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조병천
2022.5.3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천재적인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고매한 덕성과 뛰여난 인품, 소탈한 품성과 검소한 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풍모와 거룩한 영상은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특출한 위인상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26페지)
고난에 찼던 항일혈전의 나날을 잊지 않으시고 자신을 늘 그 시절에 세워보시며 특전과 특혜를 바라지 않으시고 식생활도 인민들과 꼭같이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고결한 풍모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많이 잡수시던 통강냉이죽의 맛을 잊지 못하시여 가끔 별식으로 드시군하시였다.
한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방에서 일하는 녀성들에게 방법을 대주어 통강냉이죽을 쑤게 하시였는데 한 녀성이 그이께서 아무 음식이나 잡수시여서는 안된다고 생각되여 《수령님! 통강냉이죽을 잡수시면 소화가 잘되지 않습니다. 잡숫지 마십시오.》라고 말씀올렸다.
그의 청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이런 음식이 소화가 잘된다고 하시면서 산에서 싸울 때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어도 소화가 잘되였는데 지금은 껍질없이 먹는데 왜 소화가 안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척분들이 장군님께서 강냉이죽을 잡수셔서야 되겠는가고 말씀드릴 때면 항일무장투쟁때 강냉이죽을 많이 먹어서 그 생각이 날 때마다 가끔 죽을 쑤게 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별맛이라고 하시며 웃으시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황해남도의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던 주체51(1962)년 1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그날 오후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체류기간 묵으시는 숙소의 관리원을 찾아와 오늘 저녁에는 통강냉이죽을 쑤라고 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생활이 유족해진 오늘에는 산골농민들도 거의나 잊어버리게 된 통강냉이죽을 쓰라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숙소관리원은 그 일군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혹 일군들가운데 입맛을 잃은분이 있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렇게 이르시였다고 하면서 통강냉이를 푹 삶아서 죽을 잘 쑤라고 하였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관리원은 터밭에서 거두어들여 창고에 보관하고있던 강냉이를 꺼내왔다.
그는 강냉이에 당콩을 맞춤히 두고 죽을 쑤었다. 하지만 옛날부터 전해오는 열숟가락 죽보다 한숟가락 밥이 더 낫다는 말을 생각하니 아무리 정성을 들였다 하더라도 어버이수령님께 저녁식사로 통강냉이죽을 올리자니 어쩐지 손맥이 풀리는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식사를 올린 후 한동안 부엌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를 부르신다는 련락이 왔다.
그는 급히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으로 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식사를 준비한 숙소관리원의 수고를 헤아려주시며 오래간만에 이런 죽을 맛보게 된다고,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어쩌다 통강냉이가 생기면 그것으로 죽을 쑤어 온 부대가 특식으로 먹었는데 그때 어떻게나 맛이 있었던지 세상에 그이상 맛있는 음식이 없는것처럼 생각되였다고 하시면서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음식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음식을 만드는 녀성들에게 있어서 맛있게 들었다는 인사를 받는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었지만 이때 숙소관리원은 강냉이죽을 쑤게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뜻이 더 뜨겁게 안겨와 눈굽이 젖어올랐다.
통강냉이죽을 어찌 산해진미에 비기랴만 이 땅우에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워놓으시고도 백두밀림의 그날을 잊지 못하시여 언제나 검소하게 생활하신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고매한 풍모는 영원히 조선인민의 가슴속깊이 아로새겨져 대를 이어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