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극은 음악예술을 지배계급의 독점물로부터 대중적인 극장예술로 전환시키기 위한 진보적지향으로부터 출발하여 발생하였다. 가극이 발생하여 수백년의 력사가 흘러오지만 《피바다》식가극처럼 내용과 형식에서 인민의 지향과 사상감정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구현한 가극은 없을것이다.
《<피바다>식가극은 우리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새형의 가극이다. <피바다>식가극은 주체적문예사상을 빛나게 구현함으로써 내용에서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형식에서 인민적이고 민족적인 사회주의, 공산주의음악예술의 참다운 본보기로 되고있다.》 (
《피바다》식혁명가극은 지난날 봉건제왕이나 량반귀족, 《영웅호걸》이나 환상적인 인물들을 내세우던 중세가극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주적인 인간, 근로대중을 기본으로 하여 그리면서 그들속에서 나온 참다운 인간전형을 창조한다.
그이께서는 우리 식의 절가와 방창, 우리 식의 무용과 무대미술, 배합관현악으로 《피바다》식가극이 이루어지도록 창작가들을 이끄시여 가극사에서 찾아볼수 없는 전혀 새로운 가극방식이 창조되도록 하여주시였다.
대화창이나 아리아와 같은 종래의 극음악형식들을 없애고 가극음악들의 절가화, 명곡화실현, 등장인물이 아닌 제3자가 무대밖에서 노래로써 가극의 형상을 부각시키는 방창의 도입, 흥미본위적인 구경거리로 삽입되던 무용을 필수적인 형상수단으로 하는 새로운 창조체계의 개척, 생활론리에 맞게 장치, 모형, 환등, 특수효과 등을 합리적으로 배합하여 움직이는 무대화폭, 흐름식립체무대미술창조, 양악기와 민족악기를 배합한 배합관현악의 창조 등은
《피바다》식혁명가극을 창조한것은 가극분야에 오래동안 남아있던 낡은 틀을 마스고 가극혁명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전환점이였다.
그리하여 주체60(1971)년 7월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그대로 옮긴 혁명가극 《피바다》가 나온 때로부터 다섯달후인 그해 12월에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을 내놓았고 그로부터 불과 넉달만인 주체61(1972)년 4월에는 혁명가극 《밀림아 이야기하라》를 창작완성하였다. 또한 그로부터 일곱달후인 11월에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내놓았으며 얼마후에는 또다시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완성하여 무대에 올리였다. 불과 1년남짓한 기간 련이어 세상에 내놓은 5편의 혁명가극을 두고 조선에서는 5대혁명가극이라고 부르고있다.
《피바다》식혁명가극은
세계의 혁명적인민들은 《피바다》식혁명가극들을 관람하면서 혁명의 진리를 체득할뿐아니라 문학예술의 대가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