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계응상농업대학 박남철
2019.7.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에 이어 남패자에서부터 론의된 조국진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전적구상을 펼치시고 또다시 대부대로 조국으로 진군하실 결심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시기 항일혁명을 계속 앙양시킬수 있는 최상의 방도는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가 국내에 들어가서 적들을 공격하여 내외에 자기의 존재를 시위하는것이라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8(1939)년 4월 3일부터 4일까지 장백현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력사적인 연설 《적극적인 반격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련속 타격하고 조국으로 진군하자》에서 또다시 대부대로 조국으로 진군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직진행된 무산지구진공작전은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앙양시키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작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이번에 단행한 무산지구전투는 국내인민들의 반일투쟁기세를 더욱 고무하고 혁명운동을 가일층 앙양시키는데 거대한 영향을 준 참으로 의의깊은 전투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권 475페지)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서 제시된 방침에 따라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가는것은 1930년대 후반기 항일혁명앞에 나선 총적과업이였다.
이러한 총적과업을 실현하는데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보천보전투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진공작전과 중일전쟁후 조직전개한 군사정치활동, 압록강연안일대에로의 진출을 위한 고난의 행군 등은 실로 거대한 역할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성과에 토대하여 전반적조선혁명을 또다시 앙양에로 불러일으킬 원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무산지구진공작전을 단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내진공작전의 총적지향점을 국내혁명운동을 빨리 앙양시키는데 두시고 그것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무산지구를 주되는 타격대상으로 선정하신것은 가장 현명하고 선견지명있는 조치였다. 주체28(1939)년 5월 상순 몸소 경위중대와 일부 소부대성원들을 이끄시고 간백산밀영에 오시여 조국진군작전계획을 완성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18일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에 진출하시였으며 청봉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고 건창을 거쳐 베개봉에 이르신 다음 거기서 다시 100여리의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보무당당히 백일대로행군을 단행하여 무포숙영지에 도착하시였다.
시퍼런 대낮에 경비도로라는 이름이 붙은 신작로를 수백명이나 되는 대부대가 일행천리로 행군한 사실을 알게 된 적들은 아연실색하였으며 《전례없는 괴이한 사변》이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사실상 총소리 한방 내지 않고 몇개 련대나 사단의 적을 소멸한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나타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무포숙영지에서 지휘관회의를 여시고 행군과정을 총화하신 다음 대홍단지구로 진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우선 신사동과 신개척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흡동지가 지휘하는 7련대를 신개척방향으로 진출하게 하시고 몸소 경위중대와 8련대를 이끄시고 신사동방향으로 진출하시였다.
신사동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에서 제일 큰 목재소로동자합숙을 찾으시였으며 이곳 인민들앞에서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기 위하여 반일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자》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로서 조직되고 조국의 해방과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격과 사명에 대하여 밝히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하루빨리 성취하기 위하여 로동계급이 선봉이 되여 전민족이 반일전선에 굳게 뭉쳐 일제를 반대하는 성전에 힘있게 떨쳐나서며 전체 인민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지지성원하며 인민들이 살기 좋고 번영하는 새 조선을 건설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가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마디마디에 조국인민들의 절절한 지향과 념원이 담겨져있고 조국해방을 위한 옳바른 투쟁방략이 제시되여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이곳 목재소로동자들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애국의 불씨를 심어주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일군들과 대원들은 이곳 인민들에게 조국광복회 창립선언문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등사한 선전물들을 나누어주고 이 일대에서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도와주는 등 군중정치사업을 활발히 벌리였다.
인민들은 지난 겨울 다 얼어죽었다고 하던 혁명군이 어디에 있다가 무슨 수를 써서 이렇게도 많이 무산지구에 나타났는가고 하면서 감격과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으며 지성을 다하여 혁명군을 원호하였다.
신사동인민들앞에서 군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23일 대홍단벌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산지구진출을 저지시켜보려고 발악하던 적들을 최종적으로 소멸하기 위한 전투를 승리적으로 조직진행하시였다.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산지구에 나타나 대홍단벌에서 자기네 군경들을 대량소멸하고 유유히 두만강을 건너갔다는 소식을 듣자 대경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무산지구진공작전은 적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타격과 인민들에 대한 힘있는 정치사업으로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고 국내혁명운동을 급속한 앙양에로 이끌어올린 일대 사변이였다.
실로 무산지구전투는 보천보전투와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였다.
보천보전투가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시위한 전투였다면 대홍단전투는 적들이 전멸당했다고 선전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해있을뿐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대한 력량으로 자라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있다는것을 실지로 보여준 력사적인 전투였다.
무산지구에서 울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소리는 기가 죽었던 국내인민들에게 우리 혁명이 계속 상승일로를 걷고있다는 신심을 주고 《혜산사건》의 여파로 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위축되였던 국내혁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무산지구에서 이룩한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적승리는 또한 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떠들어대던 적들의 선전이 완전히 허위라는것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무산지구전투가 있은 뒤 우리 인민들은 적들의 그 어떤 선전에도 속지 않았으며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은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혁명을 진두에서 령도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하는 한 조국해방의 새날은 반드시 오고야만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항일혁명의 거세찬 흐름속에 앞을 다투어 뛰여들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무산지구진공작전의 혁혁한 승리는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서 천명된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이룩한 귀중한 열매였으며 또다시 조국땅에 해방의 홰불을 지펴올리여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투쟁사를 새로운 승리로 빛나게 장식한 력사적리정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