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박미애
2020.5.2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한평생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 새겨져있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전설들가운데는 사연깊은 저금통장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하늘처럼 믿고 끝없이 사랑하시였으며 언제나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시였습니다.》
문학예술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던 주체61(1972)년 4월 어느날이였다.
새로 만든 영화의 작업필림을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옆에 앉아있는 조선영화문학창작사의 한 책임일군에게 창작사건설에 동원된 돌격대원들이 일을 많이 한다는데 그들에게 식료품이 제대로 공급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으심에 일군은 선뜻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창작사건설을 발기하시고 건설력량과 자재, 설비들까지 몸소 해결해주시며 건설이 최상의 수준에서 진행되도록 마음쓰시는것만도 가슴뜨거운데 돌격대원들의 식료품문제에 대하여서까지 알아보시니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은 눈굽이 뜨거워져 한동안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일군은 마음을 다잡고 식료품의 량이 좀 적어졌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아침 알아보니 지난 밤에도 그들이 새벽까지 큰 토량공사를 해제꼈다고,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간식을 제대로 주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자신의 저금통장에 저금한 생활비가 얼마나 있는가 알아보고 그것을 찾아다가 쓰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자그마한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느 일군들과 똑같은 생활비를 받으시며 검박하게 생활하시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요긴하게 쓰셔야 할 생활비까지도 창작사건설에 동원된 돌격대원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돌려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연깊은 생활비는 천만금의 재부에도 비길수 없는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의 결정체였다.
그날밤 건설장에서 사랑의 당과류를 받아안은 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은 차마 그것을 입에 대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만 삼키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을 심장속에 새기며 기적과 위훈을 세울 불타는 결의에 충만된 돌격대원들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었다.
며칠후 창작사의 책임일군은 당중앙위원회의 해당 부서로 오라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
건설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것이라고만 생각하고 급히 달려간 그는 뜻밖에도 한 일군이 내놓는 저금통장과 보자기에 싼 현금을 마주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일군들이 저금통장에 있는 금액의 절반만 찾아다준것을 아시고 몹시 나무람하시면서 다 찾아주라고 다시 이르시였던것이다.
창작사의 책임일군은 떨리는 두손으로 저금통장을 펼쳐들었다.
그것은 빈 저금통장이였다.
돌이켜보면 인류력사에는 위인들도 적지 않았고 인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들의 창작실을 꾸려주기 위하여 직접 시공주가 되여 세간난 자식의 집을 지어주듯 그렇듯 세심히 보살펴주고 더우기 그들을 위하여 생활비마저 고스란히 돌려준 위인의 일화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있다.
문학예술혁명을 구상하시고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창작사건설에 동원된 돌격대원들의 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그들을 위하여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돌려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그 저금통장에 어리여있었다.
문학예술부문의 모든 창작가, 예술인들은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위대한 장군님의 저금통장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하고 대를 이어 계속 전해가고있다.
문학예술혁명의 거세찬 불길을 지펴주시고 온갖 로고를 다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뜨겁고도 열렬한 사랑과 믿음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해 끝없이 이어지고있으며 그 사랑, 그 믿음을 안고 창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문예전사로서의 긍지와 영예를 안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오늘의 정면돌파전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