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인민적방위전투의 빛나는 모범-마촌작전

 2020.11.13.

오늘 우리 인민은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전체 유격구인민이 굳게 뭉쳐 적들의 전대미문의 악랄한 《토벌》책동을 짓부시며 전인민적방위전투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마촌작전)에 대하여 다시금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전인민적방위전투의 빛나는 모범이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9권 443페지)

마촌작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주체22(1933)년 11월‐주체23(1934)년 2월까지 왕청현 소왕청마촌에서 근 90여일간 진행된 전투를 말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두만강유격근거지가 날로 공고화되고 항일무장투쟁이 급속히 확대발전하는데 질겁한 일제침략자들은 1933년 11월 17일부터 보병, 포병, 항공대의 협동하에 소왕청유격구에 대한 대규모적인 《동기토벌》을 개시하였다.

적들은 조선혁명의 참모부가 자리잡고있는 소왕청유격구에 공격의 예봉을 돌리고 이 일대에 관동군, 위만군, 경찰, 자위단으로 구성된 5 000여명의 대병력을 4개 방향에서 들이밀었다.

그때 소왕청에는 2개 중대의 유격대력량밖에 없었는데 그때까지 력사에는 1:100이라는 엄청나게 우세한 정규군과 맞서 유격전의 방법으로 고정된 지역을 어떤 방법으로 지켜냈는가 하는것을 가르쳐주는 군사교범도, 이름난 명장도 없었다.

더우기 일제가 지난 시기처럼 하나의 유격근거지에 력량을 집중해서 《토벌》하던 방법과는 달리 소왕청유격근거지에 공격의 예봉을 돌리면서 두만강연안 모든 유격구역을 동시에 《타격소멸》하려고 획책하는 조건에서 다른 현의 도움도 기대할수 없었다.

당시 대포와 비행기로 무장한 강적을 2개 중대의 력량으로 격파할수 있다고 믿는 락천가는 유격우에 단 한명도 없었다.

반일인민유격대와 유격구인민들앞에는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다가 죽느냐, 아니면 유격구를 포기하고 적에게 굴복하느냐 하는 두갈래의 길이 놓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때 그 어떤 군사전문가가 아니라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였으며 그들에게서 힘과 지혜를 얻으시고 승리의 비결을 유격구의 남녀로소가 다 동원되는 전민항전으로 되여야 한다고 보시였다.

인민이 싸운다면 싸우는것이고 인민이 이긴다면 이기는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인민의 의지에 달려있으며 인민을 얼마나 잘 동원시키는가에 달려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의 개척기에 인민과 더불어 산전수전을 다 겪으시며 운명을 같이하여오시는 과정에 심장으로 체득하시고 굳히신 철의 신념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2(1933)년 10월 왕청현 십리평회의에서 모든 유격구들에서 유격구방위전을 힘있게 벌리는 한편 이에 적배후교란작전을 옳게 배합할데 대한 전략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고 유격대와 전체 인민을 전민항전에로 불러일으키시여 적과의 대결에서 그 위력이 남김없이 발휘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전의 주도적력량인 반일인민유격대를 정치군사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제반 대책을 세우시는것과 함께 소왕청관내 전체 주민들에게 전민항전을 호소하시고 전민무장화와 근거지의 요새화를 빨리 다그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열정적인 호소와 정력적인 지도에 무한히 고무된 유격구인민들은 조직별, 계층별로 결전준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유격구의 전체 인민을 전민항전에로 불러일으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능숙한 조직적수완과 탁월한 지략과 전법으로 주도권을 틀어쥐시고 적들을 수세에 몰아넣어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묘한 유격전투형식과 전법들을 창조하시고 령활하게 활용하시여 유격구방위전에서의 승리를 보장하시였다.

유격구방위전에서 창조된 전투형식과 방법은 대표적으로 유리한 진지에 의거하여 적을 바싹 접근시키고 답새기는 집중화력타격, 불무지작탄전과 망원전, 저격수활동, 매복전과 야간습격전이였다.

적들은 만신창이 되여 허덕이면서도 검질기게 늘어붙어 장기전을 기도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사태에 대처하여 적들의 력량이 분산되였을 때에는 유격대가 힘을 합쳐 적들을 습격소멸하고 적들이 력량을 집결하여 쳐들어올 때에는 반대로 유격대가 력량을 분산하여 도처에서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피실격허》(강한 적은 피하고 약한 적은 친다는 뜻)의 전법으로 싸워야 전국을 전환시켜 근거지도 고수하고 부대의 력량도 보존할수 있다고 확신하시였다.

적들의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뚫고 적후에 진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량수천자의 위만군과 자위단 및 일본령사관 경찰병영을 습격소탕하시였으며 련이어 신남구에서 적자동차수송대를 기습하고 주체23(1934)년 2월에는 북봉오동, 사동 동골의 적을 치고 일제의 《토벌》거점의 하나인 왕청시가(대두천)에 대한 습격전투를 조직지휘하시였다.

결국 소왕청방어전투는 1:100이라는 엄청난 력량상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민항전을 조직하시고 정면방어와 배후교란전을 능숙하게 결합하여나가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령활무쌍한 지략에 의하여 유격대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되였다. 이것은 세계유격전쟁사에 금문자로 아로새겨질 경이적인 기적이였다.

유격구보위를 위한 군사활동을 전민항전으로 확고히 전환시키고 유격대와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를 최대한 발양시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는 전투의 나날들에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속에서 발휘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대중적영웅주의의 원천이였으며 매일매일의 전투승리의 결정적요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고 유격대와 유격구인민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유격구를 방위하는 엄혹한 투쟁속에서 유격구정신이 창조되였다.

유격구정신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려는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 유격구에 세워진 새 제도, 새 생활을 지켜내려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 군민이 일심동체가 되여 싸우게 한 원군애민정신, 모든 시련과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헤쳐나가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이였다.

1950년대 1211고지를 사수한 영웅전사들의 방위정신은 바로 1930년대에 탄생한 유격구정신에 뿌리를 두고있다.

오늘도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이 정신을 지니고 제국주의의 포위속에서 우리 식 사회주의를 빛내이며 힘차게 전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