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정방산에는 고려시기의 산성인 정방산성과 불교사원인 성불사가 자리잡고있다.
성불사는 산성의 남문을 거쳐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정방산의 주봉인 천성봉의 남쪽기슭 아늑한 골짜기에 있다.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정방산의 성불사에는
성불사는 898년에 처음 세워졌고 고려시기에 고쳐지었으며 그후에 여러 차례 보수증축하였다.
성불사기적비에 씌여진데 의하면 한때 성불사는 20여채의 건물과 10여개의 암자, 15개의 돌탑이 있는 규모가 큰 절이였다고 한다.
현재 성불사에는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산신각과 5층돌탑, 기적비 등이 있다. 지금 남아있는 기본건물들인 응진전, 극락전과 5층돌탑은 고려시기에 지은 건축물들이고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산신각 등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건물들이다.
성불사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은 응진전이다. 고려시기인 1327년에 다시 고쳐지은 응진전은 정면 7간(22.75m), 측면 3간(6.7m)의 길다랗게 생긴 3포식배집이다. 이 건물의 안에는 고려시기의 단청이 남아있고 건물밖에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고쳐그린 단청이 있다.
배부른기둥에 안팎을 허식없이 3포로 짜올린 두공, 도리를 맞추기 위하여 웃면을 둥글게 판 장여, 화반대공 좌우에 뻗쳐세운 활개, 단청에서 휘를 붙이지 않고 청록색계통이 드러나게 하면서 금분이나 붉은색을 조금씩 리용한것 등은 고려건축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성불사 응진전은 황해북도 연탄군 심원사 보광전, 평안북도 박천군 심원사 보광전 등과 함께 현재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목조건물중의 하나이다.
성불사의 기본건물인 극락전도 고려시기인 1374년에 고쳐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비교적 높은 기단우에 정면 3간(12m), 측면 2간(6.3m)의 배지붕을 얹은 단층목조건물이다. 건물은 배부른 기둥우에 3익공 통천정을 하였고 금단청으로 장식하였으며 꽃살무늬문짝, 동자두공, 대공화반이우수하다.
극락전의 앞에는 고려중엽에 세운 돌탑이 있는데 두겹으로 된 밑단우에 5층탑이 있는 형식으로서 수법이 검소하면서도 부드럽고 세련되였다.
극락전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제국주의침략자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였고 응진전은 기둥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다.
이 건물들은 주체46(1957)년에 원상대로 복구되였다.
극락전과 응진전의 남쪽으로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세운 명부전과 청풍루가 자리잡았는데 명부전은 2익공겹처마배집이고 청풍루는 가운데간에 통로를 낸 대문채식다락으로서 지형조건에 잘 어울리게 지었다.
고구려의 절간건축을 계승한 간결하면서도 튼튼한 구조, 록색기운이 짙은 단청과 조각장식 등을 비롯하여 고려건축술의 특징이 뚜렷한 성불사는 우리 나라 중세목조건물을 연구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오늘 정방산 성불사는 조선로동당의 옳바른 민족문화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국보유적 제87호로 제정되여 옛 모습 그대로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으며 정방산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 발전된 문화를 전하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