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우리 민족의 지혜와 재능이 깃든 천문관계유적과 유물

 2019.10.2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고조선시기부터 천문기상을 연구하여 농업에 리용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85권 420페지)

우리 나라에서 천문학연구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다. 첫 고대국가였던 단군조선시기에 사람들은 참성단을 세우고 천체를 관측하였으며 그후 고구려를 비롯한 초기봉건국가들과 발해 및 후기신라,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천문기상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첨성대를 세우고 우수한 관측기구들을 제작, 리용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정상적으로 관측하였다.

여기에서는 고조선으로부터 조선봉건왕조에 이르는 력사적시기에 조선민족의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수많은 천문관계유적과 유물들가운데서 그 일부를 소개한다.


천문관계유적

화성동제단

화성동제단
화성동제단 전경

화성동제단은 지금으로부터 5 000년전에 건설되였다. 화성동제단은 평양시 룡성구역 화성동 당모루에 위치하고있다. 화성동제단은 고조선시기에 건설되여 단군을 제사지내던 시설인 동시에 천문현상을 관측하던 관측대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참성단이라고도 한다.

참성단으로도 리용된 제단의 구역은 남북 18m, 동서 20m이며 네면은 정확히 동, 서, 남, 북방향으로 놓여있다.

마니산참성단

마니산참성단은 강화도의 마니산에 위치하고있다.

마니산참성단
마니산참성단
마니산참성단 전경

이 참성단은 고대시기에 건설된것으로 전해진다. 마니산참성단의 기반은 원형이며 몸체는 정방형인데 한변의 길이는 약 4.5m이고. 높이는 약 3m이다. 이 참성단에서는 하늘에 대한 제사와 함께 별들에 대한 관측도 진행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여기에서 천문관측을 하였다는 기록이 《성변후단자》라는 관측기록부에 남아있다.

고구려첨성대터

고구려첨성대터
고구려첨성대터 전경

첨성대터는 고구려시기의 왕궁이였던 안학궁서문터에서 서쪽으로 약 2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이 유적은 주체98(2009)년에 발굴되였다. 고구려첨성대터는 약 380m2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였다. 유적은 평면이 4각형 기초시설과 그 주변의 7각형보조시설로 이루어져있다. 4각형기초의 규모는 웃면 한변의 길이가 약 6.7~7.5m, 깊이 1.35m 정도이다. 4각형의 기초시설주위의 바깥변두리를 따라가면서 직경이 약 20.6m되는 7각형의 보조시설이 있다. 7각형보조시설은 발굴당시 1~3단정도 남아있었다.

평양첨성대

평양첨성대는 고구려시기 평양성안에 있었다. 이 첨성대와 관련한 자료는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18세기 중엽에 출판된 《평양전도》에서 찾아볼수 있다. 현재 그 위치는 남산재의 초영대(정각)부근으로 비정되고있다.

경주첨성대

경주첨성대
경주첨성대 전경

경주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하고있다. 이 첨성대는 7세기 전반기에 건설되였다.

4각형의 기단 한변의 길이는 약 5m이며 그 매변은 동, 서, 남, 북방위를 정확히 가리키고있다. 몸체는 360여개의 화강석으로 쌓았으며 높이는 약 9m이다. 몸체의 13번째단과 15번째단사이에는 방향이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남향으로 규격이 약 95×95㎝인 구멍이 있다.

첨성대의 내부는 12번째단까지 흙이 채워졌다. 몸체의 맨꼭대기에는 《井자》모양의 돌귀틀이 얹혀있는데 여기에 관측기구들을 설치하고 관측을 진행하였다.

개성첨성대

개성첨성대
개성첨성대 전경

개성첨성대는 고려왕궁터인 만월대의 서쪽에 있다. 그곳에는 3m×3m인 부지에 80㎝×85㎝되는 네모난 기초돌 5개가 사방 네모부분과 그가운데에 놓여있고 그 우에 자름면 한변의 길이가 약 38㎝이고 높이가 약 2.45m인 기둥돌 5개가 세워져있다. 그 우에 돌로 된 5개의 보와 그것들사이에 6개의 돌판들이 있는데 그것이 2층바닥을 이루고있다. 기둥들은 기묘하게 사개를 짜서 견고하게 세워졌다. 개성천문대는 고려천문학의 발전모습을 실물로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관천대

관천대
관천대

관천대는 1688년에 세워졌다.

한성의 창경궁안에 세웠는데 일명 소간의 또는 첨성대라고도 불렀다.

창경궁관천대의 높이는 3.46m이며 화강석으로 축조되였다.

오르내리는 돌계단이 있고 뒤면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다. 중심에는 소간의를 설치하였던 받침대가 있다.






천문관측기구

대간의

대간의는 1432년에 정초(?~1434년), 정린지(1396~1478), 리천(1376~1451년), 장영실 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나무로 이 기구를 만들어 북극의 관측지점의 위도를 측정하였으며 그후 동으로 보다 정교하게 만들었다. 이 기구는 주로 야외에서 적도의 자리표와 지평자리표, 시간을 재는데 쓰이였다.

소간의

소간의는 1443년에 리천, 정초, 정린지 등이 만들었다. 당시에 만든 소간의 유물은 전해지는것이 없고 기록으로 전하여진다.

일성정시의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를 관측하며 밤에는 별을 관측하여 시간을 결정하는 독특한 천문시계였다. 1437년에 동으로 만들었다. 구조는 두개의 백각환이 하나의 받침대우에 붙어있다. 20세기초까지 이 유물이 전하여졌으나 현재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지 않다.

일성정시의
일성정시의

혼의 (선기옥형)

혼의는 15세기에 경복궁의 경회루주변에 꾸려진 관측장에 설치되여 천체에 대한 관측에 리용되였다. 혼의는 두개의 고리로 된 환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적도에 고정시킨 적도환이며 다른 환은 적경환 또는 사유환이다. 적경환은 축주위를 돌게 되는데 거기에는 별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는 장치인 규관(또는 망통)이 붙어있다. 현재 이 관측기구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주일구

현주일구는 태양에 의한 그림자로 시간을 알아내는 기구이다. 이 기구는 1437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만든것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봉건왕조 중엽에 만들어진것이 전하여진다. 유물은 추와 추를 달아맨 실을 고정시키는 기둥이 없는 상태이며 동으로 만들어진것이다. 휴대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시반에는 3개의 원이 그려져있는데 맨 안쪽의 원은 12시간으로 등분되였고 가운데 원은 24시간으로, 맨 바깥원은 가운데 등분간격을 4개로 나누어 15분에 해당하게 등분한 눈금이 새겨져있다.

정남일구

정남일구는 1437년에 만들어졌다. 이때에 만들어진 기구는 전해지지 않으나 《세종실록》과 《증보문헌비고》에 정남일구와 관련한 자료가 있다.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15세기 전반기에 장영실, 리천 등이 제작하여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진 대표적인 해시계, 력서이다. 동 또는 놋으로 만들었다. 이 기구의 구조는 반구형밑바닥에 표대가 세워져있고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려져있다. 이 기구에 세워진 표대그림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과 절기를 알수 있게 한다. 15세기에 이 기구는 한성의 혜정교와 종묘앞에 설치되였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앙부일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후에 만들어진 앙부일구들은 원리와 구조에서 15세기의것과 같으나 관측지점에서 북극고도값을 주었으며 매우 정교한데서 차이가 있다. 17세기이후에 만들어진 일부 앙부일구들이 전하여진다.

앙부일구
17세기 후반기(직경 35.2㎝)
앙부일구
18세기이후(직경 23.7㎝)

한편 조선봉건왕조후반기에는 돌이나 나무, 또는 상아 등 여러가지 재료로 만든 휴대용앙부일구도 있었다.

혼천의

이 기구는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선기옥형이라고도 한다, 1433년에 만들어졌다. 그후 여러차례 개조되였는데 임진조국전쟁시기에 류실되였다. 그후 1657년 5월에 다시 혼천의를 제작하였고 1664년에 개조되였다. 1669년에는 관상감교수 송이호 등이 개작하여 추와 치차, 자명종에 의하여 동작하는 기계식 자동혼천의가 나왔다. 이 혼천의는 한복판에는 직경이 9㎝인 천구의가 있고 그 둘레에는 12궁, 24기, 28숙 그리고 360°가 표시되여있다. 전체의 높이는 98㎝이다. 이 기구로는 19종의 천문학적량들을 잴수 있다고 한다.


혼천의
혼천의

혼평의

이 기구는 박규수(1807~1876년)가 만들었다. 기구는 세종왕때에 만들어졌던 일성정의시와 비슷하다. 이 기구는 낮에는 태양에 의하여 밤에는 별에 의하여 시간을 측정하는데 리용되였다. 기구는 바깥테두리, 동으로 된 돌아가는 별그림판, 규형이라고 하는 방향자, 다침대로 이루어졌다.

기구의 높이는 77.5㎝이며 지지대에는 직경이 30㎝인 별그림판이 360°회전할수 있게 설치되였다. 별그림의 한쪽면은 북반구이고 다른면은 남반구이다. 박규수는 혼평의와 이름이 비슷한 평혼의도 만들었다.


적도의

《성경》에 그려진 적도의
《성경》에 그려진 적도의

적도의는 1860년대에 남병길이 저작한 도서《성경》에서 찾아볼수 있다. 이 기구는 눈으로 별을 조준하여 그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적도의는 1°간격으로 눈금이 새겨진 3개의 자 즉 자오환, 적도환, 사유환과 받침틀로 되여있다.

앞에서 본 일부 천문관계유적과 유물들은 단군조선을 거쳐 세나라시기와 발해, 후기신라시기,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로 오면서 천문관측시설과 관측기구들이 더욱 개선되고 발전되여갔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상의 일부 천문관계유적과 유물을 통해서도 조선민족이 천문학연구에서도 많은 성과를 이룩한 지혜롭고 재능있는 문명한 민족이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