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민족의 재부-대성동고구려무덤떼

 2023.11.7.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는 넓은 령토와 발전된 문화를 가진 강대한 나라였으며 고구려인민들은 매우 용감하고 애국심이 강하였습니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수준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김정일전집》 제8권 234페지)

고구려의 발전된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들가운데는 대성동고구려무덤떼도 있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는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산의 국사봉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산기슭에 있는데 면적은 약 1km2정도이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의 주변에는 안학궁터와 대성산성, 청암동토성, 남경유적을 비롯한 력사유적들이 많다.

이 무덤떼는 2004년~2010년기간에 발굴되였다.

여기에는 돌곽흙무덤과 돌칸흙무덤이 30여기 있다.

돌곽흙무덤은 막돌로 돌곽을 만든 다음 흙으로 봉토를 한 무덤인데 고구려의 이른시기에 많이 쓰이였다.

돌칸흙무덤은 돌로 무덤칸을 만들고 그우에 흙을 쌓은 무덤인데 2세기경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의 돌칸흙무덤들가운데는 주검칸과 무덤길이 따로 없이 길게 련결되여있는 무덤, 무덤길이 한쪽으로 치우친 무덤들과 무덤길이 중심에 있는 무덤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그리고 주검칸 내부에 관대가 1개만 있는것과 2~3개가 있는것도 있다.

이것은 대성동고구려무덤떼가 비교적 오랜 기간 쓰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돌칸흙무덤들가운데서 34호무덤은 4세기경에 축조된 벽화무덤인데 안칸의 서쪽, 북쪽, 남쪽벽면은 심히 파괴되여 벽화흔적을 겨우 찾아볼수 있는 정도이고 동쪽벽에만 벽화의 일부가 남아있다.

동쪽벽의 벽화는 청룡으로 인정되는데 형태와 구도, 색조에서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사신무덤의 청룡그림을 련상시킨다.

이 벽화는 고구려의 우수한 회화술을 보여준다.

대성동무덤떼에서는 금귀걸이, 금줄을 비롯한 귀금속유물과 세잎무늬고리자루칼장식품, 쇠거울, 쇠칼, 관고리, 관장식품, 관못, 꺾쇠 등 많은 금속유물들이 발굴되였다.

금귀걸이는 7호무덤의 동쪽무덤칸에서 나왔다. 7호무덤은 하나의 무덤무지안에 3개의 주검칸이 있는 형식이다.

금귀걸이의 길이는 2.67cm이고 무게는 9.87g이며 굵은 고리식(태환식)의 기본고리와 드림장식, 그것을 이어주는 련결고리로 이루어져있다. 드림장식은 구형중간장식과 주산알형장식, 원추형장식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구형중간장식의 웃면과 아래면에는 직경이 0.15~0.2mm정도 되는 미세한 금알들로 루금장식을 하였고 옆면에는 넝쿨무늬가 새겨져있다.

금귀걸이는 그 루금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금귀걸이
사진. 금귀걸이

금줄은 3호무덤의 동쪽관대 북쪽끝부분에서 발굴되였다.

이 금줄은 단조를 하여 만든것으로 보아지며 표면에 무늬까지 새겼다.

금장식품은 34호무덤에서 4점 나왔다.

그중 3점은 가운데부분은 불룩하고 량끝이 좁은 관모양인데 구멍직경은 0.1mm이다. 이것은 목걸이의 부분품으로 보고있다.

다른 하나는 6면체모양으로 된 장식품인데 굵기가 1mm인 금줄로 만든 직경 3.2mm정도의 원고리 6개를 바른6면체모양으로 붙여놓은것이다. 이런 유물은 지난 시기 고구려나 신라, 가야의 귀걸이들에서 중간장식으로 리용된 실례가 있다.

34호무덤에서는 고리자루칼장식품이 2개체분 나왔는데 형태는 같고 크기만 다르다.

고리자루칼장식품유물은 비교적형태가 잘 남아있는데 칼자루끝의 타원형의 고리안에는 3잎무늬장식이 있다. 그리고 자루와의 련결부, 아구리부분에는 납작한 타원형의 은판고리들이 있다.

고리자루칼장식유물은 지금까지 가야나 신라무덤들에서는 많이 나왔는데 이런 유물이 나온 신라나 가야의 무덤들은 다 5세기초 이후에 해당된다는 사실은 오늘 학계의 정설로 인정되고있다.

그러므로 4세기경에 해당되는 상대적으로 이른시기의 유물이 고구려유적에서 발견된것은 이런 장식물이 붙은 고리자루긴칼이 고구려에서 먼저 발생하여 고구려의 삼국통일을 위한 남방진출과 함께 가야나 신라에 전해졌다고 볼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주고있다.

이밖에도 대성동일대의 고구려무덤들에서는 접시, 보시기, 시루, 병, 잔을 비롯한 적지 않은 질그릇들과 여러개의 기와쪼각들이 알려졌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은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를 과학적으로 밝히는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에서 여러가지 종류와 형식의 무덤들이 발굴된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일찍부터 평양에 진출하여 발전된 문화를 창조하였으며 평양이 고조선시기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시기에도 문화발전의 중심지였다는것을 실증하여준다.

또한 금귀걸이를 비롯한 여러가지 금속공예품들은 고구려문화의 높은 발전수준과 삼국시기 문화발전에서 고구려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대성동고구려무덤떼는 다양한 무덤구조형식과 무덤벽화, 귀금속공예품들을 비롯한 유물들로 하여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를 연구하는데서 귀중한 유적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