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길남
2020.4.29.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력,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인민, 시대와 혁명앞에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가장 걸출한 수령, 희세의 정치원로이시다.》
우리 당이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고있는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1월 어느날 아직 날이 채 밝기 전인 이른 새벽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군수공장을 찾아 떠나시였다.
그 공장으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나라의 국방력강화를 위하여 품들여 꾸려놓으시여 정규무력의 강화발전과 전쟁승리에 기여하고있는 군수공장의 하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가실 당시 공장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로 북방으로 소개했다가 돌아온지 며칠 안되여 아직 전개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중나온 공장일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고 어서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갱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소개지에서 갓 돌아온 공장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고 수령님을 모실만 한 방 하나 변변한것이 없었다. 그래서 공장을 다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석수떨어지는 축축하고 누기진 갱도안에서 일군들과 마주앉으시여 공장실태를 료해하시였다.
모든것이 부족한 형편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해하고있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이 나갈 앞길을 하나하나 밝혀주시면서 그중에서도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부족한 간부문제이라고, 혁명의 지휘성원들인 민족간부문제는 나라의 만년대계와 관련한 사활적인 문제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실지로 당장 공장을 전개하고 생산을 하자고 해도 그렇고 앞으로 생산을 정상화하고 규모를 확대하자고 해도 그것을 맡아할 기술자들과 초급일군들이 부족한것이 제일 난문제였다. 그렇다고 당장 어디서 그 많은 일군들을 데려올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어려운 전시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공장책임일군들은 막연한 심정으로 한숨만 쉬고있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확고한 어조로 전쟁형편에서는 관리간부들과 기술자, 기능공들도 공장자체로 양성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그 방도는 공장에 공장대학을 내오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한명의 로력이 긴장한 때 대학을 내온다는것이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벙벙해 두눈만 껌벅거리고있는 공장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에 공장대학을 내오면 로동자들이 낮에는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고 밤에는 학교에서 얼마든지 공부할수 있다고, 이렇게 하면 생산에서 리탈함이 없이 누구나 다 배울수 있고 훌륭한 간부들로 될수 있을것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 일군들속에서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공부는 응당 대학에 가서야 하는것으로만 생각해왔던 일군들은 정말 그렇게 하면 꿩먹고 알먹는 격이라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물론 전쟁을 하고있는 어려운 형편에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관리간부들과 기술인재들을 길러내야 더 좋은 무기를 만들수 있고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길수 있으며 전쟁이 끝난 다음 파괴된 경제를 빨리 복구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공장에서 일하던 동무들을 전선에서 소환해주겠으니 평양공업대학(당시) 분교형식으로 일하면서 배울수 있는 대학을 내와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민족간부육성에서 공장대학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절감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한달후인 2월 17일 깊은 한밤에 또다시 이 공장을 찾아가시였다.
그사이 공장에서는 적들이 무참하게 파괴하고 3년이 걸려도 복구할수 없다고 한것을 단 14일동안에 원상복구를 해놓는 기적을 이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해 만족하게 평가해주시면서 앞으로 이 공장을 우리 나라 병기공업발전에 필요한 기술자, 전문가들을 키워내는 기지로 꾸릴데 대한 원대한 구상을 밝혀주시였다. 당면하여 공장에서는 평양공업대학 분교로 공장대학을 내오고 전쟁의 불길속에서 단련된 우수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훌륭한 민족기술간부로 키워야 한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대학을 운영하는데서 걸리고있는 실천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을 다녀가신 후 전국의 모든 대학들에도 교원들이 부족하였지만 전선에서 소환한 교원들을 이 공장에 먼저 파견해주시여 공장대학창설에서 제일 큰 애로로 되고있던 교원문제를 풀어주시였으며 거듭되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40(1951)년 7월 15일 마침내 이 공장에서는 대학개교식이 진행되였으며 거기에서 키워낸 기술인재들로 무기생산을 늘이여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하게 되였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되는 가장 우월한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의 싹은 이렇게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화의 불길속에서 움터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헌신적인 로고에 의하여 태여난 일하면서 배우는 우리 식의 교육체계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더욱 확대강화되였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는 원격교육체계로 발전하여 전민과학기술인재화실현을 위한 믿음직한 담보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