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강태일
2021.3.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머님의 인정미는 더없이 뜨거웠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294페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는 비범한 사격술과 용감성으로 만민의 칭송을 받으신 백두의 녀장군이시였을뿐아니라 뜨거운 인간애와 인정미를 지니신 조선녀성의 참다운 귀감이시였다.
김정숙동지의 열화같은 사랑과 뜨거운 인정미는 민족과 국적을 초월하여 이름없는 일본인처녀들에게도 가닿았다.
주체60(1971)년 10월말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나라를 방문한 일본 도꾜도지사일행을 접견하실 때 있은 일이다.
대표단의 한 성원이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가 가지고온 한장의 편지를 올리였다. 그 편지는 일본의 한 녀성이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것이였다.
그 편지의 사연은 사실상 인류사에 인간관계가 생겨나고 인정미라는 말이 생겨 처음으로 듣게 되는 인간사랑의 이야기였다.
주체35(1946)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앞에 먹을것을 동냥하러 찾아온 두 처녀가 있었다.
그들은 일본군에 징발되여 간호부로 일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귀향길에 오른 처녀들이였는데 중국동북지방에서부터 걸어서 평양까지 나오다보니 로자며 먹을것이 다 떨어져 동냥으로 그날그날을 연명하고있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처녀들을 돌려보내려는 경위대원들을 만류하시고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시여 위생사업도 하게 하고 밥상도 차려주시였다. 그리고 배고프면 또 찾아오라고 하시며 문밖까지 바래워주시였다.
너무도 허물없이 대해주시며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김정숙동지의 인정미에 마음이 끌린 그들은 계속 김정숙동지를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김정숙동지께서는 일본으로 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 함께 있자고 하시며 그들을 아예 댁에 눌러앉히시였다.
그때까지 그들은 자기들이 찾아든 집이 어느분의 집인지 모르고있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자기들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저택에 들어있다는것을 알게 된 한 처녀가 울먹거리며 자기들은 모르고 찾아왔다고 사례의 말씀을 올리였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이 일본에 가는 수속이 끝날 때까지 계속 함께 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놓고있다가 때가 되면 조국으로 가라고 다정히 말씀해주시였으며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는 수속도 해주도록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식사도 그들과 함께 준비하시고 과일물도 함께 만들며 아무런 간격도 두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새옷을 마련해주시고 떠나는 날에는 도중식사와 많은 로자까지 쥐여주시였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으로 된 통행증명서까지 안겨주시였다.
일본처녀들은 몇달동안 이렇게 김정숙동지의 다심한 사랑과 보살핌속에서 한집안식구처럼 지내다가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의 보살핌속에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의 자애로운 모습이 소중히 간직되여있었다.
그들중의 한 처녀가 20여년이 지난 그때 평양으로 떠나는 인편에 잊지 못할 그 시절의 추억을 담아 위대한 수령님께 편지를 올리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편지를 받아보시고 그런 처녀들이 우리 집에 있었다고, 김정숙동무가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정녕 김정숙동지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정견과 신앙, 국적과 민족을 초월하여 만민의 심장을 매혹시킨 불같은 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