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세계해전사에 이름을 남긴 애국명장

 2022.12.7.

명장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의의 전쟁에서 력사적인 공적을 세운 장군들, 자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여 인민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장군들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리순신장군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수군을 통솔하여 수많은 왜적선을 격침시킴으로써 적들의 <수륙병진>계획을 파탄시켰을뿐아니라 전쟁의 국면을 우리편에 유리하게 전환시켰습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1권 58페지)

우리 민족사의 갈피에는 왜적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임진조국전쟁시기 뛰여난 해상전법과 전술로 왜적의 함대에 심대한 참패를 안기고 전쟁승리에 커다란 기여를 한 애국명장 리순신(1545-1598)도 있다.

자는 여해, 본은 덕수, 시호는 충무이다.

리순신은 1545년 3월 한성의 가난한 선비인 리정의 셋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고 매사에 부지런하였으며 특히 글공부에서는 남다른 열성이 있었다. 리순신은 글읽기와 붓글씨에 뛰여났을뿐만 아니라 11살에 벌써 《자치통감》과 《대학》, 《중용》 등 4서 3경까지 완전히 떼고 났다.

리순신은 옛장수들의 무훈담을 즐겨 탐독하였으며 더우기 《을지문덕장군전》 같은것은 완전히 통달하였다. 리순신은 당시 나라에 조성된 환경과 그 운명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걱정하면서 무술을 익혔고 병법을 연구하는데 힘을 들였다.

리순신은 31살이 되던 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무관직에서 근무하다가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기 전해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되였다.

수군절도사의 직책을 맡으면서 당시 조성된 정세로 보아 도래할 사변을 깊이 우려하면서 왜적의 침입에 대처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수군을 보충하고 군량을 축적하였으며 무기와 무장장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 특히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새롭게 창안제작한것은 조선함대를 강화하는데서 커다란 의의가 있었다.

1592년 5월초 전쟁개시후 처음으로 되는 조선수군과 일본수군과의 바다싸움인 옥포해전에서 왜적의 전함 26척을 격침시켰으며 사천해전에서 적선 12척을 또다시 격침시켰다.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어 당포앞바다에서 적선 21척을 격침, 격파하고 당항포에서 30여척의 적선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리순신장군의 지휘밑에 진행된 한산도해전은 왜적의 수륙병진기도를 완전히 파탄시키고 전쟁국면을 역전시키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였다.

한산도해전은 유인, 포위, 총공격전술이 가장 빛나게 실현된 전투였다.

와끼자까의 적 수군함대가 정박해있는 견내량은 바다의 폭이 좁고 암초가 많아서 아군의 거북선이나 판옥선같은 큰 배들이 자유롭게 활동할수 없었을뿐 아니라 적이 쉽게 도망칠수 있는 불리한 곳이였다.

그리하여 리순신장군은 적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다 족칠 계획을 세웠다. 아군판옥선 5~6척이 적을 공격하는척 하다가 물러서자 적들은 어리석게도 우리 함대가 퇴각하는줄 알고 쫓아나오기 시작하였다. 유인전술에 걸려든 적들이 넓은 바다로 나왔을 때 아군은 학익진을 치고 3척의 거북선을 선두로 총공격하면서 적함들을 포위망에 잡아넣었다. 이 전투에 적용된 학익진법은 보병, 기병공격전투에서 활용해온 학의날개모양(반원형)전법이다. 한산도해전은 이 전법을 해상화력기동전형식에 맞게 조선수군의 학익진법으로 혁신하여 적용한 포위전법의 모범으로 전해지고있다.

이 격전에서 조선함대는 적함 73척가운데서 도망친 14척을 제외하고 포위진에 든 적선 59척을 완전히 격침하고 수천명의 적을 살상하였다.

한산도해전의 승리는 임진조국전쟁국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였다.

이 싸움의 승리로 하여 적들의 수륙병진기도는 완전히 파탄되였으며 적들을 부산일대의 좁은 해역에 옭아놓게 되였다.

조선인민은 이 승리를 《한산대첩》이라고 자랑하여왔다. 리순신장군의 지휘밑에 진행된 한산도해전의 승리는 중세기 세계해전력사에서도 빛나는 자리를 차지한다.

1597년 9월 리순신장군의 지휘밑에 조선수군은 12척의 함선으로 330척의 적선과 맞서 놈들을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사이의 좁고 험한 골목인 울돌(명량)로 유인하여 격퇴함으로써 10여척의 전함으로 30여척의 적선과 4 000여명의 적병을 살상하였다.

1598년 11월 리순신장군의 지휘밑에 조선수군은 로량앞바다에서 총퇴각하는 왜적의 마지막 대함선집단과 맞서 200여척의 적함선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로량해전에서 싸움이 바야흐로 조선수군의 승리로 끝날무렵 리순신장군은 적탄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지금 싸움이 한창이니 내가 죽었다는것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였다.

선조왕은 리순신장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가 이 나라를 건졌도다! 하건만 이 땅에 이미 그대가 없으니 이 원통함을 어디에 하소한단 말인가!》라고 통곡하면서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하도록 지시하였다.

7년간이나 계속되던 임진조국전쟁은 로량해전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다.

리순신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수군을 통솔하여 왜적을 소멸하고 민족의 자주권수호에 기여를 한 중세해전사에 이름을 남긴 세계적인 명장이였다.

조국에 바친 애국명장 리순신의 애국지성은 력사에 길이 남아있다.

실학자 리수광은 《충무사》에서 리순신을 찬양하여 이렇게 노래하였다.


거룩하여라 이 나라 구원하신 장군이시여

백절불굴하여 우리 조선 살렸구나


1905년 로일전쟁당시 로씨야의 발뜨함대를 격파한 일본의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찌로는 전승기념연회에서 《당신이야말로 트라팔가해전에서 련합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해군제독 넬슨을 릉가하는 군신》이라고 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짜 군신이라고 말할만한 사람은 조선의 리순신장군이다. 나는 그에 비하면 그의 하사관에도 지나지 않을것이다.》

이처럼 리순신은 세상사람들을 크게 놀래운 바다싸움의 명장이였다.

중세해전사에 이름을 남긴 리순신장군의 공로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