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천공작기계공장은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오신
희천공작기계공장은
가렬한 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3월 어느날이였다.
경제부문의 한 일군을 부르신
그이께서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우리는 탄알과 무기도 제손으로 만들어 전선수요를 보장해야 한다는것을 피의 교훈으로 찾았고 그러자면 자체의 튼튼한 기계제작공업이 있어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전쟁과정에 흩어진 기계기술자들을 모이게 하여 그들의 기술기능수준도 높이고 새로운 기술자들도 키워내야 한다, 희천이나 덕천과 같이 동력기지도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후방지대에 새로운 기계제작공업기지를 창설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일군은 준엄한 전쟁을 치르고있는 조국, 그러나 반드시 승리할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시고 주체적인 기계제작공업기지의 창설이라는 웅대한 구상을 펼치시는
그리하여 주체40(1951)년 8월 희천지구에 새로운 기계제작공업기지를 창설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결정이 채택되였고 전선의 갱도공사에 동원되였던 기술자, 기능공들이 희천의 기계공장건설장으로 파견되였다. 그해 12월 25일에는 공장건설착공식이 진행되였고 1년남짓이 지나서는 제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 기계제작공업의 어머니공장인 희천공작기계공장은 불비 쏟아지고 폭음이 울리던 전화의 나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