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시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추억

 2020.5.22.

우리 인민들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마음속에 오늘도 영생하고계시는 만민의 태양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생애를 감동깊이 전하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품의 하나인 시계에 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추억도 가슴뜨겁게 새겨져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우리 인민의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온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의 태양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22페지)

시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추억의 첫 페지에는 만경대고향집 이웃의 벽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시절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만경대에 나오시였을 때 삼촌어머니는 김형직선생님의 안부를 물으면서 만경대고향집이 전하는 시계에 대한 가슴아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만경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실 때 리보익할머니는 늘 집에 시계가 없는것을 한탄하시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물욕이 없는분이시였지만 남의 집에 걸려있는 벽시계만은 몹시 부러워하시였다. 그때 만경대고향집 이웃에 벽시계가 있는 집이 한집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 집 벽시계를 부러워하기 시작한것은 김형직선생님께서 숭실중학교를 다니실 때부터였다. 집에 시계가 없었으므로 할머니는 매번 쪽잠을 주무시다가 첫 새벽에 일어나 어림짐작으로 시간을 가늠하고는 서둘러 조반을 짓군 하시였다. 만경대에서 숭실중학교까지 30리길이니 조반을 일찍 짓지 않으면 지각을 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밥을 지어놓고도 등교시간이 되였는지 안되였는지 알수 없어 몇시간씩 잠을 못자고 부뚜막에서 동창만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면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뒤집에 가서도 주인을 깨우기 미안하여 뜨락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울타리밖에 쪼그리고앉아 시계종이 땡땡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리군 하시였다. 그러다가 시계종이 울리면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시간을 알려드리군 하시였다. 하지만 만경대고향집에서는 해방될 때까지 할머니가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벽시계를 끝내 사다 걸지 못하였다.

나라없던 그 세월 수난많은 이 나라 가정들의 축소판과도 같은 만경대고향집의 시계이야기는 너무도 소박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탄생하시여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우리 수령님의 유년시절을 감명깊게 전해주고있다.

시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추억속에는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받으신 시계에 대한 웅심깊은 사랑의 이야기도 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무송에서 학교에 다닐 때 아버님은 자신의 생일날에 시계를 사주시였는데 그때 자신께서는 처음으로 시계를 차게 되였다고 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어느날 병환에 계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거리구경을 가자고 하시면서 어리신 아드님을 데리고 집을 나서시였다.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시던 선생님께서 아드님과 함께 나들이를 떠난것은 전에 없는 일이였다.

그때 아버님의 팔을 끼고 거리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수령님께서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뜻밖에도 아드님의 손을 잡고 상점으로 들어가시여 마음에 드는 회중시계를 하나 고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중시계를 골라잡으시자 선생님께서는 시계의 값을 치르고나서 의미심장한 어조로 이제는 시계를 찰 때가 되였다고, 나라를 찾는 싸움에 나선 사람이 아껴야 할것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동지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라고 하시며 시간을 귀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주는 생일선물이니 잘 간수하라고 이르시였다.

회중시계를 생일선물로 사준지 두달도 못되여 김형직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시였다.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예감하시였기에 그때 벌써 시계와 함께 평생의 로고가 바쳐진 독립의 위업을 아드님께 넘겨주시였던것이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시계를 가지고 화성의숙에 가시여 거기서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시였으며 빨찌산시절에도 그 시계에 맞추어 매일매일의 일과를 집행하시였고 공격개시시간과 접선시간을 정할 때에도 그 시계를 기준으로 삼으시였다.

한생토록 시간을 귀중히 여기라고 주신 아버님의 생일선물인 시계는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품으로서 시간과 세월을 앞당겨 조국을 찾으시려는 그이의 혁명활동에 큰 도움으로 되였다.

시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남다른 추억들가운데서 가장 가슴뜨거운 이야기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과 영결하실 때 어머님의 손목에 채워서 보내신 사연깊은 시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숙은 일생동안 고생만 하다가 갔습니다. 일생동안 고생만 시키다가 보내는것이 너무도 가슴아파서 그와 영결할 때는 손목에 시계를 채워서 보냈습니다. 시계를 채워보낸다고 그가 한평생 나를 위해 바친 지성을 보상할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다고 그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덜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그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었습니다. 아무런 사연도 없는 보통시계라면 그런 궁리를 하지도 않았을것입니다. 그 시계가 사연이 깊은 시계였습니다.》 (김일성동지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계승본 176페지)

해방후 어느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보익할머님으로부터 돈을 좀 들여서라도 좋은 녀자시계를 하나 구할수 없겠는가 하는 부탁을 받으시였다.

한평생 벽시계조차 걸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할머님이 갑자기 녀자용시계를 찾는데다가 그것도 좋은것으로 구해달라시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녀자용시계를 사가지고 가시여 이 시계를 어디다 쓰려는가고 물으시니 할머니는 산에서 아무것도 없이 결혼을 했다는데 그게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고 산에서 온지도 퍼그나 되는데 이 할미가 상을 차려준게 있나 옷 한벌 해준게 있나, 그래서 시계라도 채워주려고 그랬다면서 정숙이가 시계를 차고다니는걸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였다.

이런 뜻깊은 사연이 깃든 손목시계였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김정숙어머님께서 뜻밖에 세상을 떠나시였을 때 어머님의 손목에 친히 그 시계를 채워서 보내시였던것이다.

이 세상에 시계가 생겨 전해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생애에 어려있는 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만민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는 감동깊은 이야기들이며 그것은 오늘의 정면돌파전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들의 가슴가슴을 세차게 적셔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