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춘영
2023.7.3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처럼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지니고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신 위인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22페지)
오늘 주체조선의 수도에서는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송화거리,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 화성거리 등 사회주의번화가들이 궁궐같은 살림집들을 떠이고 년년이 일떠서 평범한 근로자들이 돈 한푼 안들이고 행복의 보금자리를 펴고있다.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 조선에서만 볼수 있는 전설같은 현실을 대할 때마다 해방후 로동자들에게 훌륭한 살림집을 마련해주시기 위하여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면서도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사소한것도 절대로 불허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가 가슴뜨겁게 되새겨진다.
주체37(1948)년 7월 2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평안남도당위원회 위원장을 하던 일군을 부르시여 만경대고향집뒤에 지은 집을 누구와 토론하고 지었으며 무엇때문에 지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집으로 말하면 그무렵 만경대혁명학원건설장을 비롯하여 만경대일대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집에서 잠시나마 휴식하시기를 바라는 평안남도인민들의 지성에 떠받들려 지은 2층짜리 양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을 위하는 동무들의 성의는 알만하지만 집은 헐어야 하겠다, 자신께서 만경대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자게 된다 해도 만경대집이 있지 않는가, 해방을 맞아 처음으로 늙으신 조부모님을 만나뵈러 만경대집에 갔을 때에도 조부모님들과 같이 그곳에서 자고왔다, 지금에 와서 그옆에다 양옥을 크게 지어놓고 거기서 자라고 하면 내 마음이 편할것 같은가, 그것은 늙으신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뜻과 도리에도 어긋난다, 그 양옥을 그대로 두면 소박한 만경대집의 격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인민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것이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았는가고 하시며 그를 다정히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그 집을 짓느라고 수고가 많았겠는데 그것은 혁명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그 집을 헐어버려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자재로 인민들의 살림집을 한동이라도 더 지었더라면 좋았을것이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20성상 항일대전의 긴긴 세월 하늘을 지붕삼고 흰눈을 이불삼아 풍찬로숙하시며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이 세상 가장 훌륭한 궁전을 지어드리진 못해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잠시나마 휴식하실수 있게 소박하게 지은 집마저 허물어버리게 하시고 그 자재로 인민들의 집을 한동이라고 더 짓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매한 인민적풍모앞에서 일군은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을 위한 집을 짓는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셨지만 해방을 맞은 근로하는 인민들에게 제일 좋은 집을 지어주시기 위하여 끝없는 헌신과 로고를 다 바치시였다.
항일의 나날 언제한번 잊으신적 없었던 그리운 고향, 늙으신 조부모님이 기다리는 만경대고향집을 뒤에 남기시고 강선제강소(당시)를 찾으셨던 주체34(1945)년 10월의 그날 평양으로 돌아오시던 길에서 우리 로동계급이 철을 많이 생산하면 그것으로 인민들의 살림집을 번듯하게 지어주자고 말씀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조국건설로 들끓는 공장과 농장 그 어디에 가시여도 먼저 로동자들의 살림집문제부터 알아보시였다.
주체36(1947)년 7월 19일 로동신문사부속 종합공장(당시)건설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족되는 로력 500명을 보충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신데 이어 모자라는 주택을 공장가까이 해가 잘 비치는쪽에 짓도록 몸소 위치를 정해주시고 생활에 불편이 없게 목욕탕도 만들고 위생실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주체37(1948)년 6월 4일 흥남비료공장(당시)을 현지지도하실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공장주택계장(당시)부터 부르시고 그가 가지고온 주택설계도안을 보아주시였다. 로동자들의 주택지구와 살림집구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때 로동자들이 집도 없이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았겠는가고, 여기는 공장연기때문에 공기가 나쁘니 주택은 연기가 없는데 지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살림집들에서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산다는것을 아시고 앞으로 주택은 다 온돌방으로 건설하며 조선사람의 기호에 맞게 다 개조하라고 이르시였다. 계속하시여 로동자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어 그들이 조금도 불편이 없도록 해야 생산에서도 성과를 거둘수 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해방후 조선에서 지은 첫 로동자다층살림집에도 인민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로고가 어리여있다.
조선에서 정규적인 혁명적무장력의 탄생이 선포된지 한달도 채 안되던 주체37(1948)년 3월 2일.
이른새벽의 어둠을 밀어내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과 함께 승용차를 타시고 대동강다리를 넘어 대동강제방뚝을 따라 달리시다가 단층집들을 지나 남새밭옆에 이르시여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일대에 다층살림집을 많이 지어 새로운 거리를 형성하자고 하시면서 해방의 기쁨안고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 수도시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자면 이 일대에 살림집을 많이 지어야 한다, 새 살림집을 많이 지으면 인민들이 알뜰하고 문화적으로 살수 있다, 여기에 짓는 살림집은 옛날과 같이 자그마한 단층집으로 지을것이 아니라 해방된 조선인민의 새로운 생활과 요구에 맞게 문화적인 다층살림집으로 지어야 한다, 집을 지을 때에는 다른 나라의것을 그대로 본따지 말고 조선인민의 민족적풍속과 현대적미감에 맞게 지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아침식사도 미루시며 동평양에 로동자들을 위한 다층살림집건설터전을 몸소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살림집건설에 수억원의 자금을 투자하도록 하시였으며 이 건설을 2개년인민경제계획의 주요건설대상의 하나로 선정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몇차례씩이나 공사현장을 찾으시여 로동계급에게 처음으로 지어주는 다층문화주택인것만큼 잘 지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공사를 앞당길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면서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세상에는 가는 곳마다 훌륭한 궁전을 지어놓고 자기의 위세를 자랑하는 령도자는 많았어도 자신을 위해 지은 소박한 집은 헐어버리게 하고 인민들이 쓰고살 살림집을 더 많이, 더 훌륭하게 지어주기 위해 끝없는 헌신과 로고를 바친 령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기에 전체 조선인민은 한평생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영원한 인민의 수령으로 천세만세 높이 모시고 그이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을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빛내여가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