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반동적인종주의국가이며 인종주의의 아성입니다.》 (《
미국은 반동적인 인종주의국가, 인종주의의 아성이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울려나오는 흑인들의 피타는 절규이다.
올해 7월 5일 미국 루이지아나주의 배턴구지시에서 경찰에 의한 흑인살해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였다. 이날 경찰이 무방비상태의 흑인 엘톤 스털링의 가슴과 등에 여러발의 총탄을 퍼부어 무참히 살해하였다. 경찰의 살인만행에 항의하여 수백명의 현지주민들이 항의시위를 벌렸다. 시위참가자들은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손들었으니 쏘지 말라》라는 프랑카드들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흑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마을 자경단장이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17살난 흑인소년을 총으로 쏘아죽인 《지머맨사건》, 2014년 8월 미주리주의 퍼구슨시에서 백인경찰이 18살난 흑인청년을 총으로 쏘아죽인데 이어 미주리주의 쓴트 루이스시에서 23살 난 흑인청년 한명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죽은 사건을 비롯하여 경찰들에 의한 흑인살해사건들이 최근년간에만해도 벌써 여러차례 일어났으며 이로하여 미국은 세계적인 비난과 규탄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이번에 또다시 일어난 흑인살해사건은 그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국사회에 만연되고있는 뿌리깊은 인종주의사상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인종주의가운데서도 가장 극악한 인종주의인 앵글로-쌕슨주의를 제창하며 인디안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그들의 무덤우에 세워진 미국,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흑상아》라고 부르며 흑인노예무역으로 치부해온 미국, 극악한 흑인노예제를 합법화하고 흑인들의 고혈로 비대해진 미국이다.
미국이 《노예해방》의 간판을 내든지 한세기반이 넘었지만 흑인들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흑인들의 손발에 채웠던 노예의 쇠사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격리의 철창으로 바뀐것뿐이며 흑인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보다 악랄해지고 교활한 방법으로 은페된것뿐이다. 미국의 백인들속에서는 여전히 흑인은 《렬등인종》, 《2부류공민》이라고 생각하는 극악한 인종주의가 완고하게 지배하고있으며 그것이 그대로 그들의 행동에서 표현되고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백주에 일어나는 흑인들에 대한 살해사건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사명을 지닌 경찰들에 의해 일어나고있다는것이다. 그 어느 나라나 할것없이 경찰이라고하면 온갖 사회악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국가기능의 집행자들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에 처하면 먼저 경찰을 찾고 그에 의탁하는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들에게 있어서 경찰은 도적이나 깽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다. 도적이나 깽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경찰들은 합법적으로 무기를 휴대하고 백주에 살인을 하는 합법적인 살인자들이기때문이다.
미국의 고위관리들로부터 일반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백인들속에서는 흑인차별, 흑인멸시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자리잡고있어 흑인들의 목숨하나쯤은 전혀 문제로도 되지 않는것이다. 그것은 미국에서 최근년간 흑인들에 대한 경찰들의 사살사건이 련이어 제기되였으나 오바마정부가 살인자들에게 무죄를 선포하고 오히려 그에 항의해나선 시위자들을 탄압체포한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흑인들뿐만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도 백인이 아니라는 그 하나의 리유로하여 극악한 인종차별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이 모든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인종주의 그것없이는 생겨날수도, 존재할수도, 발전할수도 없는 극악한 인종주의의 아성이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인종주의는 미국, 미국은 바로 인종주의이다.
오늘날 미제가 떠벌이는 《세계화》란 바로 전 세계를 미국과 같은 그러한 인종주의제국으로 만들자는것외에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