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녀성포수영웅 리수덕

 2022.8.16.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녀성들이 가정의 꽃, 생활의 꽃, 나라의 꽃으로 활짝 피여나 우리 당을 따르는 한길에 자기들의 깨끗한 마음과 불타는 열정을 다바쳐가고있다.

지난날 세기를 두고 내려오던 봉건적억압과 굴욕, 멸시와 속박에서 한생을 눈물속에 보내야만 했던 우리 녀성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참다운 삶을 찾게 되였으며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담당한 사회의 당당한 주인으로, 어엿한 녀성혁명가들로 자라날수 있었다.

그러한 녀성들속에는 조선예술영화 《어머니는 포수였다》의 원형인 리수덕녀성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47년이 저물어가던 때에 강원도 평강군의 이름난 포수 리수덕부부는 자기들이 잡은 범의 가죽을 수령님께 선물로 가지고왔습니다. 리수덕부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유격대에 들어가서도 잘 싸웠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1권 456페지)

해방전 리수덕녀성은 지주집머슴의 딸로 태여나 눈물겨운 고생살이의 시작을 떼였다. 일제순사의 폭행으로 아버지가 사망되자 그놈을 죽이고 강원도 평강군 현내면 리목리(당시)에 서 수십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남편과 함께 숨어 살면서 짐승사냥을 하였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그들이 발을 붙였을 때 리수덕은 살아가기 위하여 하는수 없이 남자들도 감히 나서기 저어하는 산짐승사냥에 남편을 따라 나서게 되였다. 사나운 짐승앞에 나서서 목숨을 내대는 판가리싸움도 해보고 며칠씩이나 산을 헤매야 하는 모진 고생속에서 다시는 맹수사냥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하기도 하였지만 수난많던 그 세월 그로서는 어찌할수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치마 두른 녀인이 산에 싸다니면 사나운 산짐승들이 더 끓인다.》고도 하고 《녀자가 할 일이 없어서 사냥을 하는가.》고도 하면서 별의별 말을 다 하였다.

그러나 입에 풀칠을 하자니 다른 도리가 없어 가난에 쪼들리는 설음에 녀자로 태여난 설음까지 겹쳐들어 눈물을 머금고 피눈물나는 생활을 계속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세월이였다.

리수덕부부가 착취와 억압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참된 삶을 누릴수 있게 된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을 찾아주신 그때부터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의 처지는 하늘과 땅처럼 달라져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5 000여평이나 되는 땅을 분여받고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였으며 리수덕녀성은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게 되였다.

누리는 행복이 커만갈수록 리수덕녀성의 마음속에는 우리 인민에게 새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일념만이 차고넘쳤다.

주체36(1947)년 마가을 철원의 어느 한 산골짜기에서 잔등이 두발이나 되는 칡범이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이 범을 잡아 행복의 은인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선물로 올릴 생각으로 아이를 낳은지 20여일밖에 안되는 몸으로 남편과 함께 황소보다 더 큰 범을 쏘아잡았으며 그밖에 메돼지 5마리와 노루 3마리를 더 잡아 가지고 평양으로 올라왔다.

새조국건설로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평강의 포수부부를 만나주시고 리수덕녀성에게 어떻게 되여 포수가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녀성은 살아가기 위해 녀자의 몸으로 사냥을 하면서 수모를 받던 일이며 다시는 사냥의 길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하던 일 등을 죄다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자의 몸으로 용하다고, 우리 나라 력사에서 녀자포수는 처음이라고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선녀성들은 소박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용감하고 대담하다고, 우리 녀성들이 모두다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다면 실로 큰 일을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해방된 조선의 녀성들은 남자들과 함께 새 조국건설의 튼튼한 기둥이라고 믿음어린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으며 자신의 명함으로 된 표창장과 많은 상금 그리고 사냥총과 사진기까지 안겨주시는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에게 마을로 돌아가면 사냥도 잘하고 세포일대의 황무지들을 개간하는 사업에도 앞장서며 마을사람들에게 총쏘는 법도 배워주어 원쑤들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보위하기 위한 준비를 갖출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마을로 돌아간 리수덕부부는 마을의 청장년들과 녀성들에게 총다루는 법을 꾸준히 배워주고 군내인민들을 불러일으켜 황무지개간사업도 적극 밀고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자그마한 성과도 기특하게 여기시며 많은 뜨락또르와 비료를 선물로 보내주시였으며 그들이 살던 세포일대를 행복의 락원으로 꽃피우도록 하시였다.

조국땅에 전쟁의 불길이 일자 리수덕녀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으로 꽃펴난 고향땅을 더욱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동들의 준동을 적발분쇄하는 사업의 앞장에 섰으며 전선원호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청장년들이 모두 전선으로 나가고 몇명 안되는 녀성들과 나이많은 사람들만 남아있는 조건에서도 전체 인민이 하나같이 떨쳐나 싸우면 그 어떤 적들도 능히 타승할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마을사람들을 원쑤격멸의 성전에로 불러일으켰다.

리수덕은 평강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주체39(1950)년 10월에는 적의 군수렬차를 습격하여 71명의 적을 살상하였으며 10월 29일에는 적치안대본부를 습격하여 10여명의 애국자들을 구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찍은 귀중한 사진을 항상 몸에 지니고 적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용맹을 떨쳐온 리수덕녀성은 적들의 차행렬에 대한 매복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들에서 용맹을 떨쳤으며 주체39(1950)년 11월 12일에는 적후 제2전선부대들과 협동하여 고향땅을 해방하였으며 이틀후에는 군소재지를 완전히 해방하였다.

주체40(1951)년 4월 2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그의 전투적위훈을 높이 평가하여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위훈을 보고받으시고 그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권총을 선물로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리수덕녀성은 전쟁이 승리하는 날까지 용감히 싸웠으며 전후에는 제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당일군으로, 인민정권기관일군으로 사업하였다.

중앙인민위원회정령에 따라 그가 살던 강원도 림단리를 리수덕리로, 원산교원대학을 리수덕원산교원대학으로 고쳐 부르고있다.

이렇듯 나라없던 그 세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속에서 숨어만 살면서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오던 리수덕녀성은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온 나라가 다 아는 녀성포수영웅으로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