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평생 지켜오신 검박한 생활준칙

 2024.7.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은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시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으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으나 한평생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며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신 인민의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생 지켜오신 하나의 준칙이 있다. 그것은 인민들과 자그마한 차이도 없이 꼭같이 생활하시는것이였다.

인민들속에 들어가는데 사치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색다른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 로동자, 농민들이 도리여 자신을 어렵게 대한다는것이 옷과 관련한 우리 수령님의 지론이였다.

주체36(1947)년 봄 위대한 수령님께 룡천군 내중마을(오늘의 염주군 내중리)의 한 시골늙은이가 제손으로 정성껏 짠 천으로 베적삼을 지어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베적삼을 받으시고 그 성의를 귀중히 여기시여 입어보기까지 하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소박한 소원은 그리도 소중히 여겨주시면서도 일군들이 색이 바랜 옷대신에 좋은 천으로 새옷을 지어드리려 할 때에는 자신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다 이런 옷을 해입을 때 이 옷을 받겠다고 하시면서 낡은 옷을 뒤집어 하라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이 가르치심대로 낡은 옷을 뒤집어 양복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양복을 받아드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색날은 옷도 이렇게 뒤집어 하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만족해하시였다.

어느해 겨울 한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신고계시던 신발을 살펴보다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구두의 뒤축이 닳아져있었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의 속생각을 대뜸 헤아려보시며 지금 신고있는 구두도 아직은 더 신을수 있다고, 구두의 뒤축만 갈아대면 될것 같다고 이르시였다.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어떻게 구두까지 수리하여 올리랴싶어 꼭 새구두를 신으실것을 몇번이나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굳이 사양하시였다. 일군은 하는수없이 구두를 수리하여 어버이수령님께 올릴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리해온 구두를 보시고 새 구두나 다름없다고 기뻐하시며 뒤축을 갈아댄 구두를 신으시고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인민을 위해서는 모든것을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께서는 언제나 인민들과 꼭같이 수수하고 평범하게만 사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검박한 생활은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쌓으신 위대한 업적에 비해 너무도 대조되는 검박한 한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