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조국에는 동서고금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경이적인 창조와 변혁의 새시대, 만리마시대가 펼쳐지고있다.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는 세계를 진감시킬 특대사변들과 기적적승리를 안아오기 위한 만리마속도창조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은 끊임없는 기적적인 속도창조의 력사라고 말할수 있다.
기적적인 속도를 창조하고 그것을 릉가하는 세기적인 속도를 창조하며 또다시 높은 단계의 속도신화를 창조하는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찾아볼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다.
《당조직들은 우리 혁명의 년대들마다 천리마의 기상, 속도전의 불바람으로 거창한 창조와 변혁을 안아온 전세대들의 영웅적투쟁정신과 혁명적기풍을 따라배워 모두가 오늘의 대건설전투에서 위훈의 창조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기적적인 속도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다.
첫 속도는 해방후 일제가 15년을 계획하고 10년동안에 300만명을 동원하였다가 실패한 평양에 있는 보통강의 큰물막이공사를 55일만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한것이다.
그 이후 1950년대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을 타승하고 영웅조선의 본때를 보여준 우리의 전세대들은 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그리하여 우리 인민은 100년이 걸려도 일떠서지 못한다고 장담한 미국의 면상을 후려쳤다.
1950-1953년 전쟁후 3년동안에 공업총생산액은 매해 평균 42%씩 장성속도를 기록하였다.
주체45(1956)년 1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이후 우리 나라의 방방곡곡에서는 전설속의 천리마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1957년부터 우리 인민앞에는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완성하기 위한 5개년계획을 수행하여야 할 과업이 나섰다.
이 계획은 방대한 투자와 높은 기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에게는 자재도 자금도 모자랐고 기술도 뒤떨어졌으며 인민생활도 아직 펴이지 못하였다.
게다가 적대세력들의 압력과 전쟁위협으로 정세는 매우 긴장하고 복잡하였다.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방대한 전망과업과 부닥치는 난관에 겁을 먹고 동요하면서 국가건설을 높은 속도로 밀고나가기를 주저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구호는 제시되자마자 우리 인민의 심장을 억세게 틀어잡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쳐나가는데서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냈다.
우리 인민은
강선제강소의 로동계급은 6만t의 공칭능력을 가진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냈고 김책제철소의 로동계급은 19만t능력의 용광로에서 27만t의 선철을 뽑아냈다.
빈터우에서 대형양수기를 만들어낸것도, 맨주먹으로 《승리 58》형자동차와 첫《천리마》호뜨락또르를 생산한것도 이 시기였다.
이렇게 천리마시대 사람들은 불도젤이면 불도젤, 굴착기면 굴착기, 민족의 진보를 위한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다 만들어냈다.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속에서 우리 인민은 5개년계획을 공업총생산액적으로 불과 2년반동안에, 현물지표별로는 4년동안에 넘쳐 수행하였으며 1957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에 공업생산은 해마다 평균 36.6%라는 기적적인 속도로 장성시켰다. 1957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공업화의 전기간 공업생산은 해마다 평균 19.1%의 높은 속도로 장성하였다.
당시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에서 경제장성률이 5%만 되여도 대단한것으로 여기고있을 때 이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경제장성속도가 아닐수 없다.
우리 인민은 자본주의나라들이 옹근 한세기 지어는 몇세기에 걸쳐서 한 공업화의 어렵고 방대한 과업도 불과 14년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기간에 실현하였다.
우리 인민은 이러한 속도를 하루에 천리(400km)를 가는 말을 타고 달린다는 의미에서 《천리마속도》라고 불렀다.
당시 세계의 이목은 천리마의 기상이 나래치는 우리 나라에로 쏠리였으며 그때부터 세상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천리마의 나라라고 불렀다.
우리 인민은 주체50(1961)년 평양에 이 속도를 상징하는 천리마동상을 세웠다.
우리 인민의 영웅적기개를 시위하는 기념비로 높이 솟아오른 천리마동상은 천리마조선의 상징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우리 인민은
속도전은 1970년대에 정식 명명된 속도중시의 위대한 사상이다.
속도전의 기본요구는 모든 력량을 총동원하여 사업을 최대한으로 빨리 밀고나가면서 그 질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는것이다. 최단기간내에 량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이룩하는것이 속도전이다.
빨리 한다고 하여 질을 낮추거나 질을 높인다고 하여 속도를 늦추는것은 다 속도전과 인연이 없다.
속도전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건설의 기본형식으로 되였다.
속도전의 방침은 제시되자마자 새로운 진군의 불길이 타번지게 하였다. 그 열풍속에 새로운 천리마속도, 70일전투속도가 창조되고 기적과 전변들이 이룩되여 세상사람들을 경탄케 하였다.
70일전투속도는
1974년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대건설이 시작된 력사적인 해이며 6개년계획수행에서 결정적의의를 가지는 해였다.
이해의 방대한 년간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여야 당창건 30돐전으로 6개년계획을 앞당겨 완수하고 사회주의대건설을 높은 단계에로 비약시킬수 있었다.
6개년계획을 완수하는데서 결정적의의를 가지는 1974년 인민경제계획수행의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신
70일전투기간 공업생산은 전투이전에 비하여 평균 1.7배로 높아졌다.
그리하여 1974년의 공업생산은 전해에 비하여 17.2% 늘어났으며 1970년에 비하여서는 거의 1.9배로 높아졌다.
거창한 70년대에 이어 80년대의 나날 조선의 대지우에는 무성한 창조의 숲이 솟아났다.
수도 평양의 대표적인 건물들인
80년대속도창조의 불길속에 수십리 날바다우에 《20세기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세계굴지의 서해갑문이 웅장하게 솟아올랐다.
서해갑문건설은 30여m의 물밑에 55만m2의 바다를 둘러막은 류례없는 가물막이와 7 000여t이나 되는 함형부재들을 만들어 막아나간 언제의 기초, 5만t짜리의 대형배들이 자유로이 넘나들 3개의 갑실과 36개의 수문 그리고 언제우에 기차길과 자동차길을 만든 세계최대규모의 갑문건설공사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불과 5년만에 서해갑문을 완공함으로써 대동강을 대인공호수로 전변시켰다.
우리 나라에서 지난 시기 수십, 수백년이 걸려야 할 대건설들은 모두 속도전에 의하여 이룩되였다.
전설의 천리마가 네굽을 안고 나래치는 우리의 환희로운 현실을 두고
오늘의
어제날 천리마선구자들의 후손들이 분초가 다르게 강산을 변모시키면서 사회주의강국에로 질풍노도쳐 내달리고있다.
경제가 비약적으로 장성하고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건설한 천리마거리와 맞먹는 큰 거리가 해마다 하나씩 일떠서고있다.
2012년에는 창전거리, 2013년에는 은하과학자거리, 2014년에는 위성과학자주택지구, 2015년 미래과학자거리가 완공되였다.
그후 주체105(2016)년 3월부터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방대한 함북도 북부피해복구전투를 벌리면서도 하나의 도시와 맞먹는 사회주의선경거리, 려명거리를 희한하게 일떠세움으로써 사회주의건설의 진군속도, 위대한 우리 당의 강국건설속도가 어떤것인가를 세계앞에 똑똑히 보여주었다.
우리 당의 독창적인 주체적건축미학사상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조형화, 예술화, 록색화가 완벽하게 실현된 70층살림집을 비롯한 초고층, 고층, 다층살림집들과 현대적인 봉사시설들로 조화를 이룬 려명거리는 최상의 문명이 응축된 로동당시대의 자랑스러운 대기념비, 최후승리의 려명을 부르며 질풍쳐내달리는
이것은 기존건설공법의 요구에 비추어볼 때 세상이 알지 못하는 건설속도로 된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발전속도, 만리마속도이다.
오늘의 만리마속도는
천리마가 남을 따라앞서기 위한 준마였다면 만리마는 세계를 디디고 솟구쳐오르기 위한 룡마이다.
련이어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로동자합숙과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도 겨울철조건에서 180여일만에 개건 및 신설되였다.
어느한 청년광산에서는 1년만에 제련소를 신설하고 련이어 또 다른 새 공장건설에 달라붙었다. 세계선진기술에 도전하여 정광으로부터 2차, 3차가공품까지 뽑아내는 첨단공업을 세우고있다.
천리마도 아닌 만리마, 여기에는 남들이 한걸음을 걸을 때 만걸음을 걸어 가까운 기간에 반드시 천하제일강국을 일떠세우시려는
지금 우리 인민은 강국건설을 승리로 맺고 현 세대의 이름으로 조선의 만리마동상을 온 세상이 보란듯이 세울 열의로 충만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