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박연에 생겨난 인간사랑의 위인전설

 2023.7.5.

위인에게 매혹된 인민은 언제나 위인을 칭송하는 전설들을 창조하는 법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하늘이 낸 전설적위인이십니다.》 (김정일전집》 제9권 141페지)

이 세상에 문자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향과 념원을 신기한 자연현상이나 특이한 생활세태에 담아 환상적으로 묘사한 가지가지의 전설들을 창조하며 살아왔다.

전설은 인민들속에서 창조되여 전해져내려오는 구전문학의 한 형태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나라에는 인민의 슬기와 재능, 기지가 넘치는 전설들이 수많이 창조되여 전해내려오고있다.

오늘날 인민의 명승지로 꾸려진 박연에도 개성의 자랑인 박연폭포와 황진이에 대한 전설을 비롯하여 수십개의 전설들이 전해지고있으며 로동당시대에 와서 뜨거운 인간사랑의 전설까지 전해져 그곳은 더욱 유명한 명소로 되였다.

박연은 개성의 북쪽에 위치하고있는데 거기에는 예로부터 손꼽히는 명승지로 알려진 3대명폭포의 하나인 박연폭포가 있다.

주체81(1992)년 5월 오랜 력사의 도시 개성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시안에 있는 력사유적들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해가 서산마루에 기우는 무렵 박연폭포에 이르시였다.

동행한 일군들은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한낮의 땡볕을 받으시며 성균관(당시)과 왕건왕릉, 경사급한 만월대의 옛터전까지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휴식을 하시도록 이미 폭포수아래에 휴식장소를 마련해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일군들에게 폭포에 올라가지 않고 여기서 쉬고갈바에야 개성에 무엇하러 왔겠는가, 전후에 내가 여길 와본 일이 있으니 모두 내뒤를 따라서라고 하시며 앞장에서 걸으시였다.

안내자로 함께 온 력사학자로부터 옛날 박진사가 달밤의 경치에 취하여 련못가에서 피리를 부니 불현듯 아름다운 녀인이 물속에서 나와 그 피리소리를 들었다는 유래로부터 박연폭포로 불리운다는 옛 전설을 흥미있게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 유명한 글씨바위도 있을테니 함께 가보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5년전의 기억을 되살리시듯 골짜기의 바위 하나, 굽이길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며 수원들을 글씨바위로 인도하시였다.

박연폭포
사진. 박연폭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지팽이로 바위에 새긴 글자들을 한글자한글자 짚으시며 시구를 읊으시였다.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

의사은하 락구천(依似銀霞 落九天)

(물줄기 날아서 삼천척을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자로 된 시구들을 환히 꿰들어읽으시자 력사학자는 한발 나서며 글자들에 깃든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이 글씨는 조선봉건왕조중엽의 녀류시인이였던 황진이가 폭포수에 머리칼을 잠그었다가 그 젖은 머리채를 휘저어서 쓴 시구라고 전해오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데도 이렇게 명필이면 황진이가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순간의 피로도 잊으시고 글자들을 다시 들여다보시며 지팽이끝으로 글씨의 획을 하나씩 그어보시였다. 그러시면서 황진이라면 예로부터 《송도3절》의 하나라고 불러왔는데 그에게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가고 학자에게 물으시였다.

개성이 자랑하는 황진이는 당대사회에서는 한갖 천한 기생이였다. 하지만 학문과 문장으로 견주면 감히 사대부들까지도 머리를 숙이는 시재였고 거기에 인물 또한 절색이였다.

그는 비록 기적(기생명부)에 오른 몸이여도 마음이 결곡하고 백설같이 깨끗하였으니 사람들은 그가 쓴 시를 한장 얻으면 가보처럼 귀히 여기군 하였다.

황진이가 가장 사랑하는것은 자기가 나서자란 개성이였으니 그중에서도 박연폭포야말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경이여서 날마다 시를 썼다.

어느날 송도장안의 제노라하는 량반선비들이 모여 《비류직하 삼천척 /의사은하 락구천》이라는 옛 시인이 쓴 시구를 바위에 새겨 기념하기로 하고 서로 주변의 아름다운 풍치와 시의 뜻에 어울리는 글씨를 고르기 시작하였다.

저마끔 있는 재간을 다 내여 한동이나 되게 갈아놓았던 먹물이 거의 밑창이 날 정도로 글을 써보았으나 신통한 글씨가 나오지 않아 맥을 놓고 멍하니 폭포만 바라보고있을 때 황진이가 나섰다.

황진이는 폭포수의 맑은 물에 머리를 잠그고 머리채를 붓끝인양 바위우에 휘저어 시구를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것을 폭포수에 왔던 석공이 제꺽 정으로 쪼아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때의 힘과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있으며 그때부터 이름없던 너럭바위는 《글씨바위》로 불리우게 되였다.

송도의 자랑인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황진이와 같은 녀류명사가 있었다는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그가 때를 잘못 만나 천한 기생으로 생을 마쳤지만 오늘과 같은 로동당시대에 태여났더라면 유명한 녀류시인이 되였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 모든것은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든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라고 하시면서 유적들을 더 잘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음성에 화답하듯 순간 박연폭포의 물소리는 더욱 우렁하게 들려왔다.

그로부터 2년후 하늘땅이 무너지는듯한 크나큰 비애가 개성땅을 눈물의 바다로 잠그었다.

천림산과 성거산사이에 있는 박연폭포는 원래 사시절 큰비가 쏟아지건 나무잎이 떨어져 산을 뒤덮건 언제나 조금도 흐리지 않고 늘 맑은물만 떨구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후 몸부림치는 강산과 더불어 그 물색이 피빛으로 변하였다. 여느때같으면 마치 흰 비단폭이 하늘구멍에서 뚝 떨어져서 돌병풍을 따라 쫙 내려지는것같은 폭포수가 피빛으로 되여 열흘낮 열흘밤을 호곡하며 흘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팽이로 글씨바위에 그어주신 글줄마다에서 밤이면 푸른 빛발이 흘러나와 먼곳에서도 볼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는 이상한 현상은 황진이의 묘소에서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황진이의 봉분에는 푸른 잔디만 있었을뿐이였는데 1994년 그해 여름의 어느날에는 백설같이 흰 꽃송이들이 하얗게 덮이였다.

이 신기한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한 황진이가 천한 몸으로 불우하게 살아온 자신의 생까지도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께 추모의 꽃을 피워드린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박진사의 피리소리로 유명해졌던 박연이 오늘은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인간사랑의 전설로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고 자랑높이 전하고있다.

이 특이한 자연현상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천기를 타고나신 전설적위인이시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