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리권혁
2024.3.7.
민속무용《3인무》는 2명의 남자와 1명의 녀자가 부채를 들고나와 춤을 추는 무용으로서 그것의 본래 이름은 《사당춤》이였다.
《사당춤》이 오늘의 《3인무》로 되기까지에는 우리 민족이 창조한 무용유산을 빛내여주시기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세심한 사랑의 손길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하나의 춤동작에도 우리 인민의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으며 인민들의 생활감정이 반영되여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산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9(1970)년 3월 5일 3.8국제부녀절 60돐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시연회를 몸소 지도해주시고 《사당춤》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 전날에도 일군들에게 《사당춤》이 옛날 춤동작이라고 하여 무턱대고 버려서는 안된다고, 춤동작 하나를 얻기가 쉬운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에도 《사당춤》과 관련한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아주시였다.
일군들에게 《사당춤》이 공연종목에서 빠지게 된 리유를 물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춤이 절간에서 나온 천박한 춤이기때문에 넣지 않았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시고 이번 공연종목에 무용《사당춤》을 잘 준비하여 넣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무용《사당춤》이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은 작품으로서 그때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있는 문제를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부 일군들은 《사당춤》의 《사》자를 《절사》자로 리해하고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집뜨락을 무대로 삼고 노래와 춤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사당》이라고 불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그들의 춤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작품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놀이에 어울리는 즉흥적이면서도 재치있는 동작으로 된것이였다고, 이러한 《사당춤》에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춤가락과 민족적인 흥취가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사당춤》의 유래와 춤가락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당춤》이라고 부르는것이 쉽게 리해되지 않는다면 《3인무》라고 하여도 된다고, 《사당춤》자체가 그 어떤 사상주제적내용을 담고있는것도 아니고 한갖 놀이적인 춤이므로 《3인무》라고 부르는것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3.8국제부녀절 60돐기념 음악무용종합공연종목에 무용《3인무》를 넣고 이미 준비한 배우들을 출연시킬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사당패가 자기의 존재를 끝마친지도 수십년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민족의 슬기와 재능, 풍부하고 아름다운 생활감정을 반영한 문화유산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춤가락일지라도 모두 찾아내여 훌륭히 계승발전되도록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에 떠받들려 세월의 락엽속에 영영 사라져버릴번한 《사당춤》은 《3인무》로 다시 태여나 민속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