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해동역사》에 반영된 고려의 접이부채에 대하여

 2016.3.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세상에 널리 자랑할만 한 문화적재부를 창조하였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160페지)

예로부터 《코레아》, 《꼬레아》, 《코리어》 등으로 세상에 널리 이름났던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근 500년간 존재하였던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이다. 이 기간에 고려에서는 외적들의 끊임없는 침략책동을 쳐물리치는 반침략투쟁을 벌리는 속에서도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수많은 훌륭한 문화유산들이 창조되였다.

그 가운데서도 고려의 공예품은 아름다움과 섬세성, 우아함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고려시기의 공예품들가운데서 이름난것중의 하나는 쓰기에도 편리하고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접이부채였다.

《해동역사》권제29 궁실지 부록 기용편에는 고려의 접이부채에 대하여 상세히 수록되여있다.

그에 의하면 쓰기에도 편리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금, 은, 동 등으로 장식한 고려의 접이부채는 금박이나 은박으로 그림을 그려넣은 그림부채인 《화첩선》과 마치 새의 깃으로 만든것 같이 보이는 《삼선》, 연한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 압착하여 만든 《송선》, 그리고 참대로 골조를 세우고 거기에 종이를 붙여 만든 《백섭선》과 담비의 꼬리털로 만든 《초미선》 등 그 종류와 형태, 재질이 다양하였다.

고려에서 만든 부채가 세상에 널리 이름나게 된것은 그것이 아름답고 우아한데다가 접었다 폈다할수 있는 접이부채였기때문이다. 당시 이웃나라들에서는 접이부채가 아니라 평부채인 《단선》이나 《광단선》만을 알고있었다. 그러므로 이웃나라의 녀인들은 모두 《단선》을 쓰고있었는데 고려에서 접이부채가 전해진 때로부터 기녀들과 량가집녀인들이 조금씩 고려의 접이부채를 얻어 리용하게 되였다.

고려의 접이부채를 만든 형태를 종류별로 분석해보면 《화첩선》은 그림을 그려넣은 접이부채로서 금박이나 은박으로 장식하고 그우에 인물이나 동물, 산천 등을 그려넣은 매우 아름다운것이였다.

《삼선》은 백삼나무를 쪼개여 그것을 종이와 같이 얇게 만든 다음 천을 짜듯이 곱게 꿰매고 채색하여 만들었는데 마치 새깃으로 이어놓은것 같은 감을 느끼게 하였다.

《송선》은 소나무껍질가운데서 부드러운 속껍질을 벗겨내여 방망이로 두드려 납작하게 압착시키고 실오리처럼 가늘게 만들어 천을 짜듯이 정밀하게 짜고 그우에 아름다운 꽃과 무늬를 그려넣은것이였다. 이 부채는 매우 아름답고 섬세하였는데 특히 봉건정부에서 다른 나라에 가는 사신들에게 내주던것이 제일 훌륭하였다. 이 부채는 부드럽고 매끈매끈하였으며 소나무와 잣나무와 같이 복잡한 무늬를 가지고있었다.

《백합선》은 참대로 골조를 만들어 세우고 거기에 아청지(종이이름)를 붙인 다음 은이나 구리못으로 장식한 부채인데 소매속에 넣었다가 쓸수 있어 매우 편리하였다.

《해동역사》자료에 의하면 1076년 겨울에 고려에서 최사훈이라는 사람이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봉건정부에서 접이부채를 주어 가지고 가게 하였다고 한다.

이 부채는 아청지로 만든것인데 인물이나 말, 나무, 물새 등을 그려넣고 거기에 은박으로 구름낀 달빛같은것을 실물과 같이 생동하게 형상하였다.

고려에서는 이밖에도 종이를 접어 만든 부채도 있었는데 구리로 만든 고리에 사람이나 짐승을 새기고 은으로 장식한것이였다.

또한 종이로 부채를 만들고 거기에 《금광죽》이라는 참대로 부채살을 만든것도 있었는데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였다.

이 부채를 펴면 너비가 1자 3치~1자 4치정도 되고 접으면 손가락너비만큼 작아지게 하였다. 여기에 금이나 은박으로 사람이나 하늘, 땅, 바다, 별, 은하수, 달, 식물 등 여러가지 사물현상들을 그려넣었는데 그림의 원근이 뚜렷이 대조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비단으로 만든 부채도 있었는데 여러가지 색갈의 비단을 리용하였다.

고려에서는 쓰기에 편리하고 아름다운 접이부채를 수많이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이웃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해동역사》에 의하면 당시 송나라(960~1279)에서는 고려의 접이부채에 대하여 《…펼치면 한자나마 되지만 접으면 크기가 두손가락너비만 하다…》고 하면서 높이 평가하였으며 원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섭첩선》(접이부채)을 가져간 때부터 이 부채를 알게 되였고 그후 그것을 본받아 잠자리에서 많이 쓰던 《광단선》이 자취를 감추게 되였다고 한다. (《해동역사》권 제29 궁실지 부록 기용편)

또한 명나라(1368-~1644) 황제는 접었다 폈다 하는 고려부채의 편리함과 아름다운 장식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자기 나라 수공업자들에게 그 방법대로 접이부채를 만들게 하고는 그 이름을 《고려선》이라고 부르게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고려의 부채가 얼마나 훌륭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생동한 실례로 된다.

이와 같이 고려의 접이부채는 당시 이웃나라들에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우수한 공예품으로서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반만년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온 우리 민족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여 이 땅우에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기어이 일떠세우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