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유물을 잘 보존관리하여야 인민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줄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우수한 민족전통을 계승발전시켜나갈수 있습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재부들이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는 고려시기에 세운 령통사도 있다.
령통사는 유구한 우리 민족사에서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이름있는 절간의 하나이다.
고려의 건국자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내세우고 국가성립초기부터 왕궁건설과 함께 절간건설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였다. 그리하여 고려가 성립된지 1년만인 919년에만 하여도 법왕사, 왕륜사, 내제석원 등 무려 10개의 절간들이 건설되게 되였다.
령통사도 고려초기 숭불정책의 력사적배경속에서 세워진 절간들중의 하나이다.
령통사는 고려시기 천태종불교철학의 창시자인 의천의 사적이 있는것으로 하여 국내외력사학자들과 종교계 및 사회계인사들의 관심을 모으고있는 절이다.
* 의천(1055-1101)은 고려 문종왕의 넷째 아들로 태여나 11살에 중이 되여 령통사에 들어가서 불교공부를 하였다. 31살때 이웃나라에 가서 화엄종과 천태종불학을 연구하고 돌아와 천태종불교를 창시하였다.
령통사터는 개성시 룡흥동 오관산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령통사의 북쪽은 5개의 기묘한 봉우리를 가진 오관산과 애기봉의 기암절벽으로 막혀있고 동쪽에는 문수봉(일명 시루봉), 서쪽에는 재봉이라는 높지 않은 산이 솟아있다.
이처럼 령통사터는 북쪽과 동쪽, 서쪽은 산줄기들로 막혀있고 남쪽은 얼마간 트인 편이지만 그곳 역시 낮은 산들로 막혀있다.
절간은 오래전에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으로 인하여 불에 타 페허로 되여 그 터와 무덤 그리고 비석들만이 남아있다.
령통사터는 크게 입구구역, 마당구역, 기본가람구역, 의천의 묘실구역과 부도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마당구역의 서쪽에 당간지주, 동쪽에 대각국사비가 세워져있으며 기본가람구역의 서쪽구획에는 동서로 나란히 선 1기의 5층돌탑과 2기의 3층돌탑이 있으며 기단우에 놓인 4개의 건축지들은 회랑으로 둘러싸여있다. 의천의 묘실구역과 부도구역은 절의 동북모서리와 서북모서리에 위치하고있다.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니신
령통사에 대한 발굴은 주체86(1997)년 현지조사가 진행된데 기초하여 주체87(1998)년과 주체88(1999)년 두해에 걸쳐 진행되였다.
발굴과정에 령통사터에서는 기와, 자기, 벽돌, 청동거울, 도끼, 가위, 못, 치미, 잡상, 쇠부처 등 수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였다.
그리하여 령통사준공식이 주체94(2005)년 10월 31일 현지에서 력사학자들과 종교인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진행되게 되였으며 고려천태종의 성지로 자기모습을 다시금 드러내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