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 박사 김홍일
2023.4.2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없이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와 덕망으로 하여 진보적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고계신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세계적인 위인이십니다.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세계의 수억만 혁명적인민들이 한결같이 우리 수령님을 인류가 낳은 위대한 영재로, 인류해방의 찬란한 태양으로 우러러보며 높이 칭송하고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33권 191페지)
세계진보적인민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어리여있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가운데는 꾸바의 한 녀성법률가가 받아안은 뜨거운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주체82(1993)년 12월 2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온 꾸바녀성법률가 깐델라리아 로드리게스 에르난데스를 몸소 만나주시였다.
깐델라리아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인1951년 5월 국제민주녀성련맹조사단 성원으로 우리 나라에 와서 미제의 살인귀적행위를 직접 목격하였으며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조선전쟁에 고용병을 보내려는 꾸바반동정부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렸다. 그 과정에 그는 처녀의 몸으로 여러번 체포되여 감옥생활도 하였지만 굴하지 않고 우리의 정의의 위업을 적극 지지성원하였다. 그는 정의와 진리, 평화를 귀중히 여기는 꾸바의 이름있는 녀성활동가인 동시에 국제적으로도 명망있는 인사였다.
그의 이런 소행을 귀중히 여기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40여년 세월이 흐른 주체82(1993)년 11월 5일 우리 나라를 방문한 그를 몸소 만나시여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오찬까지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당 일군들에게 그는 오늘까지 우리를 위하여 아주 훌륭한 일을 한 인사라고, 그는 혼자몸이니 꾸바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것이라고, 그러니 설도 함께 쇠고 다음해 1월에 우리 나라 비행기를 타고 떠나가게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체류기일을 두달정도 더 연장하고 평양시안의 대기념비적건축물들과 교육문화기관들, 묘향산, 개성, 신의주 등 우리 나라의 명승지들을 찾아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었던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한달전에 깐델라리아에게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고도 또다시 그를 몸가까이 부르신것이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친히 현관에까지 나오시여 깐델라리아를 맞아주시였으며 또다시 은정어린 오찬을 마련해주시였다.
그런데 오찬회가 한창 진행될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전승혁명사적관에 있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국제민주녀성련맹조사단의 활동정형을 찍은 사진에 깐델라리아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데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며칠전 전승혁명사적관을 돌아보던 깐델라리아가 해당 일군에게 그 사진에 자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념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시였다. 사실을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당 기관들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는 사진이 있을수 있으므로 그 사진을 지금 전승혁명사적관에 있는 사진과 바꾸어붙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 그는 감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가 얼핏 스친 말에서 한구석으로나마 섭섭해할 그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시였기때문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한 깐델라리아가 조선전쟁시기에 왔을 때 황해남도의 어느 부근에선가 온천욕을 하였는데 그곳물이 참 좋더라는 말을 한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가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나라의 이름난 온천을 기억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그를 거기에 데려다가 마음놓고 온천욕을 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옵고 돌아오면서 그는 자기에게 혁명전우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신 위대한 주석동지의 하늘같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한생을 살겠다고 뜨겁게 말하였다.
하기에 그는 이미 1951년도에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내가 본 조선》이라는 책을 쓴바 있지만 이번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자마자 또다시 방문기 《40년만에 다시 본 조선》을 집필하였다. 그가 쓴 도서는 조선어, 영어, 프랑스어, 중어, 로어, 일본어 등 세계 여러 나라말로 수천부씩 번역출판되여 세계혁명적인민들속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 좌담회를 열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인덕정치, 광폭정치에 대하여, 붉은기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를 고수해나가는 우리 인민의 자랑찬 투쟁에 대하여 널리 해설선전하였다.
다음해인 주체83(1994)년 6월 3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깐델라리아를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지난해 우리 나라에 왔다가서 쓴 글을 보았는데 사실을 그대로 실감있게 잘 썼다고, 그 글은 문학가라고도 할수 있고 법률가라고도 할수 있는 사람이 쓴것과 같이 잘 썼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말씀에 너무도 황송하여 어쩔줄을 모르던 그가 이번에 돌아가면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렬히 환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화제를 돌리시여 지난해에는 겨울에 왔기때문에 지방에 많이 가보지 못하였을것이라고, 이번에는 마음놓고 휴식하면서 그때 가보지 못한것들을 다 보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가 이번 기회에 백두산에 가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리자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백두산에는 아직 눈이 적지 않게 있고 춥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금강산과 묘향산에 가보라고, 앞으로 해마다 여름철에는 우리 나라에 와서 휴식하고 겨울철에는 꾸바에서 휴식하는것이 좋겠다고, 꾸바사람들은 더운 곳에서 살다보니 추운것을 견디여내기 힘들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날 오랜 시간에 걸쳐 국제분야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대답을 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헤여질 때 몸소 현관홀에까지 나오시여 그에게 자기 집에 온것처럼 생각하고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에 의하여 그는 여러날에 걸쳐 우리 나라의 명승지들을 찾아 즐겁고도 유쾌한 나날을 보낼수 있었으며 그 나날에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책 《사랑과 믿음의 정치》를 또다시 집필할수 있었다.
하기에 그는 꾸바의 정치가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던 그 나날들을 못잊어 추억하며 그이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위인중의 위인, 성인중의 대성인이시였다고 소리높이 격찬하였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은 비록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한번 맺은 의리를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하신분, 정의의 위업을 위하여 떨쳐나선 사람이라면 다함없는 사랑을 안겨주신 세계혁명적인민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인민들은 물론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세계의 수억만 혁명적인민들은 한결같이 우리 수령님을 인류가 낳은 위대한 영재로, 인류해방의 찬란한 태양으로 우러러보며 높이 칭송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