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최덕성
2020.10.25.
돌이켜보면 자랑찬 승리만을 아로새겨온 우리 혁명의 력사는 혁명전사들을 한없이 넓은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시고 내세워주신 인간사랑의 최고화신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숭고한 덕망의 력사로 수놓아져있다고 말할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언제나 혁명동지들을 천금같이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누구이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신 다음에는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였으며 그들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은 다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지난날 곡절많은 생활의 길을 걸어온 수많은 사람들이 혁명가의 참된 삶을 지니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혁명적신념을 변함없이 고수할수 있었으며 우리 혁명의 력사적전진과 더불어 오늘도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있는것이다.
이들속에는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우리 나라 당기관지의 첫 녀성기자로, 우리 공화국의 첫 녀성상으로 혁명가의 참된 삶을 떳떳이 빛내인 허정숙동지도 있었다.
일찌기 녀성의 몸으로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투쟁의 길에 나섰으나 종파분자들의 권력야욕에 환멸을 느낀 허정숙동지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이를 찾아 거치른 만주광야를 헤매였건만 자기의 소원을 끝내 이룰수 없었다. 그리하여 허정숙동지는 연안에 들어가 중국혁명가들과 함께 총을 잡고 항일투쟁에 참가하였으나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마음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있었다.
하기에 해방을 맞이한 허정숙동지는 아버지와 자식이 기다리는곳으로가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왔다.
허정숙동지가 조국으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2월 7일 새 조선건설의 전반사업을 이끌어가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그를 만나주시였다. 조국에 돌아와서 지내기에 불편한 점은 없는가, 부모의 소식은 들었는가, 생활상 애로되는것은 없는가에 대하여 세심하게 념려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슨 사업이건 하고싶다는 허정숙동지의 청을 받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허정숙동지에게 당시의 복잡한 정세와 당앞에 나선 긴절한 사업, 그중에서도 당보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고나서 당에서는 동무를 당보기자로 파견하기로 하였는데 동무의 생각에는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만나뵙고 뜻밖의 임무를 받아안은 허정숙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 새 조국건설에 자기의 한몸을 깡그리 불태울 결심을 가지고 귀국은 하였지만 기자가 될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하였다는데 대하여 솔직히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정숙동지에게 글쓰는 일을 신비롭게 여길것은 없다고, 사상을 똑바로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수 있다고 하시면서 글쓰는 일은 당적인 혁명과업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허정숙동지가 당에서 맡겨준 혁명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크나큰 신임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통하여 당보사업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과업으로 나서고있는가를 깊이 깨닫게 된 허정숙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모든 힘을 다하여 수행하겠다고 힘주어 말씀올리였다.
이리하여 우리 당출판활동에서 첫 녀성기자인 허정숙동지의 사업이 시작되게 되였다.
허정숙동지의 사업과 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나라의 형편과 우리 당앞에 나선 과업을 연구학습할 자료들도 몸소 보내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고 녀성인 그에게 연안에서부터 입고온 단벌군복밖에 없다는것을 아시고는 몸소 새로 지은 양복과 조선옷까지 안겨주시는 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지도와 따사로운 사랑속에 당보기자로서의 허정숙동지의 실무적자질과 녀걸다운 혁명적담력은 날을 따라 더욱더 완벽해갔다.
허정숙동지는 당시 언론출판의 자유와 《객관성》, 《공정성》의 간판을 내걸고 무엄하게도 《평양민보》를 비롯한 출판보도물에 우리 당의 사상과 배치되는 글을 내는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걸음마다 분쇄해버리고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우리 당의 로선만을 견결히 옹호보위하였다. 뿐만아니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과 함께 특집기사 《김일성동지의 빛나는 투쟁사》를 집필하여 당보 《정로》에 내는 자랑찬 성과도 이룩하였다.
허정숙동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날을 따라 더해만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의 창건과 함께 허정숙동지를 우리 나라의 첫 녀성상, 문화선전상(당시)으로 임명해주시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으며 그후 사업과정에 불치의 병으로 허정숙동지의 생명이 시시각각 꺼져가고있을 때 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수술후에는 몸소 문안편지까지 보내시여 허정숙동지가 혁명적의지를 가지고 병마와 억세게 싸우면서 락천적으로 생활하도록 사랑의 힘을 북돋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처럼 뜨거운 사랑이 있어 허정숙동지는 기적적으로 일어날수 있었으며 한생을 위대한 수령님의 참다운 혁명전사로서, 우리 나라의 첫 녀성상으로서 가장 값높은 삶과 영광을 빛내일수 있었던것이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뜨거운 어버이사랑은 허정숙동지가 평범한 녀성기자로부터 나라의 녀성상으로 성장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권위와 위대성을 옹호하는 녀걸다운 기품과 강직한 신념을 갖출수 있게 한 자양분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허정숙동지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하여 숭고하게 이어지는 혁명전사들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