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이 이룩하여놓은 문화적재부가 많습니다.》 (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높은 문화발전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들가운데는 《천상렬차분야지도》도 있다.
현재 전해지고있는 《천상렬차분야지도》는 조선봉건왕조초기인 1395년에 제작된것이지만 그 원본인 《석각천문도》는 고구려때에 만든것이였다.
고구려에서는 일찍부터 천문대를 설치하고 일식과 월식, 류성, 혜성 등천체의 운동을 관측하였으며 이러한 천문관측자료들을 종합하여 돌에 천문도를 새겼다.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에 있었던 《석각천문도》는 5세기말~6세기초에만든것인데 세로 약 2m, 가로 약 1.2m정도 되는 돌판우에 별자리그림을 새겼다.
고구려의 《석각천문도》에는 당시 평양의 밤하늘에서 볼수 있었던 1 467개의 별들을 하나의 원안에 282개의 별자리들로 갈라서 표시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이것을 먹으로 종이에 찍어내서 별그림(항성표)을 만들었으며 천문을 관측할 때와 력서를 편찬할 때에 이 별그림을 기초자료로 리용하였다.
《석각천문도》에서는 북극을 원의 중심에 놓고 전체 천구를 돌판의 평면우에 투영하는 방법을 적용하였으며 모든 별들의 위치는 북극으로부터 극자리표의 크기에 따라 비교적 정확히 표시하였다. 또한 천구의 적도와 황도(해길)를 밝히고 28수를 원의 두리에 표시한 다음 그 경계점들을 북극과 련결시켜놓았다. 그리하여 천문관측자들이 매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방향과 위치를 쉽게 알아보며 모든 별들의 자리를 쉽게 그리고 정확히 알아낼수 있게 하였다. 《석각천문도》에는 또한 은하수를 그리고 춘분점과 추분점을 밝혀놓았으며 28수의 매개 기준별에 대한 좌표, 천구의 적도와 해길의 비탈각 등도 새겨놓았다.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는 천문학리론과 지식을 쉽게 파악하고 천문관측에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력서편찬과 농업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던 당시로서 아주 과학적이고 세밀한 천문도였다.
고구려말기에 이 《석각천문도》돌판에 종이를 대고 복사해두었던것이 조선봉건왕조초기에 발견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1395년에 여러 부를 제작한것이 지금까지 전하여지고있는 《천상렬차분야지도》이다.
《천상렬차분야지도》는 고구려의 《석각천문도》를 원본으로 하여 14세기 말에 약간 수정을 가하여 만든것으로써 그 크기는 길이 209.9㎝, 너비 122.8㎝정도 된다.
《천상렬차분야지도》를 만들면서 원본을 수정한 내용을 밝힌 설명문에 의하면 고구려천문도의 별자리들을 12.5°씩 돌려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립춘날의 태양위치가 해마다 조금씩 서쪽으로 옮겨져가는 현상때문에 고구려때의 별자리들과 차이가 생겼으므로 새로운 관측자료에 맞추었다는것을 의미한다.
《천상렬차분야지도》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별들의 위치를 빨리 알아내여 천문관측사업을 제때에 정확히 진행하는데서 매우 편리하고 귀중한 문건으로 되여있었다.
《〈천상렬차분야지도〉는 우리 나라의 오랜 문화유산의 하나입니다. 현재 전해지고있는것은 1395년에 제작된것이지만 그 원본인 〈석각천문도〉는 고구려때에 만든것으로서 평양성에 있었습니다.》 (
그러시면서 고구려때에 벌써 우리 선조들은 구면상에 보이는 별들을 한개 평면에 투영하는 정확한 투영법을 사용하였다고 하시면서 이 천문도에는 별뿐아니라 황도, 적도, 은하와 같은 그때 당시 도달하였던 우주에 대한 리론도 기록되여있다고 하시였다.
참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된 천문도의 하나인 고구려의 《석각천문도》와 그것을 대본으로 하여 제작된 《천상렬차분야지도》는 중세시기 우리 나라 천문학의 높은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천문학사연구에서도 가치있는 귀중한 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