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들과 문화유산들을 잘 보존하여야 하겠습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는 력사유적인 보통문을 중심으로 천리마거리, 창광거리, 만수대거리가 뻗어있으며 보통문다리를 거쳐 봉화거리가 시작되고있다.
민족의 우수한 력사유적인 보통문이 이처럼 수도의 거리형성중심에 자리잡게 된데는 깊은 사연이 담겨져있다.
보통문은 대동문과 함께 고구려시기부터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기까지 평양성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였다.
보통문은 6세기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을 쌓을 때 그 서문으로 처음 세웠고 그후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여오다가 1473년에 대보수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력사유적건물이다.
보통문은 옛날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보통문에서 손님을 바래우는 광경을 《보통송객》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아름다운 서정적화폭을 이루어 평양8경을 장식하였다.
보통문은 장중하면서도 균형이 째였으며 과거 우리 나라의 우수한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우리의 용감한 인민들과 군인들은 보통문으로 돌입하여 성안에 일시 도사리고있던 왜적들을 소멸하고 평양성을 해방하 였다.
보통문은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애국투쟁과 뛰여난 건축술, 우수한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력사유적이다.
하기에 1952년 8월 미제의 야수적폭격으로 보통문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평양시민들은 희생적으로 불을 꺼서 이 유적만은 살려냈다
그리하여 1954년에 보통문은 훌륭히 복구되여 옛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자랑하게 되였다.
주체47(1958)년 5월 하순 어느날 보통문을 찾으신
주체49(1960)년 1월 어느날에는 지난날 토성랑사람들의 원한이 스며있는 보통강일대를 인민의 락원으로 전변시킬데 대한 웅대한 구상을 무르익혀가시던
이 새 거리가 오늘 보통문으로부터 동성다리 시작점까지인 천리마거리이다.
력사기록들에는 새 도시와 거리를 일떠세우기 위하여 귀중한 력사유적을 헐어버렸다는 이야기는 간혹 있어도 그것을 더욱 빛내이기 위하여 옛 유적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리를 형성하였다는 이야기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있다.
그러므로 일군들은 변모되여가는 보통강반을 두고 휘황한 래일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였지만 그 누구도 옛 유적건물의 하나인 보통문을 내세울데 대하여서는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오로지 조선민족임을 제일의 긍지로 안고계시며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시는
그후 보통문을 중심축으로 창광거리, 만수대거리, 봉화거리가 뻗어나갔으며 천리마거리도 동성다리로부터 충성의 다리까지 더 확장되여 력사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의 중요간선거리들이 훌륭히 건설되게 되였다.
이처럼 력사유적인 보통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