞뒤로 네개의 돌을 세운 다음 그 남쪽으로 잇대여 사람들이 다닐수 있는 다른 다리를 만들어놓았다. 그후 1796년 개성류수 조진관이 다시 선죽교에 란간을 설치하였다.

선죽교에는 정몽주가 흘린 피자욱으로 전해지는 불그스레한 판들이 있다.

선죽교와 관련하여 우리 나라의 옛 문인들과 명장들이 많은 문학작품들을 창작하여 후세에 남이였다.

그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옛 시들이 오늘까지 우리 인민들속에 전해져오고있다.


선죽교 (리설)

선죽교에 흘린 피

사람들과 함께 나도 슬퍼하노라

그러나 신하된 몸 나라가 망하면

죽는 길밖에 또 무엇이 있으랴


선죽교 (리개)

번화롭던 옛일은

꿈결로 사라지고

춤추고 노래하던 집들

허물어져 잡초만 우거졌네


오직 이 선죽교만이

말하여주고있는가

5백년 고려왕업과

문충공(정몽주)의 굳은 절개를


선죽교를 지나며 (사명당)

산천은 예같으나

조정은 갈렸구나

나라잃은 슬픈 노래

그 얼마나 울렸던고


지는 해 옛성터

봄풀 우거진속에

아직도 정공의

비석만은 우뚝 서있구나


비록 정몽주는 봉건적충의사상을 지닌 봉건관료의 전형으로서 고려왕조를 위해 목숨으로 신하의 의리를 지킨데 불과하지만 불의앞에 절대로 굽히지 않은 그의 의로운 행동은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찬사의 대상으로 되여왔다.

선죽교는 지금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돌다리가운데서 가장 오랜것의 하나로서 당시의 건축술과 돌가공기술을 연구하는데 참고로 된다.

이렇게 파란많은 력사와 건축술을 전하는 선죽교도 민족의 력사와 문화를 더욱 빛내주시려고 끊임없는 심혈을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세심한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사의 한페지를 전하는 귀중한 유적으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

주체81(1992)년 5월 5일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선죽교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다리는 원래 선지교라고 하던것을 1392년 4월 고려의 대학자이며 최고관리였던 정몽주가 리성계일파에 의하여 철퇴에 맞아 살해된 다음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선죽교라고 불러왔는데 독립군들이 부르던 노래에도 선죽교 피다리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죽교밑으로 옛날그대로 개울을 만들고 량쪽을 돌로 잘 쌓아 깨끗하게 정리하며 그 주변에 나무도 보기 좋게 더 심고 꽃밭도 만들어 늘 우리 인민들이 와서 고적도 보면서 쉬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들을 잘 보존할데 대하여 교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깊은 관심과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귀중한 력사유적으로 빛을 뿌리고있는 선죽교는 오늘도 우리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하많은 사연을 전하며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잘 보존관리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