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박상철
2021.4.21.
오늘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은 날과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뀔수록 더해만가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금치 못해하며 조국의 륭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그이의 한평생을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의 한평생은 끊임없이 인민들을 찾으시는 현지지도의 한평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6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이 땅우에 인민의 락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시기 위하여 근 반세기동안 명절날과 일요일 지어 생신날마저 다 바쳐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주체34(1945)년 8월 15일부터 위대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신 주체83(1994)년 7월 8일까지의 기간에 인민을 위해 바치신 일요일과 명절날, 생신날들을 다 합치면 근 7년세월과 맞먹는 2 500여일이나 된다는 사실은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고있다.
온 나라가 해방의 감격으로 들끓던 주체34(1945)년 10월 당창건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조국개선연설로 인민들에게 새 민주조선건설의 앞길을 밝혀주시며 휴식일들을 깡그리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6년 해방된 조국에서 맞으시는 첫 설명절에도 사랑하는 전사의 집을 찾으시고 그의 건강과 가정생활을 따뜻히 보살펴주시였다. 1946년의 모든 명절과 일요일들도 역시 사회민주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며 나라의 경제토대를 강화하여 우리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한 사업에 바쳐오시였다.
해방후 처음으로 맞으신 생신날은 물론 불구름 타래치던 전화의 나날에 싸우는 전선에 대한 지도로 휴식을 미루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승리한 첫 생신날인 주체43(1954)년 4월 15일도 현지지도로 보내시였다. 이른 아침 중화군의 어느 한 농촌마을을 찾으시고 농민들과 함께 이슬내린 잔디우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점심식사까지 미루어가시며 전쟁으로 파괴된 농촌경리를 복구하고 령락된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고 그길로 력포목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수도시민들에게 하루빨리 고기를 먹이기 위한 구상을 펼쳐주시였으며 대동군 반석리 황동부락에서 사회주의협동화의 불씨를 지펴주시고 저녁녘에야 그곳을 떠나시였다.
이렇게 자신의 생신날은 휴식을 모르시였지만 동지들의 생일만은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축하하시여 친히 오찬이나 만찬도 차려주시고 높은 국가수훈과 귀중한 선물도 안겨주시였으며 그들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휴양이나 료양도 보내주시였다.
인민들과 함께 있을 때처럼 기쁜 때가 없다고, 인민들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건 다 찾아가봐야 한다시며 명절날과 일요일의 하루하루를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위하여 바치신 어버이수령님.
어버이수령님께서 일요일에 바치신 현지지도의 발자취는 원아들의 사업과 생활을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따뜻히 보살펴주신 만경대혁명학원을 비롯한 여러 혁명학원들과 인민들에 대한 상품공급사업을 더 잘하는데서 나서는 과업을 제시하여주신 평양제1백화점을 비롯한 전국의 상업봉사기관들에도 그리고 농장원들의 생활과 농업발전을 위하여 전후에만도 무려 200차례 가까이 찾아주신 평양시 삼석구역 장수원협동농장을 비롯한 협동벌들과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끝없이 넘쳐나는 금강산과 묘향산, 대성산, 송도원을 비롯한 명승지들에도 어려있다.
우리 수령님께서 주체43(1954)년 10월 증산군 이압리를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원쑤들에게 일가친척 30여명을 잃은 이곳 관리위원장의 가슴아픈 정상을 헤아리시여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며 그와 함께 하루밤을 보내신 날도 일요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휴식일들에 찾아오시여 가마뚜껑도 열어보시고 방바닥도 짚어보시며 살림살이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여주신 김책과 신포, 온천의 평범한 가정들과 몸소 국맛까지 보아주시고 이불두께도 가늠해보시며 후방공급사업의 방향을 가르쳐주신 평양종합방직공장(당시) 로동자합숙과 식당에도 하늘의 높이와 바다의 깊이에도 비길수 없는 친어버이의 다심한 사랑이 깃들어있다.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숭고한 동지적의리의 세계를 펼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민의 축복을 받으셔야 할 주체82(1993)년 4월 15일에도 43년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리인모동지를 병문안하시여 그동안의 병치료정형을 료해하시고 자신께서 수표하신 조선로동당 당원증과 존함이 새겨진 고급손목시계를 안겨주시는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 6월 19일 일요일의 그날에도 30℃의 무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가물피해를 입은 농작물이 걱정되시여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을 찾으시고 그늘 한점 없는 포전머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농사일을 지도해주시였고 생전의 마지막생신날도 휴식하지 못하시고 명절을 맞는 우리 인민들에게 어떻게 하나 한가지라도 더 색다른것을 마련해주시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외활동으로 온 하루를 보내시였다.
흘러온 력사와 오늘의 세계를 돌이켜보아도 우리 수령님처럼 한평생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바친 그처럼 위대한 수령, 위대한 어버이를 인류는 아직 알지 못하고있다.
일요일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쉬는 날로 되여있으며 한나라를 이끄는 정치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휴양지나 피서지를 찾아 주말휴가를 보내는것을 생활에서 어길수 철칙으로 여기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요일은 법적으로 제정된 휴식일이며 이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유원지나 극장에서 아니면 단란한 가정에서 즐거운 휴식을 보내고있다.
하지만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모두가 즐거운 휴식으로 보내는 일요일, 명절날에도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참으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을 지니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일요일과 명절날, 지어는 생신날까지도 다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적인 령도가 있어 지난날 나라잃은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오던 우리 인민은 오늘 인간의 참된 삶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긍지높고 존엄높은 인민으로 되였다.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순간의 휴식도 없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업적은 부강번영하는 주체조선과 더불어 영원불멸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