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가야 합니다.》
조선력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수도 개성에는 왕릉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여있다.
고려왕릉들가운데서 아직까지 위치와 주인공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왕릉들을 찾아 발굴고증하는 문제는 고려의 력사와 문화연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최근에 조사발굴한 화곡릉은 개성시 룡흥동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6㎞정도 떨어진 송도저수지 북쪽기슭의 나지막한 산릉선중턱에 위치하고있다. 무덤이 위치한 곳의 옛지명이 화곡이라는데로부터 지금까지 이 무덤을 화곡릉이라고 불러왔다.
화곡릉은 밑부분에 돌기단이 있고 그우에 흙을 쌓아올려 무지를 이룬 돌칸흙무덤이다.
무덤무지의 주위에는 무덤구역이 넓게 형성되여있다.
무덤구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온 릉선의 경사면에 남쪽으로 길게 놓여있으며 규모는 남북길이 63.5m, 동서너비 20m정도이다.
무덤구역은 동서방향으로 길게 쌓아놓은 화강석축대들에 의하여 3개의 구획으로 구분된다. 무덤무지로부터 남쪽으로 약 12m 떨어진 곳에 1호축대가 있고 이 1호축대를 경계로 1구획과 2구획이 나뉘여진다. 1호축대의 남쪽에 있는 2호축대에 의해 무덤구역의 2구획과 3구획이 구별된다.
무덤구역의 맨 웃단(1구획)에 무덤무지가 있다. 무덤무지의 크기는 직경 13m, 높이 3m정도이다. 무덤무지밑부분에는 원형의 돌기단시설이 있고 기단의 바깥쪽으로 돌란간이 설치되여있다. 현재 돌란간은 란간기둥돌과 란간받침돌만 서있는데 란간가름돌은 무덤무지의 서북쪽에서 거의 온전하게 남은것 2개가 발견되였다.
무덤무지의 앞에 《고려왕릉비》라고 쓴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조선봉건왕조시기 고종 4년(1867년)에 고려왕릉들앞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 비록 이 무덤이 누구의 무덤이라고 밝혀져있지는 않지만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화곡릉을 고려의 왕릉으로 인정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2구획에는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돌사람조각상들이 동서좌우에 서있었음을 보여주는 조각상부분품, 기초돌시설들이 발견되였다.
3구획에서는 제당터가 알려졌다. 제당터에 대한 발굴과정에 바닥벽돌들, 일반기와들과 동심원무늬막새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고려왕궁터 만월대에서 볼수 있는것과 거의 같은 룡모양치미쪼각과 봉황새모양잡상들이 약간의 청자쪼각들과 함께 발견되였다.
화곡릉은 무덤칸이 반지하에 만들어진 외칸의 돌칸흙무덤으로서 방향은 정남향이다. 무덤칸의 크기는 남북길이 4m, 동서너비 3.4m, 높이 2.3m이다.
무덤칸의 내부벽면들은 가공한 화강석판돌들로 축조하였다. 동벽과 서벽, 북벽에는 모두 2장씩 화강석판돌들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남벽은 동벽, 서벽의 남쪽끝에 잇대여 길이 0.9m, 높이 1.95m, 두께가 0.48m인 두장의 판돌을 량쪽에 세워 벽체 겸 문기둥돌로 리용하였다. 남벽의 두 문기둥돌사이의 간격은 1.6m이며 바닥에 길이 1.6m, 너비 0.4m, 높이 0.2m정도의 문턱돌이 놓여있다.
원래 네 벽면에 회미장을 곱게 하였으나 현재는 회미장을 하였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벽화가 있었는지는 알수 없다.
무덤칸의 바닥중심에는 관대가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다. 관대의 좌우, 즉 동벽과 서벽가까이에 유물받침대가 있다.
천정은 한단의 평행고임을 하고 그 우에 천정돌을 덮은 평행고임천정이다. 평행고임단우에 4개의 천정돌이 동서로 길게 놓였으며 문기둥돌우에는 이마돌이 설치되였다. 평행고임단과 이마돌, 천정돌의 겉면에는 원래 회미장이 두텁게 되여있었으나 대부분 떨어지고 일부만 남아있다.
무덤칸과 제당터에서 도기 및 자기쪼각들과 기와, 바닥벽돌들이 발견되였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들에 기초하여 이 무덤의 축조년대는 고려초기로 볼수 있다.
내부구조로 볼 때 화곡릉의 내부벽면이 큰 판돌들로 축조되여있고 천정은 평행고임식을 이루고있으며 무덤칸바닥중심에 관대가 놓여있고 그 좌우에 유물받침대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고려태조 왕건의 무덤인 현릉(943년 축조), 왕건의 할머니무덤인 온혜릉(10세기), 고려 3대왕 정종의 무덤인 안릉(949년축조), 고려 5대왕 경종의 무덤인 영릉(981년 축조), 서구릉(10세기축조)을 비롯한 고려초기왕릉들과 거의 같다. 외부구조에서는 무덤구역을 3개의 구획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10세기경의 고려왕릉들인 왕건왕릉, 온혜릉들과 11세기경의 왕릉들인 3대왕 정종의 안릉, 4대왕 광종의 헌릉, 5대왕 경종의 영릉 등과 류사하다. 이와 함께 화곡릉의 제당터에서 발견된 제단기초시설이 10세기초에 건설되였다고 하는 다른 건물(경령전)의것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있는것이다.
화곡릉의 무덤칸에서 발견된 청자쪼각유물의 유약색갈이 고려초기유약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있으며 직접적으로는 949년에 만들어진 정종의 무덤인 안릉에서 나온 청자잔대와 10세기경에 만들어진 서구릉에서 나온 청자대접것과 거의 같다.
이것은 화곡릉이 고려초기의 왕릉이라는것을 말하여주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이다.
화곡릉의 주인공을 고려 2대왕 혜종으로 볼수 있다.
고려초기의 무덤인 화곡릉이 개성성의 탄현문 동북쪽에서 가까이에 위치하고있으며 1916년 당시까지 《얼구리릉》으로 전해져왔다는 사실은 고려 2대왕 혜종의 무덤인 순릉이 개성성 탄현문밖 경덕사북쪽에 있으며 속칭 추왕릉(얼구리릉)이라고 불리웠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부합되는것이다.
최근에 고려초기의 왕릉인 화곡릉을 새로 조사발굴하고 이 무덤이 고려 2대왕 혜종의 무덤인 순릉이라는것을 밝힘으로써 아직 미해명으로 남아있는 고려왕릉들의 주인공들을 밝힐수 있는 학술적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하게 되였다.
고려 2대왕 혜종의 무덤(순릉)인 화곡릉은 고려시기의 우수한 문화발전면모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조선민족의 문화재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