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평양에도 지방의 이름없는 마을에도 현대건축미와 특색을 뽐내며 앞을 다투어 들어앉는 살림집들, 삶의 보금자리가 그토록 희한하고 정겨워 터치는 사람들의 고백인가 창가마다에서 울려나오는 행복의 노래소리…
오늘의 이 행복을 그 누가 주었나
로동당이 주었네
초가삼간 지어놓고 량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나라없던 그 세월 할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고 인민생활을 높이는것은
조선로동당과 국가활동의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가. 현실은 그것을 구상한 정치가의 리념과 활동원칙의 산물이라고.
그렇다.
오늘의 눈부신 현실은 인민생활을 높이는것을 당과 국가의 활동원칙으로 내세우시고 그것을 시종일관하게 관철해오신
지난날 현대문명에서 멀리 뒤떨어져 비참한 생활을 하던 우리 인민이 세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회주의제도하에서 보람있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주신
인민을 하늘처럼 믿고 내세우는것이 바로 우리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체69(1980)년에 조선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큰 공장을 건설할 때였다.
공장설계도와 형성안을 검토하시고난
일군이 성천강상류에 잡았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성천강 상류에?》하고 다시 물으시였다.
일군이 전력과 석탄을 보장받는 면으로 보나 급수관계와 수송조건으로 보나 그이상 리상적인 부지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일군이 오수정화시설을 잘해놓으면 강물의 오염을 막을수 있다는것과 부지를 다른 곳에 옮기는 경우에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수만금의 손실을 보게 된다는것을 말씀드렸다.
그리하여 공장은 다른 곳에 건설되게 되였다.
리윤보다 인민들의 리익을 먼저.
모든 일을 결론하고 비준하는 첫째 기준은 인민생활.
이를 어떻게 백마디의 말로 설명할수 있으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개건확장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에 있은 하나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이미 널리 알려진것처럼 그때로 말하면
어느날 촬영소의 한 책임일군은
그이께서는 무엇인가고 묻는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무엇이든 제기하면 즉석에서 풀어주시던 그이이시였기에 일군은 어려움없이 공사에서 제일 걸리고있던 벽돌문제를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벽돌?!》하고 뇌이시더니 한동안 아무말씀 없으시였다.
그러시다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시며 《…벽돌은 자신없습니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일군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의외였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그 어떤 무리한 요구를 말씀드려도 다 풀어주시군하던 그이이시였다. 그 얼마전에도 자동차 몇대만 주셨으면 하는 요구에 15대를 주겠다고 하시며 제기한 량 이상으로 해결해주신 그이이시였다.
그런데 벽돌쯤 풀어주지 못하시겠다니… 그에게 있어서는 천만뜻밖일수밖에 없었다.
《촬영소건설에 필요한 벽돌때문에 평양시주택건설에까지 지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시면서 그 일군의 제기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시였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던 때에는 대형그림들을 아빠트들에 걸게 예견한것을 보시고 대형그림들을 붙이면 살림집창문이 그림에 가리워 해빛이 들어오지 못하기때문에 사람들이 축전기간에 어두컴컴한 방에서 살게 될수 있는데 그렇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일군들이 인민성이 없다고 나무라시고 그들의 일본새를 바로 잡아주신분도
우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에서는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책동이 극도에 달하고 부닥친 난관도 만만치 않는 이때 수도시민들의 살림집건설을 중요한 과업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조선인민은 이 나라의 그 어느 곳에서나 들을수 있는 이러한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지나간 력사적사실로만 보지 않는다.
조선인민은 이것을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자기들이 누리는 오늘의 행복을 억척같이 떠받들고있는 억년암반, 귀중한 주추돌-조선로동당과 국가의 활동원칙을.