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항일의 총적목표를 조국해방에 두시고

 2023.10.5.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북만에서 활동하건 동만에서 활동하건 크고작은 군사작전을 무수히 벌리면서도 그 총적인 지향점은 항상 조국진출과 조국해방이라는 목표에 두고 거기에 모든 력량을 집중하였습니다.》 (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제7권 217페지)

민족재생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은 항일의 총적목표를 민족해방위업실현에 두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신 영웅적장거로 하여 우리 민족사와 세계혁명사에 찬연히 빛나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진행된 항일혁명투쟁의 전 과정은 그이께서 조선민족해방의 구호를 순간도 흔들림없이 견결히 고수하고 끝까지 관철해온 투쟁의 력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항일투쟁의 총적목표로 제기하시고 그것을 시종일관 확고히 견지하시였다.

민족해방위업은 그 어떤 다른 민족도 대신해줄수 없는 민족자체의 위업이며 이것은 그 누구도 막을수 없는 민족의 신성한 자주적권리이다.

한때 《상해림정》의 리승만과 같은 숭미사대주의자들은 조선민족의 독립적해방능력을 믿지 않은데로부터 미국과 같은 유미렬강들의 등에 업혀 조선의 독립을 이루어보려는 허황한 꿈을 꾸었다.

이것은 본질상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렬강들에게 통채로 떠맡김으로써 우리 민족의 운명을 남의 손바닥우에 올려놓으려는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으로서 진정한 민족해방 그 자체를 부정하는것이였다.

우리 나라 민족주의운동에서도 조선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그처럼 갈망한 선각자들이였던 홍범도, 리동휘, 려운형 등이 이전 쏘련의 원동지방을 무대로 활동하던 기회에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와 그 방도를 탐색하기 위하여 레닌과 상봉한 사실이 있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방도를 철두철미 자기 인민, 자기 민족의 힘에 의거하여 모색하고 탐구하지 않고 먼저 승리한 다른 나라에 가서 찾으려 하는것은 비록 렬강들에게 청원하는 방법과 다를뿐이지 결코 옳바른 방책이 될수 없다는것은 이미 지난 력사가 보여준 진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선과 방침, 투쟁방략에 이르기까지 민족해방투쟁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철저히 독자적으로 사고하시고 확정하시였으며 민족해방의 구호관철에서 한치의 드팀도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무장투쟁을 통하여 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데 대한 로선은 바로 민족해방의 구호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6월 30일 조선혁명의 진로를 확정하는 중대한 회의인 카륜회의에서 오늘 조선민족이 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영영 쓰러지느냐 아니면 일어나 싸워 재생의 길을 찾느냐 하는 생사기로에 처하여있다고 하시면서 전민족이 궐기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면 해방의 서광을 맞이하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16일 명월구회의에서 유격전에 의한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민족배타주의자들은 항일무장투쟁의 첫 시기에 중국땅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혁명가들이 조국해방,민족독립의 구호를 들고 싸우는것은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에 모순된다고 하였는가 하면 그 구호가 《민생단》이 표방했던 《조선인에 의한 간도자치》의 반동적구호와 본질상 같다고 억지주장하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인민의 신성한 권리를 억누르고 말살하려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가들이 내세운 민족해방의 구호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전복하고 조국을 해방하며 우리 인민이 착취없고 압박없는 새 사회에서 참다운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하려는 목적으로부터 내놓은 구호이며 조선혁명가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곁방살이를 한다고 하여 자기 조국을 해방하고 자기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싸워야 할 신성한 권리마저 포기해야 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보시였다.

그리고 국제당이 1국1당제원칙을 내걸고 조선혁명가들이 민족해방의 구호를 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은 사실상 다른 나라 혁명가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 혁명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매우 그릇된 편협한 견해이며 조선혁명을 한갖 다른 큰 나라 혁명의 부속물로밖에 보지 않는 이런 견해를 절대로 용납할수 없는 행위라고 보시였다.

항일무장투쟁사에 주체24(1935)년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진행된 다홍왜회의가 력사적인 회의로 기록되게 된것은 이 회의에서 우리 인민의 항일혁명의 운명문제, 그 직접적담당자인 조선인민혁명군이 민족해방의 구호를 내리우느냐 아니면 더 높이 추켜드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론의되고 결정되였기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나선 투사들에게 있어서 민족해방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숙원이고 목표였으며 투쟁의 총적표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약10일간이나 련속되는 회의과정에 극단한 좌경분자들과 민족배타주의자들이 벌린 반《민생단》투쟁의 극좌성과 오유에 대하여, 조선혁명가들이 추켜들고있는 조선민족해방구호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평가에 대하여 과학적인 자료와 철의 론리로서 원칙적으로 강경히 분석비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해 3월에 진행된 요영구회의에서도 이러한 견해와 주장을 다시금 확고히 천명하시였으며 국제당에도 련락원을 파견하여 조선혁명가들의 명백한 립장을 옳바로 전달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대하여 《태평양전쟁사》는 《35년 3월에는 왕청현 요영구회의가 열리여 김일성의 지도하에 이 문제(일제의 대병력에 의한 〈토벌〉과 유격대와 인민의 련계를 끊기 위한 집단부락건설의 확대,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좌경적오유 등) 극복을 위한 첫 걸음이 내디디여지고 조선의 민족해방혁명을 위한 투쟁이 강조되였다. 이와 함께 일본군의 공격과 포위에 대처하기 위하여 두만강연안유격근거지들을 해산하고 조선인민혁명군이 북만, 남만, 조선 등의 광활한 지역에로 진출할 방침이 결정되였다.》라고 썼다.

이렇듯 민족의 운명, 혁명의 운명을 롱락하려던 자들의 책동을 저지시키고 조선혁명의 신성한 권리와 투쟁로선을 지켜내기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신념과 의지,견결한 투쟁으로 우리 혁명은 위기에서 구원되였으며 조선혁명가들은 민족해방의 구호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항일무장투쟁을 힘있게 전개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또한 1930년대 전반기와 후반기를 뚜렷이 구획짓고 항일혁명의 분수령을 이룬 주체25(1936)년 2월의 남호두회의가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력사에서 처음으로 주체를 완전히 확립한 뜻깊은 사변으로 되게 된것은 민족해방구호의 견결한 관철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굴의 투쟁의 결과였으며 그 밑바탕에는 바로 그 어떤 뢰성벽력에도 끄떡하지 않는 그이의 혁명적신념과 의지, 배짱이 놓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해방에 대한 이런 신념과 의지는 1930년대 후반기 국제당에서 강행한 모험적인 열하원정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신데서도 발현되였으며 1940년대 전반기 소부대활동시기와 국제련합군시기에 우리 혁명의 주체적로선을 변함없이 고수하신데서도 그대로 발휘되였다.

조선혁명가들의 역할에 대하여 다른 나라 출판물들도 《조선로동계급과 그의 전위대 공산주의자들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시기와 전쟁이 진행되던 전기간에 걸쳐 민족해방운동의 선두에 서있었다.

엄혹한 폭압과 테로가 지배하던 시기로 특징지어진 이 시기 조선로동계급과 그의 전위-공산주의자들의 령도적역할이 강화되였다는것을 확정적으로 말할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민족해방의 구호를 견결히 관철해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조종의 산 백두산을 혁명의 책원지로 정하고 그에 의거하여 민족해방성전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것이였다.

조선혁명가들은 다름아닌 조선혁명을 하고있으며 항일혁명의 총적목표는 조국땅에서 일제를 몰아내는데 있다, 때문에 전체 조선민족이 벌리는 독립성전의 봉화는 조국땅에서 추켜들어야 하며 그러자면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있는 조종의 산 백두산을 타고앉아 조국해방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항일혁명초기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간직하신 구상과 신념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안도의 수림속에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신것도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서였고 1930년대 전반기부터 언제나 백두산을 끼고돌면서 유격투쟁을 강화발전시킨것도 하루빨리 백두산으로 나가 민족해방성전의 봉화를 더욱 높이 추켜들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분수령을 이룬 남호두회의에서 백두산으로 나가야 한다는것을 확증하신것은 민족해방의 구호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파렬구를 낸 보천보전투와 무산지구진공작전도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구상하신것으로서 조선민족해방구호의 관철을 위한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에서 커다란 봉우리를 이루는 력사적사변으로, 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발전에서 특기할 사변으로 되였다.

참으로 우리 인민이 이룩한 조국해방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높이 추켜들고 변함없이 고수관철해온 조선민족해방구호의 빛나는 실현이였고 백두산을 우러르며 따르는 우리 인민의 애국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였다.

하기에 백두산은 식민지민족해방의 등불로, 상징으로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추호의 드팀도 없이 조선민족해방의 구호를 높이 추켜드시고 그 실현을 위한 성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민족적영웅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