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닥치는대로 검거투옥, 학살하였으며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미쳐날뛰였습니다.》 (《
일제는 근 반세기에 걸쳐 조선에서 세계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잔악무도한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불구대천의 원쑤, 백년숙적이다.
일제가 조선강점전기간 조선인민의 초보적인 민족적권리와 정치적자유마저 모조리 빼앗고 갖은 비렬한 방법으로 그들의 반일투쟁을 가혹하게 탄압말살한 만행들가운데는 《데라우찌총독암살미수사건》도 있다.
《데라우찌총독암살미수사건》(일명 《105인사건》)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일제가 1911년 12월 조선의 반일운동자들이 압록강철교준공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안북도지방으로 가게 된 기회를 타서 데라우찌총독을 암살하려고 하였다는 구실로 600여명의 애국자들을 체포하고 105명에게 형을 가한 정치적모략극을 말한다.
1905년 11월 《을사5조약》의 강압날조로 조선의 국권을 빼앗고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의 조작으로 우리 나라의 국토마저 완전히 강탈한 일제는 악독한 식민지무단통치를 실시하고 갖은 폭압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 등 정치적자유의 자그마한 요소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온 나라, 온 민족이 일제야수들의 발굽밑에 짓밟히고 피눈물나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당하게 된 우리 인민은 분연히 떨쳐일어나 국내외 각지에서 나라를 찾기 위한 반일투쟁을 벌렸다. 특히 국외로 망명한 조선의 독립운동자들은 반일독립운동준비의 일환으로 광범한 대중을 반일애국투쟁에 계몽각성시키기 위한 애국문화운동과 함께 독립군 군사간부양성에 이바지할 무관학교 설립사업 등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독립운동을 힘있게 전개하였다.
조선인민의 반일기운이 날로 높아가는데 겁을 먹은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을 탄압할 큰 사건을 조작할 목적밑에 1911년 11월 황해도의 안악, 신천 등지에서 군자금모집활동을 벌리던 안중근의 사촌동생 안명근이 체포된 사건을 구실로 삼아 《안악사건》을 조작하고 서북조선일대의 조선인반일운동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였다.
그후 일제는 같은 해 12월 27일 데라우찌총독이 평안도지방으로 가게 된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 《데라우찌총독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성원들인 량기택, 리동휘, 리승훈 등 600여명의 애국자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투옥하였다. 그리고 이들가운데서 120여명을 경무총감부의 구류장에 가두어놓고 야만적인 고문을 들이댄 후 끝끝내 105명에게 형을 들씌우는 파쑈적폭거를 감행하였다.
《데라우찌총독암살미수사건》은 철두철미 일제가 조선인민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야망밑에 조선의 반일애국력량을 탄압하기 위한 구실로 써먹은 사기와 협잡으로 일관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정치적모략극, 날조품이였다.
총독부 경무총감부 경찰총감 및 헌병대사령관 아까시, 경감 구니또모, 와다나베의 지휘하에 감행된 이 사건은 체포한 사람들에 대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세기적고문을 동반하여 오도된 《자백서》를 받아낸것을 반증자료로 하여 각본이 짜진 사건이였다. 당시 영국 《타임스》기자 맥켄지는 일제의 고문을 당하면 《…(고문당하는 사람들이)감각이 없고 말할수도 없다. 가까스로 한마디만으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강요당하였는데 이 대답으로서 <자백하였다.>고 하였던것이다.》라고 하면서 놈들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또한 투옥된 당시의 《신민회》 회장 윤치호가 1차공판때에 기소내용은 모두 일제의 강요에 의한 거짓자백, 날조품이라고 폭로한 사실은 이 사건의 기만성을 낱낱이 폭로한 주요한 반증자료로 된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일본인변호사들도 《본 사건은 사건구성상 의심이 짙으며 재판 역시 편견적인것이다.》, 《…어떤 확실한 증거가 그들의 혐의사실을 실증하지 않는 한 그들이 총독암살모의를 하였다고는 말할수 없다.》라고 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똑바로 밝힐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일제가 갖은 위협공갈, 중세기적고문의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123명에 대한 공판놀음을 벌려 105명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지만 우리 인민의 반항이 두려워 6명에게만 형벌을 적용한 사실은 이 사건의 허위성, 불법무효성을 더욱 적라라하게 발가놓았다.
일본의 극우익보수세력들이 오늘까지도 침략과 략탈, 인간도살로 얼룩진 저들의 피비린내나는 과거사를 비단보자기로 가리워보려고 어리석게 날뛰고있지만 력사적사실은 일제야말로 제놈들의 침략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있지도 않은 《사건》까지 날조하여 타민족의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무자비하게 말살하는 인간교살자, 철천지원쑤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우리는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뀔수록 순간도 일제의 침략적본성을 잊지 말고 적들의 재침책동에 언제나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대하며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여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