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종양연구의 력사

 2016.9.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적사실을 전하고 력사적유물을 보존하는 목적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옛날에 어떤것이 있었다는것을 알자는데 있는것입니다.》 (《김일성전집》제38권 291페지》)

먼 옛날부터 인류는 자기의 몸에서 일어나는 병적증상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돌리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종양에 대한 연구도 역시 의학발전력사와 더불어 호상련관속에 오늘날까지 진행되여오고있다.

고대시기부터 인류는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을 《하느님》이나 《신》의 조화로 생각하여왔다.

진정한 의학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에 의하여 자기의 첫걸음을 뗐다고 볼수 있다. 병의 원인과 경과를 미신적으로 설명하여오던 당시까지의 의학리론을 버리고 질병을 자연현상으로 보고 의학을 경험과 과학의 위치에 놓이게 한것은 고대철학가이며 의학자였던 히포크라테스였다.

그는 진단학, 예후학 등을 포함한 대작인 《히포크라테스전집》을 남기였고 의사의 륜리를 론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의 맹세》도 남기였다,

20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인류는 그를 《의학의 아버지》로 간주하면서 그의 저서들을 림상의학의 기둥으로 삼고있다.

실례로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병은 건강의 반대이다. 즉 건강은 개체가 주위환경에 완전히 편안한 상태라면 질병은 그의 반대인 불안정한 상태라고 하면서 《Disease》(easy-편안한, dis-반대의 뜻)라는 단어를 내놓았다.

히포크라테스는 녀성의 유방에 생긴 종물에 대해서도 자기의 전집에 남기였는데 종물의 압박으로 정맥이 방선상모양으로 퍼져나간것을 게에 비유하여 karkinouse(그리스어-게)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어원이 carcinoma로 되였다.

히포크라테스가 이 종물을 게에 비유한것은 종물과 방선상노장이 꼭 게의 모양과 같을뿐아니라 이 종물이 발생부위를 고통스럽게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영어에서 《cancer》라는 단어도 에서 유래된것이다.

히포크라테스식교육과 맹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염증의 4대증상(발열,발적, 종창, 아픔)을 제시한 쎌수스(Cornelius celsus, B.C 53~A.D. 7: 로마의 생리학자)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확대전파되였다고 한다.

의학에 대한 연구는 15세기 후반기 이딸리아에서 시작된 문예부흥기가 전유럽으로 급속히 퍼져나가던 시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의학자들이 갈망한것은 사람에 대한 해부학적인 지식과 병리학적인 지식이였다.

물론 동물에 대한 해부학적인 연구사업은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진행되여왔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시기 신의학의 대표자라고 불리우는 갈렌(Cladius Galenus, A.D. 129~199)은 생전에 철학, 언어학, 의학 등에 대한 500여건의 책들을 집필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동물(주로 돼지)에 대한 해부를 진행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사람에 대한 의학론리와 체계를 구축해나갔다. 갈렌의 의학체계를 요약한 《의술론》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1500여년간 유럽의학의 기초로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동물에 기초한 해부학적지식과 의학론리였지 실지 인체에 대한 지식은 아니였다.

이로부터 사람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지식이 필요하였다.그 첫 구상을 이딸리아의 유명한 화가였던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하였다.

다 빈치는 명작창작에서 사람의 해부학적지식이 필요하다는것을 절감하였고 그에 대한 시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첫 실천이 베잘리우스(Andreas Vesalius:벨지끄해부학자, 1514~1564)에 의하여 진행되였다.

그는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인 연구과정에 이룩된 성과와 경험들을 종합하여 1543년 《인체의 구조론》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오랜 세월 유럽계에 인식되고 전해져오던 갈렌의 《의술론》학설의 오유를 처음으로 지적하고 근대인체해부학의 시초를 열어놓았다.

베잘리우스의 뒤를 이어 많은 의학자들에 의하여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연구사업이 진행되였고 이 과정에 활로피스(Gabriel fallopius)에 의하여 수란관이, 아쎌리(Gaspare Aselli, 1581~1626)에 의하여 유미관이, 쿠퍼(William Cowper, 1666-1709)에 의하여 구뇨도선이 발견되는 등 인체의 해부학적비밀이 하나하나 밝혀지게 되였다.

이 시기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연구뿐아니라 질병이 있는 인체에 대한 연구사업도 활발히 벌어졌는데 그 첫걸음을 이딸리아의 병리학자였던 모르가니(Giovanni B Morgagni, 1682~1771)가 뗐다.

생전에 그는 700여건의 시체부검을 진행하면서 해부과정에 나타난 모든 병적변화들을 림상증상과 결부하여 생의 말년인 79살에 《림상병리방법학》을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병리학적진단방법과 지식은 종양성질병들은 물론 많은 질병들을 연구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현미경의 출현은 종양연구와 종양학발전에 특별한 기여로 되였다.

현미경의 도움으로 인체의 구조와 인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병적현상들을 육안적으로뿐아니라 미세적수준에서 연구되게 되였다.

종양세포가 발견되였고 여러가지 종양이 어느 계통에서 유래되였는가에 대한 과학적관찰이 이루어질수 있었으며 상피성종양과 비상피성종양에 대한 개념과 조직학적분류가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때부터 상피조직에서 발생한 악성종양을 암으로, 결합조직에서 유래한 악성종양을 육종이라고 규정할수 있게 되였다.

1865년 칼(Carl Thievsch)이 상피세포에서 유래한 악성종양을 갈라내고 암의 상피세포유래설을 내놓은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프랑스의 산부인과의사였던 레카미어(Recamier)도 1829년 혈류속에 들어간 암세포가 원격부위에 운반되여 전이가 일어났다는 병리학적증거를 문헌에 제시하고 전이《Metastasis》(meta 운반하다,stasis 정지하다)라는 단어도 내놓았다.

조직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말피쥐(Marcello Malpighi, 1624~1694)도 현미경의 도움으로 모세혈관, 림파조직, 피부의 말피쥐층을 발견할수 있었고 런던의 구이병원(Guy,s hospital)의 유명한 생리학 및 병리학자들이였던 브라이트, 아디손, 호지킨들도 현미경으로 많은 질병들을 연구하였다.

브라이트(Richard Bright, 1789~1858)는 콩팥에서 무균성염증을 발견하고 브라이트질병(후에 사구체콩팥염)으로 명명하였고 아디손(Thomas Addison, 1793~1860)은 신상선에서 만성신상선피질장애증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디손질병으로 명명하였다.

호지킨(Thomas Hodgkin, 1798~1866)도 림파절종대, 간종, 비종 등의 병적증상들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그것을 호지킨질병(후에 악성림파종)으로 명명하였다.

현미경이야말로 종양연구뿐아니라 의학발전의 큰 걸음을 내짚게 한 의학과학연구의 위력한 무기였다.

바로 이 현미경의 최초제작자가 네데를란드의 포목상인이였던 리웬호크(Von Leewen hoek, 1632~1732)였다.그는 짬시간을 리용하여 현미경에 대한 설계는 물론 자체로 렌즈도 만들고 연마하여 1665년 세계최초의 현미경을 제작하였다.

19세기 중엽 기계공업, 화학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정상조직이나 병든조직을 엷은 절편으로 만들수 있는 박절기를 제작할수 있게 하였고 그 시기 이룩된 각이한 염색방법들은 종양성질병들을 비롯한 많은 질병들의 과학적개념과 본태를 파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도이췰란드의 세균학자였던 김자(Gustav Giemsa, 1869~1948)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가장 보편적인 염색방법인 김자염색법을 내놓았다.

김자염색과 같은 여러가지 염색방법들을 적용하여 파파니콜라우(George N Papanicolau,1883~1962)는 1941년 자궁경부암의 조기발견을 위한 세포진방법과 그 관찰을 위한 5도분류법을 제시하였고 세포의 내망장치를 발견한 골지(C.Golgi)나 신경계통의 연구에서 명성을 떨쳤던 까할(Santiago Romany Cajal,1852~1934), 그리고 프랑스의 유명한 세균학자 파스뙤르(Louis Pasteur, 1822~1895) 역시 현미경과 각종 염색방법들의 도움으로 탄저균, 콜레라균 등 많은 세균들을 발견할수 있었다.

19세기말 도이췰란드의 물리학자 렌트겐(Wilhelm Conrad Roentgen)에 의하여 렌트겐이 발견된것은 질병의 연구와 진단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음극선을 연구하던중 1895년에 불투명한 물체를 투과하는 미지의 방사선(X선)을 발견하고 현대 렌트겐학의 기초를 축성하였다.암의 원인과 발생병리를 해득하는데서 1775년 영국의 외과의사 포트(Sirpercival Pott, 1714~1788)가 제기한 굴뚝그을음의 발암성인자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오랜 기간 굴뚝을 청소하는 로동자들의 음낭에 작은 궤양이 생기고 그것이 암으로 넘어가는것을 보고 화학적발암인자로서 그을음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한 증명으로 어느 한 나라의 두 연구사들(Yumagwa and Ichikawa)이 실험적으로 토끼의 귀에 석탄타르를 발라 피부암을 일으키였다.

그때로부터 실험적으로 동물에서 암을 일으킬수 있게 되였는데 발암모형을 만들고 발암인자를 찾기 위한 연구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였다.

발암인자의 하나가 비루스(DNA,RNA)라는것도 밝혀지게 되였다.

우간다에서 오래동안 의료활동을 진행하였던 버키트(Denis Persons Burkitt, 영국의사)는 중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3~8살난 어린이들속에서 많이 발생하는 악성림파종을 버키트림파종으로 명명하고 1958년에 그의 원인적인자가 비루스라고 제기하였다.

1964년 영국의 의학자들인 엡숀과 바 (M.A.Epstein and Yvonme M.Barr)는 버키트림파종에서 종양비루스를 분리하는데 성공하였는데 그과정에 배양세포내에서 헤르페스비루스과에 속하는 DNA비루스존재를 전자현미경(1933년 Ruska 와 Lorries가 전자현미경을 개발)으로 발견하고 이 비루스를 새로운 형의 사람헤르페스비루스 또는 과학자들의 이름을 달아 Epstein-Barr비루스라고 불렀다.

사실상 발암위험인자로서의 비루스는 1908년 엘러먼과 밤그(Ellerman and Bamg)가 닭백혈병비루스에 대하여 먼저 제기하였고 1910년 Rous(Francis Peyton Rous,미국병리학자)가 닭육종으로부터 비루스를 분리하여 종양비루스연구의 첫 길을 열어놓았다.

라우스에 의하여 발견된 집닭에서 발생하는 이 육종은 이식이 가능하며 현미경적으로 섬유육종이였다. 이 종양의 추출려과액은 다른 집닭들에서 섬유육종을 일으키며 이 비루스가 종양발생과 련관되여있다는것이 실험적으로 처음 증명되였다.

이 비루스(RNAvirus)는 오늘까지도 종양비루스에 의한 발암기전을 연구하는데 광범히 리용되고 있다.

암모형에서 대표적인것의 하나가 에를리히복수암이다.

오늘날까지 암의 생화학, 암의 화학료법 등 종양연구에 많이 리용되고있는 에를리히복수암은 도이췰란드의 안과의사였던 에를리히에 의하여 발견되였고 1906년 레벤탈과 쟌에 의하여 고형암(Ehrlich's ascetic solides)으로 전환되였다.

이 암세포를 흰생쥐에 이식하면 뚜렷한 암증식이 일어나며 어느 계렬의 흰생쥐에게도 이식이 가능할뿐아니라 2~4주이면 종물에 의하여 숙주동물이 페사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종양에 대한 연구는 분자 및 유전자수준에서 연구되고 연구성과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도이췰란드의학자 포일겐(Robent Feulgen, 1884~1953)은 DNA를 특이적으로 검출하는 정색반응으로서 포일겐반응을 내놓았고 1953년 와트슨과 크리크(J.D.Watson and F.C.Crick)는 DNA분자의 립체구조에 대하여 2중라선가설(와트슨-크리크 DNA모형)을 발표하였으며 DNA분자구조로부터 유전정보가 후대에 전달된다는것을 밝혔다.

티죠와 레반(Tijo and Levan)은 1956년 사람의 염색체수가 46개라는것을 밝혔고 1960년 노웰과 하줴포드(Nowell and Hagerford)는 일부 악성종양에서 염색체가 비정상적이라는것을 밝히고 그것을 필라델피아염색체라고 명명하였다.

1972년 베르그(P.Breg)에 의한 최초의 재조합DNA실험의 성공은 그때까지 불가능하였던 사람(또는동물)의 유전자를 분자적수준에서 해명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재조합DNA실험에 의하여 클론화된 유전자의 구조를 주형으로 단백질이나 효소 등의 생체분자들을 알아낼수 있었고 그들의 작용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암원성유전자와 항종양유전자들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였다.

1980년 J.W Gordon은 클론화된 유전자를 흰생쥐의 수정란에 주입하여 형질전환흰생쥐를 만드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였고 그것을 연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1989년 M.R.Capeechi는 세포의 분화, 개체발생, 기관발생, 암의 발생과정에 유전자가 동물개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분자유전학적으로 제기하였다.

종양에 대한 연구는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시작되였다.

의학백과전서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는 우리 나라 고려의학고전 《동의보감》(1596~1610년편찬,1613년출판, 허준)에 의하면 암에 대한 개념은 이미 높은 수준에서 발전되여있었다고 볼수 있다. 특히 유선암에 대한 발생병리, 진단, 치료에 대한 지견은 높은 과학적수준에 있었다고 말할수 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유선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였다.

《부인이 근심하고 성내는것이 쌓이면 젖몸에 멍울이 생긴다. 이것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으며 5~7년후에 겉이 부어나면서 거멓게 되고 속으로부터 점점 터져나오는데 이것을 유암(乳巖)이라고 한다. 모양은 오목 꺼져들어가 마치 바위구멍과 비슷하다. 이렇게 되면 치료를 할수 없게 된다.이때 기혈이 다 없어지면 죽는다. 이 병은 대개 근심하는것, 우울한것, 성내는것이 쌓여서 병이 되는데 이것은 중년부인에게서 잘 생긴다.》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유선암이 잘생기는 나이, 유선암발생의 위험률이 높은 증후들, 암의 발생과 진전, 림상경과에 대한것은 현대종양학의 견지에서 보아도 높은 수준에 있었다고 말할수 있다.

허준은 유선암을 젖의 염증인 《유옹》과의 감별지표도 서술하였다.

유옹때는 환자가 아프다고 하며 오한, 발열, 머리아픔이 있지만 유암때는 아프지도, 발열도, 머리아픔도 없다고 하였다. 이 감별점은 진성종물이든,염증성종물이든 부풀어 도드라진것을 일률적으로 혹(종물)이라고 취급하여 온 선행시기 개념에 비하면 상당한 과학적진보를 이루었다고 본다.우리 나라 의학계에서는 16세기 중엽과 17세기 초엽에 여러가지 종양에 대한 림상적분류도 진행되였다.

혹(瘤)을 기류(페의 혹), 옥류(비의 혹), 혈류, 근류, 지류, 골류 등으로 나누어 보았으며 목에 생긴 혹을 영(榮),비인후의 혹을 실영(失榮), 혀의 혹을 설감(舌疳), 연부조직에 생긴 혹을 석저(石疽)라고 하였다. 고려의학고전의 하나인 《향약집성방》(1433년 출판,로중례) 제22권 적취문에도 5장6부에 생긴 종양들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적(積)은 5장에 생긴 혹, 취(聚)는 6부에 생긴 혹이라고 하였다. 물론 과학발전의 시대적제한성도 있었지만 우리 나라 고려의학계에서도 이처럼 종양에 대한 연구에서 적지 않은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종양의 본태를 모르고 종양에 대한 첫 연구를 시작하였던 고대시기로부터 종양에 대한 과학적개념이 서기 시작하였던 19세기 중엽을 걸쳐 21세기에 들어선 종양에 대한 연구는 실험종양학, 분자세포병리학, 면역학, 유전자생물공학 등의 도움으로 발생원인과 기전, 진단과 치료 등에서 더욱더 과학화되였으며 종양에 대한 현대적개념이 새롭게 확립되여가고 있다.

그러나 종양에 대한 연구, 특히 악성종양에 대한 문제는 아직까지도 현대의학이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