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률대학 박사 부교수 박희철
2019.4.6.
장장 수십성상에 달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한평생은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실현에 모든것을 바쳐오신 절세의 위인, 동서고금에 있어본적이 없는 숭고한 의리와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의 빛나는 력사로 수놓아져있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과 세계혁명앞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에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형제적중국인민과 굳게 손을 잡으시고 그들의 혁명위업을 성심성의를 다하여 적극 지지성원하여오신 국제주의적의리의 력사도 깃들어있다. 길림시절과 피어린 항일혁명, 중국의 동북해방작전과 본토해방전쟁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중친선의 깊고 억센 력사적뿌리를 마련하시고 우애의 정을 변함없이 이어오신 전설같은 사연들을 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 가운데서도 일제패망후 장개석도당을 반대하는 중국인민의 혁명전쟁을 도와주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시고 그 진두에 서시여 몸소 혈로를 개척하시고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의 가슴가슴을 더욱 뜨겁게 해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서의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제시하신지 3일후인 주체34(1945)년 8월 23일 각 지구와 중요 시, 군들에 파견할 정치공작원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서는 각 지방에 파견될 정치공작원들의 지구별 책임자명단이 발표되고 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강습이 조직되였는데 천만뜻밖에도 강건, 박락권, 최광, 공정수 등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중국동북지방으로 파견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해방된 조국땅을 밟게 된 기쁨과 환희로 설레이던 그들이 몹시 락심천만해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전쟁의 불길이 멎었지만 중국동북지방에는 수십만의 관동군패잔병들과 반혁명적무장부대들이 있는데다가 장개석도당이 동북지방을 차지하려 하고있는 반면에 중국공산당의 력량은 주보중의 항일련군뿐이고 앞으로 가까운 시일안에는 큰 력량을 투입할 형편이 못되였다고 하시며 중국동북지방에 새롭게 조성된 정세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동북지방이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으로부터 동북의 정세와 그 지방의 실정을 잘 알며 조중인민간의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싸워 풍부한 경험을 가진 동무들을 그 지방에 파견하기로 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동북지방파견성원들의 사업을 강건이 책임지고 연길에 나가 주재하며 왕청현, 화룡현, 룡정시와 장춘, 길림지방에 파견되는 성원들이 해당 지역에서 사업하게 될 직책과 가명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지적해주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주체34(1945)년 9월 15일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동북지방에 파견할 성원들을 부르시였다. 일제가 패망된 후 중국동북정세를 예리하게 주시해오시다가 마침내 이제는 헤여져야 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시였던것이다.
당시 중국동북지방의 정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예견하신 그대로 매우 복잡하게 급변하고있었다. 장개석도당은 중국동북지방의 성들을 개편하고 행정관리체계를 세우며 국민당조직들을 내오려고 하는 한편 이 지방을 타고앉기 위한 군사적준비를 적극 추진시키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군패잔병들과 반동군벌잔여세력, 토호들과 토비들이 《반공》의 간판밑에 략탈과 학살만행을 무시로 감행하고 조중인민들사이에 리간을 조성시켜 류혈적인 참사까지 빚어지고있는 형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각한 어조로 우리는 중국동북지방에 조성된 긴장한 정세와 어려운 정황을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다고 말씀하시고나서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을 지원하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전체 조선인민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로 됩니다.》라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중국동북지방에 파견되는 성원들이 하여야 할 과업들을 하나하나 제시해주시였다.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항일의 전장에서 단련된 군사정치간부들, 새 조국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할수 있는 건국의 골간들과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에 들어서면서 중국동북의 정세는 극도의 위험상황에 놓이게 되였다. 외국제 신식무기와 군사장비로 발톱까지 무장한 국민당군은 파죽지세로 심양, 사평, 장춘, 길림 등 큰 도시들과 철도, 대도로들을 점거하고 남북만의 넓은 지역에로 점령지역을 급속히 확대해나가고있었으니 정세는 마치도 사나운 승냥이무리가 양떼를 덮치는 격이나 다를바없었다.
당시 료녕군구 사령원이였던 소화는 정치부주임 소경광을 신의주에 보내여 위대한 수령님께 긴박한 정황을 알려드리고 자기들을 도와주실것을 요청하였다. 그때 국민당군의 공격으로 단동시교외에서는 적아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적비행기들이 시내상공을 선회하며 철수하는 동북민주련군부대들과 피난민들에게 미친듯이 기총사격을 퍼붓고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위험에 처한 동북혁명을 구원하시려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만사를 뒤로 미루신채 전화속의 료녕군구사령부를 찾아주시는 용단을 내리시였으니 그때가 바로 주체34(1945)년 11월말 초생달이 뜬 어느 야밤이였다.
작전협의가 시작되여 여러 지휘원들의 발언을 주의깊게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군의 배치정형과 기동상태 등을 일일이 알아보시며 정황을 파악하시였는데 중국지휘성원들은 수령님께서 동북의 두메산골마을들이며 작은 산과 강들의 이름까지 환히 꿰들고계시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북실정에 밝지 못한 관내의 팔로군출신 지휘성원들에게 조언을 주실것을 말씀드리는 소화사령원의 청을 너그러이 대하시며 사태의 본질과 정세의 추이를 통찰하신후 전국의 근본적전환을 위한 전략전술적대책들을 명쾌히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면하여 팔로군부대들은 정면충돌을 피하고 도시들을 내주어 적의 력량을 분산시키며 농촌지역에 강력한 근거지를 꾸려 그에 의거하여 적후에서 대부대기동전과 유격전을 널리 전개하여 적들의 력량을 약화소멸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싸우다 정 곤난하면 백두산으로 들어가라, 조선은 당신들의 믿음직한 후방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위기국면을 주동적으로 극복타개하고 공세에로 이전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명안을 대번에 밝혀주시였으니 실로 위인의 예지에 감복한 나머지 중국지휘성원들속에서는 탄성이 터져올랐다.
1946년에 접어들어 적들의 공세는 더 한층 강화되였다. 악전고투하는 팔로군부대들의 어려운 형편을 우려하여 중국의 모택동주석은 위대한 수령님께 특사를 파견하여 상해지구로부터 바다를 건너 동북에 파견될 팔로군부대들이 조선을 거쳐 진출할수 있게 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군부대들에 무기를 보내주실것을 요청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즉시에 그 요청을 수락하시고 필요한 조치들을 다 취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상해지역만이 아니라 산동지구로부터 바다를 건너 온 팔로군부대들이 남포항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항구들을 거쳐 동북전장에로 진출하였고 료동 등 남만지역으로부터 철수하던 민주련군부대들도 우리 나라의 북부지구를 거쳐 후퇴하였다.
사실 당시에 조성된 긴장한 정세로 하여 우리는 다른 나라에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대줄 형편이 못되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10만여정의 무기와 탄약까지도 서슴없이 보내도록 조치를 취하시고 그것들을 정부호위련대가 직접 렬차를 호송하여 중국동지들에게 넘겨주도록 하시였으며 성능높은 《황색폭약》도 대량생산하여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들은 중국의 동북민주련군의 길림군구와 료녕군구사령부산하 전선 각 부대들에 분배되였는데 무기가 없어 창이나 곤봉을 총대신 메고다니던 중국군인들은 환성을 올리고 춤을 추며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의 민주련군부대들이 군복의 부족으로 곤난을 겪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수천벌의 군복과 대량의 군복천, 의약품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또한 중국 동북민주련군의 지휘성원들의 가족일행이 탄 렬차가 할빈쪽으로 후퇴하던중 국민당군의 습격을 받고 돈화방향으로 끌려가고있다는 소식을 접하시고는 즉시 박락권사단에 령을 내리시여 구출작전을 펴도록 하시고 구출된 가족일행을 우리 나라의 의주지방에 소개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를 높이 받들어 우리 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은 중국의 동북해방을 위한 성전에서 자기의 귀중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치는것도 서슴지 않았다. 장춘, 길림, 사평, 심양, 금주 등 도시들과 군사적요충지들을 탈환하고 동북전역을 해방하는데서 강건, 박락권, 최광 등의 조선인부대들이 주도적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동북해방작전을 비롯한 국내해방작전에 참가한 조선청년들은 무려 수십만명에 달하였다.
참으로 중국혁명이 제일 어려웠던 시기에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실현하는데서 절실하게 요구되고 또 크게 기대하시는 핵심들을 아낌없이 파견하시고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수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들까지도 서슴없이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국제주의적의리의 숭고한 귀감은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