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열렬한 사랑으로 안아오신 위대한 전승

 2015.9.24.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50년대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이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단독으로 맞서싸운 류례없이 간고한 싸움이였다. 그러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세계의 면전에서 미국놈들의 거만한 코대를 여지없이 꺾어놓고 조선사람의 기개와 존엄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하다면 세상사람들 모두가 경탄하여마지 않는 위대한 승리, 그 세기적인 기적의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이 물음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대답한다. 위대한 전승의 근본요인은 바로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열화와 같은 사랑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이라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교시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우리 수령님의 천품입니다.》(《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0권 50페지)

흔히 사람들은 전쟁승리의 요인에 대하여 론의할 때면 병력수와 무장장비의 수준, 전선의 수요를 충족시켜줄수 있는 경제력 등에 대하여 먼저 꼽는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전체 군대와 인민을 하나로 묶어세워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타승하는 력사의 기적을 안아오시였다.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은 절대적인것이였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언제나 승리한다는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투쟁의 전 행정에서 우리 인민의 힘을 굳게 믿으시였다.

미제가 리승만매국역도를 사촉하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날에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라고 하시며 호호탕탕 웃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담대한 모습에도, 준엄한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가증스러운 미제의 고용간첩도당이 위대한 수령님께 무엄하게도 최고사령부가 압록강을 건너가야 하지 않겠는가고 제기할 때 비겁한자들은 갈테면 가라, 나는 우리 군대와 인민과 함께 반드시 이 땅에서 미국놈들을 때려부실것이라고 단호하게 언명하신 수령님의 그 서리발치는 모습에도 언제나 소박하면서도 근면하고 용감한 우리 인민에 대한 절대불변의 믿음이 어려있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저 하늘의 태양에도 비길수 없는 열화와 같은것이였다.

모든것이 부족한 전화의 나날에 무상치료제를 실시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신 이야기, 부모잃은 전재고아들을 국가의 부담으로 키워주도록 하시고 나라의 이르는곳마다에 학원을 세워주신 이야기, 인민군전사들을 위하여 야전휴양소를 내오도록 하신 이야기를 비롯하여 전쟁전기간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만 전하자고 하여도 끝이 없다.

미제의 무모한 전쟁확대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조국과 인민앞에 닥쳐왔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끝난지 두달밖에 되지 않던 주체40(1951)년 2월초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 복구건설사업을 맡은 어느 한 일군과 시내를 돌아보시다가 당시 창전네거리부근에 자리잡고있던 사창장마당에 들리시여 시민들의 생활을 료해하시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이 때없이 날아들어 무차별적인 폭격을 들이대군하던 그때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마당에 들리는것은 위험한 일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미처 만류할사이도 없이 장마당쪽으로 벌써 걸음을 옮기시였다.

자그마한 식료품상점앞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료품을 정리하는데 열중하고있던 상점주인에게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잘 팔리는가고 물으시였다. 주인은 여느 손님들에게 하던 습관대로 《예, 무엇을 사시렵니까?》하고 긴 대답을 하면서 머리를 돌리였다.

순간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 너무도 놀라 량손에 도라지를 한웅큼씩 쥔채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그는 한동안 그러고 서있다가 도라지를 집어던지고 황황히 상점앞으로 나와 두손을 마주잡으며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그의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콩나물과 록두나물, 두부, 고사리, 도라지를 비롯한 식료품들의 값을 일일이 알아보시고나서 그것을 어디서 구해다 파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운 인품에 이끌리여 어느덧 어려움을 다 잊은 상점주인은 나물과 두부는 시주변에 사는 농민들이 가지고오는것을 사서 파는데 세금을 물고나면 남는것이 별로 없다는것과 그런데도 상점문을 닫으라고 매일같이 독촉을 하기때문에 장사하기가 어렵다는것까지 서슴없이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다 들어주신 다음 부드러운 음성으로 《농민들이 짬짬이 산채와 나물들을 가져다팔아 용돈이라도 얻어쓰니 좋고 시민들은 부식물을 해결하니 좋은데 문을 닫으라고 한단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러시고는 많이 팔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장마당안을 유심히 살피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곳에 이르시여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보시는 곳에서는 웬 할머니가 조그마한 화독우에 철판을 올려놓고 지짐을 지져 팔고있었다.

한동안 멀리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앞으로 조용히 다가서시며 무슨 지짐을 파는가고 물으시였다.

자기앞에 다가서신분을 알아보지 못한 할머니는 지짐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여느 사람들에게 하듯이 《록두지짐이웨다.》라고 말씀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를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그외에 또 무슨 지짐을 팔며 돼지고기는 어디서 구해서 지짐에 넣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다시 이렇게 물으시였을 때에야 그 할머니는 물으시는 품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던지 슬며시 고개를 들다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일어나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의 두손을 잡으시고 앉혀주시며 집안의 살림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어주시고 그가 올리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시였다.

두 아들은 모두 인민군대에 나가고 며느리는 미국놈들의 폭격에 잘못되였으며 혼자서 두 손자애들을 키운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게 된다고, 그때에는 전선에 나갔던 아들들도 돌아와 잘살게 될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따뜻이 위로해주시고서야 그 자리를 뜨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 장마당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보시며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서야 그곳을 뜨시였다.

그날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즘 일부 일군들이 폭격이 심하다고 하면서 장마당을 없애버리려고 하는데 전쟁의 어려운 환경에서 시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장마당을 없앨것이 아니라 그것을 잘 리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때 일부 일군들은 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으로부터 인명피해를 막고 장사군들의 모리행위도 막기 위하여 장마당을 없애버리기로 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이러한 편협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며 폭격이 심하다고 이미 있는 시장들을 없앨것이 아니라 시내의 여러 산밑에 굴을 파서 지하시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인민들이 지하시장에서 마음놓고 필요한 상품을 팔고살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사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이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와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있던 그 준엄한 시기였고 세멘트 한그람, 나무 한대가 귀중하던 그 어려운 시기에 막대한 로력과 자재, 자금을 들여 지하에 시장을 건설할 생각은 누구나 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이것은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시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베푸실수 있는 숭고한 인민사랑이였다.

세월은 흘러 사람도 강산도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오늘도 평양시내의 곳곳에는 그때 지하시장으로 리용되던 갱도자리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처럼 우리 수령님최고사령관이기전에 우리 인민모두의 자애로운 친어버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인 믿음과 열렬한 사랑이 있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전선과 후방에서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며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전승의 날을 맞이하였던것이다.

인민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인 믿음과 열렬한 사랑!

이것이 20세기의 군사적기적, 위대한 전승을 안아온 근본요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