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령으로 된 저금통장으로 비껴보는 위대한 생의 마무리

 2021.3.1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상에 우리 수령님처럼 모든 사업을 깨끗이 마무리하시고 돌아간 령도자는 없을것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25페지)

우리 수령님처럼 한생의 모든것을 깨끗이 마무리하신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을 하나의 저금통장을 통하여서도 잘 알수 있다.

인민을 위해 이 땅우에 수많은 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우고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는데 나라의 국고를 아낌없이 기울여오신 우리 수령님이시였지만 수령님은 한평생 돈을 모르시였으며 자신을 위한 저금을 하는것을 모르고 사시였다.

그러던 우리 수령님께 언제부터인가 저금통장이 생겨나게 되였다.

저금통장으로 말하면 원화리농민들이 수령님 모르게 저금해온것이였다.

원화리는 전쟁의 불구름이 온 나라를 덮었던 주체41(1952)년 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오시여 농민들과 함께 봄씨앗을 뿌리신 유서깊은 고장이였다.

전후 사회주의협동화의 장엄한 포성과 함께 원화협동조합(당시)이 생겨났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조합원명단의 첫 머리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높이 모신 원화리사람들은 이 세상 다시없을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농사를 직심스럽게 지어 해마다 만풍년을 이룩하였다.

원화리농민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오시여 해마다 대풍작을 이룩하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저 농장원 평균분배몫을 기준으로 하여 수령님의 분배몫을 매해 현금으로 저금해놓았는데 주체72(1983)년부터 10년간 저금한 현금 10만 2 000여원을 주체82(1993)년 11월에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고 기쁘신 마음으로 10만원이라, 10만원이면 부자지라고 하시면서 협동농장을 처음 조직할 때 이불도 변변한것이 없었던 사실을 회고하시면서 이 많은 분배를 어디에 다 쓸가 하고 가사의 한 구절을 외우시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많은 분배를 받고 가만있으면 안되지, 나도 부자가 되였으니 한턱 쓰겠다고 하시며 원화협동농장에서 자신의 몫으로 10년동안 분배하여 저금한 돈으로 농장에 모자라는 뜨락또르나 자동차, 농기계를 사서 보충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틀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천리마》호뜨락또르와 련결차, 《태백산》호 자동차 한대값이 얼마인가를 알아보시고는 수첩을 꺼내여놓고 손수 계산해보시였다.

그런데 뜨락또르와 련결차 각각 10대, 《태백산호》 자동차 2대, 모두 합하여 22대를 마련하자면 10만 4 300원이 있어야 하였는데 수령님의 저금통장의 돈보다 1 800여원이 더 있어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곁에 서있는 일군에게 돈이 더 없는데 동무가 빚을 좀 내달라고, 다음해 분배몫에서 봉창하겠다고 하시며 또다시 즐겁게 웃으시였다.

옛날 지주의 채찍밑에서 두더지인생으로 버림받던 우리 농민들에게 꽃피는 사회주의 새 생활을 마련해주시고 오늘은 모든 농사일을 더욱 기계화하라고 자신의 분배몫으로 농기계까지 사서 보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수령님의 저금통장의 돈은 령으로 되였다.

후날 원화협동농장을 참관하고 저금통장에 깃든 사연에 대하여 알게 된 유럽의 한 정치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동서고금에 한 나라의 수령이 명예농장원이 되시여 분배몫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고 그 분배돈으로 농민들을 위해 뜨락또르며 자동차를 사서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때로부터 수만년이 흘렀지만 이것은 정말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인민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만이 펴실수 있는 전설 아닌 전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수령님께 처음으로 생겼던 저금통장의 돈이 령으로 되였고 령으로 된 그 저금통장은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인민적수령위대한 생의 마무리의 증거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