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12살 어리신 나이에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

 2021.9.20.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12살 어리신 나이에 조선사람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말씀을 받드시여 나라찾을 큰뜻을 안으시고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배움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은 수령님께서 어린시절부터 얼마나 높은 뜻을 지니시고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땅을 되찾을 굳은 맹세를 안고 혁명의 길을 걸어오시였는가를 보여주는 불멸의 혁명로정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441페지)

세상에는 혁명가도 많고 이름난 명인들도 많으며 그들에게는 제나름의 어린시절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12살 어리신 나이에 두 나라지경을 단신으로 오가시며 력사에 아로새겨질 뜻깊은 천리길을 걸으신 위인은 이 세상에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12살 되시던 해인 주체12(1923)년초였다.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어리신 수령님께 앞날의 포부에 대하여 물으시면서 아버지는 너를 조선에 보내자고 결심하였다,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 네가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다,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있는가 하는걸 체험해보아라, 그러면 네가 할바를 잘 알게 될것이라고 근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지원의 뜻이 어린 자신의 기대와 나라의 독립을 그처럼 갈망하는 온 민족의 념원을 담아 하시는 말씀이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몇백리 무인지경을 지나야 하고 낮에도 호랑이가 다닌다는 험산준령들이 겹쌓인 그 멀고먼 눈보라천리길로 12살밖에 안되는 어리신 아드님을 홀로 떠나보내신다는것이 놀라워 가슴이 저려 나시였다.

하지만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장차 혁명의 길에 나서실 아드님이시기에 고난과 시련속에서 담을 키우고 강한 의지를 벼려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말없이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따르시였다.

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조국을 잘 알고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참다운 애국자가 되지 않고서는 참다운 혁명가가 될수 없다고 하신 아버님의 말씀을 깊이 명심하시고 머나먼 천리길을 떠나실것을 결심하시였다.

아침부터 눈보라가 일고 바람이 사납게 불던 주체12(1923)년 3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이날 압록강가에서 아드님을 바래우시는 부모님들의 눈가에는 남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10대 초엽의 어린 자식을 두 나라 지경을 넘어 천리길에 보호자도 없이 내세운다는것은 보통의 뜻과 의지가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대용단이였다.

나라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밝은 래일을 위해 김형직선생님께서 내리신 결단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시게 된 천리길은 선조들의 뼈가 묻혀있고 태를 묻은 자기 조국, 신음하는 겨레의 마음속으로 가는 길이였으며 장차 민족해방의 격전장으로 이어진 력사의 지름길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길의 한치한치를 조국과 민족을 안고 걸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셔야 하는 천리중 500리이상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험산준령이였다. 후창에서부터 강계에 이르는 길량옆의 수림들에는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길을 걸으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시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천리길에서 조선사람들이 비록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가 되여 어렵게 살지만 조상전래의 인정과 미풍량속만은 깨끗하게 간직한 참으로 선량하고 도덕적인 민족이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천리길에서 제일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받으신것은 4년전 아버님을 따라 중강에 가실 때까지만 해도 등잔불을 켜고 살던 강계시내에 전등불이 환하고 왜색이 짙어가는 거리풍경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운에 잠긴 조국의 모습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면서 자신을 조국에 내보내시며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절절하게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의 참뜻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팔도구를 떠나신지 열나흘만인 주체12(1923)년 3월 29일 해질무렵에 만경대고향집뜨락에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에 나오시여서도 보실수 있는 모든것, 체험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체험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시였다.

천리길을 걸어나오시여 창덕학교에서 배우신 조국에서의 두해, 이 기간은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조국과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더욱 가슴에 새긴 나날이였고 그 불행앞에서 굴함을 모르는 우리 인민의 정신력을 깊이 알게 한 귀중한 나날들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잊지 못하시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나에게 있어서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고 감회깊이 쓰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 14일간에 걸치는 력사의 천리길은 수령님께서 어린시절부터 얼마나 높은 뜻을 지니시고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땅을 되찾을 굳은 맹세를 안고 혁명의 길을 걸어오시였는가를 보여주는 불멸의 혁명로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